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26일 박정희 추도식에서 만난 박근혜와 김종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하야? 죽어도 안 해. 그 고집을 꺾을 사람 하나도 없어… 누가 뭐라고 해도 소용없어.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서 내려오라고, 네가 무슨 대통령이냐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게다. 그런 고집쟁이야. 고집부리면 누구도 손댈 수가 없어.”
23일 별세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016년 11월 <시사저널>과 한 인터뷰 내용이다. ‘신화’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러웠던 다른 때와 달리 이때의 증언은 매우 직설적이고 적나라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절대 제발로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 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김종필 소위는 육군 정보국에서 박정희 중령과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김 소위는 대구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에 ‘박 중령’을 찾아온 박영옥씨와 처음 만났다. 박영옥씨는 박정희의 셋째형 박상희의 딸이었다. 두 사람은 1951년 2월 대구에서 결혼했다. 김종필이 박정희의 조카사위가 된 것이다.
인척이 된 박정희와 김종필은 10년 뒤 이른바 ‘혁명 동지’가 됐다. 박정희를 ‘혁명의 주역’으로 내세운 김종필은 초대 중앙정보부장, 국무총리를 지내며 ‘정권의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는 똑같은 방식으로 권력을 잃을까 항상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김종필을 항상 의심했던 이유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를 옆에 놔두고 눌러야 할 사람으로 알았어. 자유롭게 놔두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경계했던 것이지…내가 (당신)조카딸 남편이고, 그러면 내가 조카 아니냐고 했지. 절대 다른 생각할 놈이 아닌데 왜 자꾸 의심하느냐고 대들었어. 그때 박 대통령이 ‘내가 좀 의심도 해’ 그렇게 말했어. ‘했어’가 아니라 ‘해’라고. (의심을) 하고 있다는 말이지.”(김종필 <시사저널> 인터뷰)
3당 합당, 충청권 맹주로 재기, 국무총리 취임 등 ‘유신시대 2인자’의 정치적 불꽃이 모두 소진되자 박근혜는 대통령에 당선되며 ‘박정희 시대의 부활’을 알렸다. 쿠데타에 성공한 지 5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된 지 33년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아버지의 혁명 동지’이기도 한 형부의 도움을 원치 않았다. 김종필은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막상 의지하고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텐데도” 자문을 구한 적이 없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나를 개똥으로 아는데 뭘. ‘니까짓 게 나이나 먹었지 뭘 아느냐’ 그 정도”라고도 했다. 김종필은 “정상에 앉아서 모두 형편없는 사람들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뭔 얘기를 하냐. 자기 운명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가 영욕의 삶을 마감한 2018년 6월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을 망친 죗값을 감옥에서 치르고 있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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