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과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이 설 장소와 지렛대 및 받침대만 있으면 지구를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이 일으킨 기후변화는 지렛대 없이도 지구 축을 움직인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 연구팀은 26일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아내려 지구의 질량 분포가 달라지면서 1990년대 이래 남북극 이동의 방향이 바뀌고 이동 속도도 가속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 연구 성과는 미국 지구물리학회(AGU)에서 발표되고, 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지구물리학회보> 최근호에 논문이 실렸다.(DOI :
10.1029/2020GL092114)
지구의 극은 늘 움직인다. 북극점과 남극점은 자전축이 지표와 만나는 두 지점이다. 하지만 두 지점은 고정돼 있지 않다. 지구 질량이 분포하는 양상이 변하면 축이 움직이고, 따라서 극도 움직인다. 과거에는 해류나 지구 내부의 용암 같은 뜨거운 암석의 순환 등 자연적 요소만이 극 위치 이동에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중국과학원 산하 지구과학과 천연자원연구소와 덴마크 공과대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1990년대 이래 기후위기에 의한 연간 수십억톤의 얼음 상실이 양극을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 분석으로는, 극의 이동 방향이 1995년을 기해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뀌었다. 또 1981~1995년 15년 동안에 비해 1995~2020년 15년 동안의 이동 속도가 17배 빨라졌다. 1980년 이래 극의 위치는 약 4m 이동했다.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아내려 지구 질량 분포가 변하면서 극 이동 방향과 속도가 변했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해류나 용암 등 지구 내부 용융암석의 대류로 지구 질량 분포가 바뀌어 극의 위치가 이동하는 현상이 최근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에 따른 빙하 상실 등에 의해 인위적으로 발생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구물리학회보’ 제공
2002년에 발사된 나사의 초고정밀 인공위성 그레이스(중력복구및기후실험위성)의 중력 데이터는 2005년과 2012년 두차례 빙하 해빙과 극 이동이 연관돼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인공위성 데이터가 없던 시기인 1990년대의 지구 기울기 변화까지 밝혀냈다. 연구팀은 물 자체의 관찰에 공력을 들였다. 바다얼음과 육지 빙하의 상실을 측정하고, 인간이 쓰기 위해 퍼 올린 지하수의 통계자료를 모아 이들이 극 움직임 변화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석했다. 지하수는 땅 속에 있지만 식수나 농업용수로 끌어올려지면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지구의 질량 분포에 변화를 일으킨다. 과거 50년 동안 인간은 지하 심부 저수조에서 18조톤의 물을 뽑아 올려 사용했다.
연구팀은 “빙하 얼음이 녹아 내려 육지가 함유하고 있던 물이 점점 더 빨리 줄어든 것이 1990년대 이후 급격한 극 이동의 주요 인자”라고 결론내렸다.
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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