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18) 반기문 대망론
(18) 반기문 대망론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높은 지지율이 나오지만
한편에 서는 순간 지지율은 급락
당 선택하고 후보 나서는 순간
냉정한 현실과 마주하게 될 것 정치권 밖에서 불려나왔던
이회창, 고건, 안철수 예를 보라
대중이 원한 것은 그 이미지였지
꼭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고건처럼 될까, 김황식처럼 될까 그러나 이름 뒤에 ‘현상’이나 ‘대망’이 붙은 인물들의 불행은 대중이 원한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였지 꼭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고건 대망론 때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원한 것은 ‘고건 같은 사람’이지 고건은 아니야”라고 말했을 때, 그 의미는 그런 자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2012년에 안철수는 빌 게이츠와 같은 ‘사업가’, 스티브 잡스와 같은 ‘혁신가’, 워런 버핏과 같은 ‘기부가’의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는 듯이 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대중의 눈에는 안철수는 ‘안철수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실패한 것은 정치에서는 카리스마, 정치력, 뛰어난 선동, 밀어붙이는 추진력, 확실한 보상과 보복, 권력을 다루는 기술, 담대한 전략, 판을 바꾸는 거래, 즉 ‘노회한’ 정치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자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말은 결국 그들이 정치인으로서 ‘갖고 있는 자질’보다 ‘갖고 있지 못한 자질’이 더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기문은 어떨까?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인물에 대해서는 분석이나 논평을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을 깨는 것은 그가 이 상황을 좀더 분명하게 정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하게 밝히지만 내가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여론조사에 다시는 제 이름을 넣지 마시기를 부탁합니다”라고 하면 간단히 정리될 텐데 본인의 뜻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뜻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렇게 안 하고 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손학규는 그렇게 요청했다. 현직 대통령과 여론조사 1위의 현직 유엔 사무총장이 연결된 현 상황이 매우 정치적이긴 하지만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의지의 차이는 있었지만 차기 대통령을 만드는 일에 무관심한 대통령은 없었다. 퇴임 후의 안전을 약속받기 위해서든, 총선 지분을 얻기 위해서든 그런 거래를 위한 움직임은 전략적으로 늘 있어 왔다. 다만 놀라운 것은 대통령이 원한 후보가 한번도 된 적이 없고, 대통령이 반대한 후보가 안 된 적도 없는데 정치인들은 매번 대통령의 힘을 과대평가한다. 반기문이 대통령이 되려면 세가지 허들을 넘어야 한다. 첫째는 출마를 결심해야 한다. 둘째는 온갖 공격을 버티면서 후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선에서 이겨야 한다. 아마도 세번째 허들이 가장 넘기 쉬울 것이다. 출마를 결심하는 것은 엄청난 결단이 필요하다. ‘위인전’에 실릴 정도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그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으로 불려 들어가서 기성 정치인을 꺾고 대통령이 된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결단을 망설이게 한다. 어렵사리 출마를 결단하면 그때부터 정치가 얼마나 살벌하고 혹독한 정글인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버티기 쉽지 않다. 2007년 1월16일 고건은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 “저는 본래 정치권 밖에 있던 사람입니다. 탄핵정국의 국가위기 관리를 끝으로 평생 공복의 생활을 마감하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과분한 국민 지지를 받게 되어 그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모색하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 그러나 대결적 정치구조 앞에서 저의 역량이 너무나 부족함을 통감합니다. … 당초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여론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 깊은 고뇌 끝에 저는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칫하면 반기문도 이런 선언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고건보다는 더 버티어 경선에 참여한다면 청와대가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한 것으로 알려진 총리 출신의 김황식이 정몽준에게 무기력하게 패한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아마도 김황식은 후보로 ‘옹립’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경선이 결정되었을 때도 순진하게 그저 통과의례라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대의원, 당원은 말할 것도 없고 지지자들도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함께 뒹굴지 않은 사람은 후보로 뽑지 않는 게 이 바닥 의리다. 대통령 후보는 더 그렇다. 정당은 그런 곳이고, 정치는 그런 것이다. 유엔 본부 유치에 주력하면 어떤가 1944년생인 반기문이 새누리당의 후보로 선출된다면 1987년 직선제 부활 이후로는 가장 나이 많은 후보고, 대한민국 역사를 통틀어도 이승만 다음이다. 무시할 수 없는 불리한 조건이다. 그가 수십년간 외교관으로 살았고 유엔 사무총장까지 한 직업적 특성도 한국 대선 판에서는 치명적 약점이 될 것이다. 교수(정운찬), 판사(이회창, 김황식), 관료(고건)도 한국 선거에 잘 안 맞는 직업이지만 외교관은 더하다. 이회창이 처음 정치에 들어왔을 때 정치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의사결정이 너무 늦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유를 알고 보니 판사 출신이라 양쪽 얘기를 다 듣고 결정하는 습관 때문이라는 우스개가 있었는데 항상 외교적 언사로 빠져나가 ‘기름장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반기문도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선동’을 하는 데는 몸에 밴 직업적 언어가 큰 장해가 될 것이다. ‘불려 나온’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반기문도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아 어느 정당으로 가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그 때문에 모든 정당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또 지지를 받기 때문에 높은 지지율이 나오지만 한편에 서는 순간 지지율은 급락한다. 지금은 모든 정파, 지역, 세대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지만 당을 선택하고 후보로 나서는 순간, 떠날 사람은 결국 떠나는 냉정한 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하고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는데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는 것도 몹시 부담스러운 일이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뚜렷한 업적이 없다는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 유엔 사무총장이었다는 비판은 한국 외교에 짐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정치적 상황 때문에 ‘반기문 대망론’에 대한 희망과 전망이 뒤섞여 쏟아져 나오지만 임기가 끝나는 1년 뒤까지도 이런 상황이 유지될 것인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지속되더라도 나는 그가 대통령에 출마하지 말고 유엔 사무총장의 경력을 활용하여 대한민국에 ‘유엔 본부’를 유치하는 데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성대석은 <아시아의 심장, 한반도 UN본부>라는 책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우리나라에 유엔 제5본부를 유치하자고 주장했는데 나도 크게 공감했다. 현재 유엔 본부는 제네바(스위스), 뉴욕(미국), 빈(오스트리아), 나이로비(케냐)에 있는데 3·4본부는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오스트리아 출신의 발트하임 총장과 아프리카 출신의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총장 임기 후에 오스트리아와 아프리카에 유치되었다. 만약 유엔의 다섯번째 본부가 필요하다면 아시아로 오게 될 가능성이 큰데 이미 인천 송도에 직원 500명이 근무하는 꽤 큰 규모의 유엔 산하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을 유치한 한국이 유리한 상황이다. 나는 이 일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조국을 위해 해야 할 더 멋진 일로 보인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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