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얼음을 녹이는 해양 온난화가 지구 자전축 기울기의 영향으로 증폭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남극 대륙(Antarctica)은 한국의 140배 면적인 1400만㎢로, 대부분이 해수면 아래에 있다. 대륙의 상당 부분은 바닷속 암반 위에 수㎞의 두께로 언 만년 빙상으로 이뤄져 있다. 전지구 얼음의 90%(2600만㎦)가 남극에 존재한다. 남극의 얼음을 녹이는 해양 온난화가 지구 자전축 기울기(경사각)의 영향으로 증폭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메디슨 위스콘신주립대와 뉴질랜드 웰밍턴 빅토리아주립대 공동연구팀은 과학저널 <네이처 지구과학>(Nature Geoscience)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넘었을 때 지구 기후는 자전축 기울기 곧 경사각에 더욱 민감해진다. 남극 빙상은 상대적으로 높은 현재의 지구 경사각에 영향을 받을 것이고, 이로 인해 남극 주변 해양 온난화는 증폭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웨덴의 천문학자 밀란코비치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 운동 변화에 따라 지구의 기후 패턴이 변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밀란코비치 이론'에 따르면 지구 자전축은 4만1000년을 주기로 흔들의자처럼 더 기울었다 바로 섰다를 반복한다. 현재는 지구 경사각(obliquity)은 23.4도로, 작을 때 22.1도와 가장 클 때 24.5도에 견줘 기울기가 비교적 큰 시기에 속한다.
논문 주저자인 위스콘신대 고기후학자 스티펀 메이어스는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매우 심각하다. 이산화탄소 고농도와 지구의 고경사각은 수킬로 두께의 남극 얼음층을 파괴시킬 수 있다”고 대학 홍보자료에서 밝혔다.
연구팀은 과거 지구 기후와 관련한 몇 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남극 얼음이 지구 기울기에 어떻게 반응해왔는지 역사를 재구성했다. 연구팀이 활용한 첫번째 자료는 해저에서 채취한 탄산칼슘(CaCO₃)으로, 저생성 유공충(benthic foraminifera)이라는 단세포 생물에 의해 생성된 물질이다. 유공충은 주변에 탄산칼슘 껍질을 분비하는데, 여기에 바다와 대기 화학성분 기록이 남아 있다.
1500만년 전 지구 대기가 이산화탄소로 포화됐을 때 해양은 따뜻해지고 남극 주변의 해빙이 사라졌다. 이는 남극 빙상의 중요 부위를 녹여버렸고 이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했다. 연구팀은 대기의 이산화탄소 증가에 따라 따뜻해진 지구가 지구 자전축의 주기적 변화와 만나면 해양의 온난화를 일으키고 해빙의 감퇴를 초래해 남극 빙상이 극적으로 감소하고 해수면이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위스콘신대 제공
두번째는 남극 주변 해저에서 시추한 자료(core)로, 논문 공저자인 빅토리아대 고기후학자 리처드 레비가 탐사를 맡았다. 퇴적층에는 과거 역사 기록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빙하는 머물던 곳에 진흙과 모래와 자갈의 독특한 혼합물을 남긴다. 퇴적층을 보면 빙상들이 한때 어디에 머물렀는지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기록에는 차이가 있었다.
연구팀은 두 자료에서 추출한 정보들을 토대로 3400만년 전부터 500만년 전까지의 남극 역사 퍼즐맞추기를 했다. 남극 빙상은 3400만년 전에 처음 생성됐다. 하지만 일년 내내 녹지 않는 만년 해빙은 300만년 전에야 생겨났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 이하로 내려간 시기이다.
3400만년 전에서 2500만년 전까지 시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600~800ppm으로 매우 높았고, 당시에는 남극 얼음 대부분이 육지 위에 존재하고 바다와 닿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시기에는 대륙 얼음의 성장과 감퇴가 지구 기울기에 비교적 둔감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2450만년 전에서 1400만년 전까지 시기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600ppm으로 감소했다. 빙상이 좀더 자주 바다에까지 뻗어나갔지만 아직 바다 위에 유빙은 생기지 않았다. 이 시기에 지구 기후는 자전축 기울기에 좀더 민감해져 있었다.
1300만년 전에서 500만년 전까지 시기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더 떨어져 200ppm 밑으로 내려갔다. 해빙은 더 많아져 겨울에는 바다 표층을 두껍게 덮었다가 여름에만 얇아졌다. 지구 기울기에 대한 민감도는 낮아졌다.
연구팀은 경사각에 대한 민감도에 왜 변화가 생기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얼음과 바다의 상호 접촉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경사각이 클 때 극 지역은 따뜻해져 적도와 극 사이의 기온차가 줄어든다. 이것이 바람과 해류의 패턴에 변화를 주고 결과적으로 남극 주변에 따뜻한 바닷물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얼음이 주로 대륙에 존재할 때는 따뜻한 바닷물이 얼음을 만날 일은 없다. 하지만 빙상이 바다 바닥에 놓여 해류와 만날 수 있다면 따뜻한 물이 중요해진다. 해빙은 따뜻한 물의 흐름을 차단해 빙상이 녹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농도가 해빙을 녹일 만큼 높다면 따뜻한 물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이 때가 지구 경사각이 가장 중요해지는 시기로, 남극 역사로 보면 2450만년 전에서 1400만년 전까지이다.
연구팀은 남극의 역사에 비춰 미래의 어려움이 예견된다고 밝혔다. 2016년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00ppm을 뛰어넘었다. 레비는 “해빙은 바다와 빙상 사이에 방벽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지구 평균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하지 못하도록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하는 데 실패하면 해빙은 사라질 것이다. 지구 지질역사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이렇게 높았던 때 남극에 만년 해빙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계속된다면 해빙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지구는 중기 중신세의 초기에 겪었던 것과 유사한 환경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 중신세는 지구와 극 지역의 기온이 훨씬 높고 대기는 이산화탄소로 포화돼 지구 평균기온이 3~4도 높아진 1400만년 전의 지질시대이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