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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기술

“늦게 배운 디지털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라요”

등록 2020-12-14 06:33수정 2020-12-14 09:35

‘디지털배움터’ 현장 가보니

전국 주민센터 등에 1300여곳 설치
9월 출범…3개월만에 이수자 10만명
실습 중심·맞춤형 교육에 97% ‘만족’
마을 찾아가 교육하는 ‘에듀버스’도
“소외계층 ‘디지털 문맹’서 벗어나고
경제·사회적 자립 지원하는 게 목표”
3일 오전 충북 충주시 충주평생열린학교 디지털배움터에서 권아무개 할머니가 기차표 예매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3일 오전 충북 충주시 충주평생열린학교 디지털배움터에서 권아무개 할머니가 기차표 예매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3일 오후 충북 괴산군 괴산읍 행정복지센터 앞 주차장. ‘디지털배움터’란 이름을 단 버스 옆에 설치된 대형 천막 안에서 같은 이름이 새겨진 파란색 조끼 차림의 강사와 서포터즈들이 각각 어르신들과 마주앉아 함께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목청을 높인다. “어르신 잘 보세요. 요기에 엘티이(LTE) 표시가, 그러니까 영어 모양 글자가 있을 때는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 안 돼요. 요금이 엄청 나와요. 요기가 부채모양일 때만 동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세요. 아셨죠.” 최은진(45) 강사가 원아무개(72·충북 괴산군 괴산읍) 할아버지에게 동영상을 보거나 노래를 들을 때는 와이파이를 이용해야 요금이 더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옆자리에선 할머니가 다른 강사에게 스마트폰으로 기차표 예매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날 오전 충북 충주시 으뜸로에 있는 충주평생열린학교. 40~70대 여섯명이 마스크를 쓴 채 띄엄띄엄 앉아 모바일팩스 이용법을 배우고 있다. 권아무개(76·충주시 교현동) 할머니는 “곧 연말정산 철이잖아. 아들한테 영수증 보내줄 때 편하다고 해서 배우는 거야”라고 말했다. 이어 컴퓨터로 문서 작성하는 법을 배워 잘 써먹고 있다고 자랑했다. “컴퓨터 문서 만드는 법을 배운 덕에 배드민턴 동호회 총무도 했어. 회원 명부와 모임 일정 등을 컴퓨터 문서로 만들어줬더니 다들 좋아하며 다른 문서도 만들어 달래. 프린터도 샀어.”

권 할머니와 함께 강의를 듣던 이아무개(60·충주시 칠금동)씨는 스마트폰 사용법에 새롭게 눈뜬 경험을 소개하며 “늦기 전에 배워 써보라고 기사 좀 써달라”고 주문했다. “플레이스토어, 거기서 앱이란 걸 깔아 써보니 신세계가 열려. 도깨비방망이 같다. 그동안 몰라서 못 썼던 게 후회된다. 스마트폰에 빠져서 사는 아이들 심정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손주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에스엔에스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집에서 스마트폰 가지고 노는 게 재밌으니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밖에 나갈 이유가 없어”라고 말했다.

3일 오후 충북 괴산군 괴산읍행정복지센터 주차장 디지털배움터 버스에서 어르신들이 무인주문기(키오스크) 사용법을 체험해보고 있다.
3일 오후 충북 괴산군 괴산읍행정복지센터 주차장 디지털배움터 버스에서 어르신들이 무인주문기(키오스크) 사용법을 체험해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국형 디지털 뉴딜 사업으로 지난 9월부터 추진 중인 ‘전 국민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디지털배움터)이 디지털 소외계층들한테 각광을 받고 있다. 디지털배움터 운영을 주관하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민성준 디지털포용기획팀장은 “11월30일 기준으로 1372개의 디지털배움터가 운영 중이고,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 이수자만도 10만명에 육박한다”며 “이수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 96.9%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디지털배움터에선 코로나19 대유행 및 지역별 상황을 고려해 5명 안팎의 집합교육, 일대일 방문교육, 온라인 교육을 병행한다. 충북 괴산·옥천·영동 등 시골 지역에선 강사와 서포터즈를 태우고 마을을 찾아가는 ‘에듀버스’도 운영된다. 교육 내용이 체험과 실습 중심으로 짜인 것도 장점이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물품을 주문하고, 기차·버스표와 공연 티켓을 예약하며, 영상통화와 동영상 보기 및 에스엔에스(SNS) 등을 이용해볼 수 있게 해준다. 무인 주문기에서 메뉴를 골라 주문하는 법도 직접 해보게 한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박종선 디지털격차해소팀장은 “생활 밀착형 기능과 서비스 교육으로 시골 어르신 등도 디지털 문맹에서 벗어나고, 경제·사회적 자립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며, 그동안 디지털배움터 덕에 디지털 문맹에서 벗어난 이들이 보내온 후기를 소개했다.

“지난 추석 때, 괜찮다고 내려오지 말라고 했지만 자식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니냐. 비대면 추석맞이 교육에 참여해, 서울 사는 딸과 영상통화도 하고, 영상카드를 만들어 보내기도 했는데, 신기하고 즐거웠다. 지금은 언제든 자식 손주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영상통화를 한다.”(자식들이 외지로 나가 시골에 홀로 사는 할머니)

“코로나19 때문에 당분간은 주일 예배를 못 드리게 될 줄 알았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면 어떠냐는 신도들의 제안이 있었지만 할 줄 몰라 막연했다. 온라인 방송을 신도들과 함께 비대면으로 예배 드리는 방법을 배웠는데 별로 어렵지 않더라.”(온라인 방송 이용법을 배워 온라인 예배를 진행하는 목회자)

“화물운수업 종사자들은 해마다 의무적으로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온라인 화상교육으로 전환됐다. 막막했는데 디지털배움터에서 화상교육 받는 법을 배우면서 과태료를 물지 않게 됐고, 그동안 몰랐던 스마트폰 활용법도 배웠다.”(화물운수 종사자)

3일 오후 충북 괴산군 괴산읍행정복지센터 주차장 디지털배움터 버스에서 어르신들이 무인주문기(키오스크) 사용법을 체험해보고 있다.
3일 오후 충북 괴산군 괴산읍행정복지센터 주차장 디지털배움터 버스에서 어르신들이 무인주문기(키오스크) 사용법을 체험해보고 있다.

“디지털배움터에서 배운 걸 집에서 연습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요즘은 애들 도움 없이 온라인으로 물건 구입도 한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겨서 좋다. 요즘은 마트 갈 때마다 셀프 계산대를 이용한다. 전에는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겁이 나 못했다.”(충북 충주에 사는 홀몸 어르신) 디지털배움터 강사와 서포터즈들의 말을 들어보면,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이 디지털 소외계층 어르신들의 ‘집콕’ 생활을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충주평생열린학교 정진숙 교장은 “디지털배움터는 수강 대기자가 많다. 코로나19로 동시 수강 인원이 5명으로 제한돼 내년 1월 말까지 꽉 찼다. 강사와 서포터즈가 일대일로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사용하다 막히면 언제든지 찾아와 물을 수 있도록 한 게 입소문을 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와 제주도 등에선 교육 이수자들이 강사·서포터즈로 채용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이날 현장점검차 충주·괴산의 디지털배움터를 둘러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신대식 디지털포용정책팀장은 “현장 얘기를 들어보니, 코로나19가 디지털 격차를 도드라지게 만들며 디지털 포용정책의 필요성을 높였다는 분석이 많다. 올해 500억원대였던 디지털배움터 운영 예산을 내년에는 800억원대로 늘렸는데, 잘한 것 같다. 중복 수강이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현장에 와서 보니 이해력과 기억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어르신들의 특성상 허용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충주·괴산/글·사진 김재섭 선임기자 겸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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