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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기온 오르면 쌀이 독해진다

등록 2020-12-13 14:52수정 2021-12-31 15:06

[이근영의 기상천외한 기후이야기]
온도 상승하면 벼 안 비소농도 증가
고온에서 땅속 비소 물에 많이 녹아
쌀 데친 뒤 조리하면 73∼54% 제거돼
기온이 상승하면 논 벼의 비소 농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기온이 상승하면 논 벼의 비소 농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기후변화로 기온이 올라가면 논에서 자라는 벼에 더 많은 비소가 함유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은 13일 “세계 인구 절반이 주식으로 먹는 쌀이 온도에 매우 취약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온실 실험을 통해 기온 상승에 따라 벼의 비소 흡수가 함께 증가하는 것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이달 1일부터 17일(현지시각)까지 열리는 미국지구물리학회(AGU) 온라인 가을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연구팀 논문은 학술지 <종합환경과학>에 실렸다.

논문 제1저자인 얘스민 파르햇 워싱턴대 환경공학과 박사과정생은 “벼의 비소 농도 증가를 조정하는 것이 땅에서 비소를 추출해 물속에 녹여넣는 미생물 매개 작용이라는 것을 규명했다”고 말했다.

쌀은 대다수 곡물과 달리 산소가 없는 땅 위 물속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비소 흡수에 취약하다. 무산소 조건에서 잘 번지는 미생물들은 정상적인 대사작용을 통해 땅속 공극수에 비소를 풀어놓는다. 일단 비소가 땅 입자에서부터 풀려나오면 벼의 뿌리가 흡수할 수 있다. 극미량의 비소(As)는 사람을 포함한 많은 동물의 필수 영양소이지만 필요량보다 많으면 비소 중독을 일으켜, 세계보건기구(WHO)는 제1급 발암물질로 분류해 놓았다.

선행연구들은 주로 열파가 벼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비소를 더 잘 농축하도록 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연구를 통해 ‘생체이용률’(bioavailability)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파르햇은 말했다. 생체이용률은 화학물질이 순환을 통해 생물체에 흡수돼 이용되는 정도를 말한다.

온도가 낮은 때는 미생물들이 땅속에서 물속으로 녹여내는 비소(As)가 적지만(왼쪽) 온도가 상승하면 비소 농도가 높아져 궁극적으로 쌀의 비소 함유량이 늘어난다. 미국 워싱턴대 제공
온도가 낮은 때는 미생물들이 땅속에서 물속으로 녹여내는 비소(As)가 적지만(왼쪽) 온도가 상승하면 비소 농도가 높아져 궁극적으로 쌀의 비소 함유량이 늘어난다. 미국 워싱턴대 제공

연구팀은 벼를 낮 기온 25.4도, 27.9도, 30.5도, 32.9도 등의 4개 실험용 온실에서 재배했다. 밤 기온은 약 2도 정도 낮게 조절했다. 각각의 온실 화분에는 농업지역인 캘리포니아 데이비스의 논에서 채취한 흙이 담겼다. 데이비스 논의 흙은 비소 농도가 비교적 낮다. 연구팀은 벼와 흙, 벼가 자랄 때의 공극수 등을 견본으로 채집했다.

견본들을 분석한 결과 쌀의 비소 농도와 온도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또 상대적으로 고온 환경에서 공극수가 더 많은 비소를 함유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물질수지계산법(일정 체적 안에서 유입된 질량과 유출된 질량은 항상 같다는 개념을 이용한 계산법)을 사용해 비소의 생체이용률 증가가 벼에서 비소 농도를 높이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파르햇은 “온도가 점점 더 올라가면 벼의 성장 과정에 식이 비소 노출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전에는 이 위험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논문 저자들은 쌀에서 고농도의 비소를 줄이기 위한 해결책은 이 독소의 접촉을 막는 것이라며, 한 가지 접근법으로 흙이 가끔 마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 곧 건습 반복법을 제시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영국 셰필드대의 마노 메논은 “땅이 숨쉴 시간을 줘 산소를 공급하면 비소를 상당량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다른 방법은 비소 저항성 품종을 심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논은 비소 줄이기가 어려운 곳에서는 조리법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최근 <종합환경과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데치기와 흡착’이라는 조리법이 현미에서 무기비소를 54% 제거하고, 백미에서는 73%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메논 연구팀이 쌀을 씻지 않고 조리, 씻어서 조리, 물에 불렸다 조리, 살짝 데친 뒤 조리 등 4가지 조리법을 실험한 결과, 쌀을 살짝 데친 뒤 조리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가 뛰어났다. 나머지 방법은 오직 흰쌀에서만 효용이 있었다. 살짝 데친 뒤 조리법은 백미와 현미의 노출 허용량을 각각 3.7배, 2.2배 높였다.

열대지방을 비롯해 세계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은 쌀을 하루 몇차례씩 먹는다. 일부 지역에서는 대체할 작물이 없다. 쌀의 비소 함량은 느린 속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 지역민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 캄보디아에서 현장 연구를 해온 파르햇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등 지하수를 관개에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해결해야 할 큰 과제라고 말했다.

메논에 따르면 하나의 방법만으로 쌀 속 비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는 “아시아 전반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자들이 실험실 결과와 농업 현장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으로, 지역민들을 지역 차원에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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