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20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화석연료 생산을 해마다 6%씩 줄여나가야 함에도 오히려 2%씩 늘릴 계획을 세워놓았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선진 20개국(G20)을 비롯해 세계 각국 정부들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탄소 배출을 긴급히 중단해야 함에도 오히려 코로나19 회복 예산을 화석연료에 투자하고 있다고 유엔환경계획(UNEP)이 지적하고 나섰다.
유엔환경계획은 4일 <생산격차 2020>(Production Gap) 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를 파리기후협약에서 합의한 이번 세기말 1.5도 상승 제한을 실현하고 심각한 기후 격변을 피하려면 2030년까지 석탄·가스·석유 생산을 해마다 6%씩 줄여 나가야 한다”며 “하지만 세계 국가들은 오히려 해마다 2%씩 화석연료 생산을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특히 선진 20개국은 코로나19 회복 예산을 재생에너지 등 청정에너지보다 화석연료에 50% 이상을 더 쏟아붓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산격차는 1.5도 실현을 위한 화석연료 생산 감축 목표와 실제 생산 계획과의 차이를 뜻한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국제지속가능발전연구소(IISD)의 아이베타 게라심추크는 “올해 많은 정부들이 화석연료에 베팅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정부들은 화석연료 산업이 고사하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죽음으로 부활시켜, 마치 좀비에너지처럼 만들었다”고 말했다.
잉게르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 사무총장도 “각국 정부가 경제 부흥을 위해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화석연료 에너지 시스템을 더 공고히 할지 좀더 청정하고 안전한 미래로 나아갈지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며 “올해 재앙적인 산불과 홍수, 가뭄 등은 우리가 왜 성공해야 하는지 상기시켜주는 강력한 증거들”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선진 20개국이 코로나19 관련 예산에서 올해 11월까지 2330억달러(256조원)를 화석연료 생산과 소비(항공, 자동차산업, 화석연료 기반 전력 소비)를 지원하는 데 투자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재생에너지나 에너지 효율화, 자전거와 보행시스템 등의 저탄소 대안방안에는 1460억달러(160조원)만 투자됐다.
보고서는 1.5도 목표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해마다 석탄과 석유, 가스를 각각 11%, 4%, 3%씩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 코로나19로 화석연료 생산이 2019년에 비해 7%(석탄·석유·가스 각각 8%, 7%, 3%) 줄어든 것에 견주면, 해마다 올해 수준의 감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1.5도 목표 달성을 실현하기 위한 것보다 2030년까지 화석연료를 120% 이상 더 생산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특히 화석연료 생산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8개국(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미국,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노르웨이, 러시아)은 여전히 생산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생산격차 분석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들의 계획도 새로 공개됐는데, 멕시코는 석유 생산을 2030년까지 50%, 브라질과 아랍에미레이트는 각각 70%, 아르헨티나는 130% 늘릴 계획이다.
보고서 공저자인 스톡홀름환경연구소의 미카엘 라자루스는 “세계 국가들이 현재 수준으로 화석연료를 생산하고 기존 계획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심각한 기후 격변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유엔환경계획의 니클라스 하겔베르크는 “경제 부흥에 쏟아붓는 막대한 자금은 미래 세대한테 빌려온 것”이라며 “만약 화석연료에 계속 투자한다면 자손들한테 훼손된 지구를 물려줄 뿐더러 돈을 탕진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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