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등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 이변으로 세계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대기오염이 심해지는 등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올해 세계 도시의 절반 이상에서 폭염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폭염으로 세계 노동시간은 1530억 시간 줄어들었으며, 도시의 대기오염이 악화돼 많은 도시가 대기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26개국의 기후변화분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네트워크인 ‘글로벌 전략 커뮤니케이션협의회’(GSCC)는 29일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은행, 런던대 등 세계 27개 기관으로 구성된 연구공동체 ‘랜싯 카운트다운’이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랜싯>에 기후변화와 보건관련 연구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결과로 나타난 지구 기온 상승이 이미 심각한 수준의 건강 위험을 초래하고 있으며 현재의 추세로 기온이 계속 상승할 경우 공공보건 의료 체계는 곧 한계를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고 밝혔다.
랜싯 카운트다운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이례적으로 더운 날씨를 보인 올해 조사 대상 478개 도시의 51%에서 폭염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보고서는 조사된 지역의 65%가 이미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한 검토를 마쳤거나 현재 진행 중이지만 기후 변화 적응에서 보건과 관련된 예산 비중은 전체의 4.8%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폭염에 노출된 사람은 2000년에 비해서는 1억5700만명 많았고 2016년보다는 1800만명 많았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또 폭염으로 인해 지난해 노동시간이 1530억 시간 감소했다. 이는 2000년보다 620억 시간 이상 증가한 것이다. 중국의 경우 손실 시간이 210억 시간으로, 중국 노동인구의 1.4%가 1년 동안 일하는 시간에 해당한다.
폭염은 도시 대기오염을 크게 악화시켜 중·저소득 국가의 도시 가운데 97%는 세계보건기구의 대기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 상승은 유럽과 동부 지중해 지역의 취약 인구를 더 큰 위험에 노출하고 있는데, 이곳의 도시 거주 노년층 수가 많기 때문으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두 곳의 폭염에 취약한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각각 42%와 43%에 이른다. 이는 아프리카(38%)와 동남아시아(34%)보다 훨씬 높다.
기온 상승과 이례적인 고온 현상은 콜레라와 뎅기열 바이러스 등 전염병 확산의 원인이며, 여러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전염병 확산이 확인됐다. 1950년대와 비교해 2016년 뎅기열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매개체인 이집트숲모기는 9.1%, 흰줄숲모기는 11.1% 증가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고원에서는 말라리아를 전염시키는 매개체가 27.6% 증가했다.
<랜싯> 공동 의장인 런던대 휴고 몽고메리 교수는 “폭염에 노출되는 정도와 취약성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높고, 그 수준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열 스트레스는 매우 심각하며 특히 도시에 거주하는 노인층을 비롯해 심혈관계 질환, 당뇨나 만성신장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인간이 적응할 수 있는 기온 상승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경우 결국에는 어떤 의료 시스템도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 피해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워싱턴대 크리스 에비 교수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률 증가는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로 기온이 상승하면 그로 인한 사망률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 당장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랜싯> 공동의장인 안토니 코스텔로 교수는 “세계는 아직 효과적으로 배출가스를 감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지구 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카본 버짓(탄소 예산)이 2032년이면 모두 소진될 것이다. 이 이상으로 기온이 상승할 경우 건강 피해는 우리가 가진 비상 의료 서비스 체계를 훨씬 압도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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