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17) 안철수의 시간
(17) 안철수의 시간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새 정치’ 열망 담아내지 못하고
합당으로 기성 정치에 굴복한 탓
지지율 겹치는 박원순 존재도 한몫
그래도 10% 가까운 지지는 자산 총선 참패 또는 의석 줄어들면
그다음은 안철수의 시간
총선 후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지지율 15%까지 끌어올린다면
문재인 대항마는 안철수가 될 것 왜 아직 ‘아이폰’을 만들지 못했나 사실 ‘안철수 현상’은 ‘디지털 혁명’으로 불리는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에 가능했다. 조직과 세가 없는 개인도 한순간에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1987년에 노태우는 다수당의 다수파로 대통령이 됐다. 1992년 김영삼은 다수당의 소수파로 대통령이 됐다. 1997년 김대중은 소수파의 다수파로 대통령이 됐다. 2002년 노무현은 놀랍게도 소수파의 소수파로 대통령이 됐다. 인터넷의 힘이었다. 2012년 안철수는 그저 ‘개인’이었는데 대통령이 거의 될 뻔했다. 스마트폰의 힘이었다. 디지털 혁명은 콘텐츠를 만드는 (한계)비용을 ‘제로’로 수렴시키고, 양을 ‘무한 복제’하고, ‘빛의 속도’로 유통시킨다. 이런 세상에서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치인도 순식간에 흥하고 한순간에 망한다. 그렇게 불려나온 안철수의 불행은 불러낸 대중도, 불려나온 그도 불러낸 이유를 정확히 몰랐다는 데 있다. 안철수의 ‘청춘 콘서트’에 몰려간 젊은이들 중에는 한나라당 지지자에서 통합진보당 지지자들까지 다 섞여 있었으므로 그들의 기대도 다양했다. 결국 그는 무엇에 분노하는지, 무엇과 싸우려 하는지, 누구를 대변하려고 하는지, 즉 정치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추상적인 ‘새 정치’를 내걸었으나 안철수가 ‘새 인물’이라는 것 말고는 내용도, 함께하는 인물도 새롭지 못해 설득력이 떨어졌다. 나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를 여전히 점유율 1위이긴 하나 ‘시대에 뒤떨어진 노키아’, ‘옴니아 수준의 삼성’, ‘아이폰 없는 애플’에 비유한 적이 있다. 결국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패자가 되었다. 새누리당이 지금처럼 혁신 없이 간다면 다음 대선에서는 망한 노키아 꼴이 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문재인도 ‘갤럭시’를 만들지 못했고, 안철수도 ‘아이폰’을 만들지 못했다. 안철수는 여전히 세가 없다. 지지율은 반의반 토막이 났다. 안철수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을 담아내지 못하고 대선 후보 양보와 독자 정당 창당 포기, 그리고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기성 정치에 굴복한 탓이다. 또 다른 이유는 안철수와 지지층이 겹치는 박원순의 존재다.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대권주자였던 정몽준을 크게 이기고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 시장이 안철수 지지자를 상당 부분 흡수했다.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지지율이 한 자리로 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 가까운 지지자들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자산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대통령이 1당이나 2당에서만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민주당과의 합당이 결정적 실수라고 단정하는 것도 아직은 이른 판단이다. 제3당을 만들어 제2당을 붕괴시킨 사례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김영삼, 김대중과 대통령이었던 노무현만이 가능했던 일이다. 한국과 미국 대선을 분석해 보면 치열한 경선을 치르고 본선에서 분열하지 않으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2007년 한국 대선에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그랬고,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그랬다. 대체로 정권을 빼앗긴 야당의 경우는 정권을 다시 찾아오라는 지지자들의 압력 때문에 분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당내에서 치열하게 경쟁한 결과 강한 비토 층이 형성되더라도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 야당 지지층은 다 흡수할 수 있다. 따라서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치열하게 싸우는 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3주간 혁신을 둘러싼 문재인과 안철수의 긴장과 갈등은 두 사람 모두에게 득이 되었다. 문재인, 승부처는 서울이다 누가 뭐래도 지금 야당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는 문재인 대표다. 대선 역사상 두번째로 많은 득표를 한 후보이면서 현재 야당의 대표다. 강력한 지지층도 있고, 유일하게 계파로 부를 만한 세를 이끌고 있다. 지금은 어느 모로 보나 문재인의 시간이다. 문재인 대표가 당의 혁신과 통합을 통해 총선 승리를 이끈다면 사실상 문재인 대세론은 조기에 구축될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대표가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안철수 의원은 ‘혁신’을, 그리고 문 대표는 ‘통합’을 주도하면서 두 사람이 전면에서 선거를 이끌어야 한다. 혁신위는 문재인 대표에게 부산 출마를 요구하면서 안철수 의원 역시 부산으로 내려가기를 원한 모양인데 나는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당연히 문재인 대표에게 서울 출마를 권했어야 한다. 종로에서 새누리당이 오세훈을 낸다면 문재인이나 안철수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선봉장의 역할을 맡겨야 하는 것 아닌가. 1985년 신민당 돌풍 당시 이민우 총재가 종로로 나갔듯이 문재인 대표가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노무현도 부산 지역구를 떠나서 종로에서 출마하지 않았는가. 문재인 대표는 당연히 그 길을 선택해야 한다. 1997년 김대중, 2002년에 노무현 모두 호남의 압도적 투표와 지지, 충청 승리, 그리고 수도권에서 큰 표 차 승리의 같은 방식으로 이겼다. 노무현 후보조차 부산, 울산, 경남 어느 지역도 30%를 넘지 못했다. 그러고도 이겼다. 승부처는 서울이지 부산이 아니다. 2012년에는 호남 투표율이 평균 정도로 떨어졌고, 충청은 크게 졌고, 수도권에서는 사실상 비겼다. 그래서 진 것 아닌가. 호남 흔들리고, 충청 밀리고, 수도권 불확실한데 부산 출마가 왜 나오나. 만약 총선에서 참패하거나 적어도 현재보다 의석이 줄어든다면 그다음은 안철수의 시간이다. 문재인의 경쟁력과 지도력에 실망한 야권 지지자들은 다시 안철수 의원을 주목할 것이다. 총선 후 안철수 의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뿐이다. 그 짧은 시간에 뭔가를 해야 한다. 2016년 추석이 끝난 직후의 지지율을 15%까지 끌어올린다면 문재인 대표의 경선 대항마는 안철수 의원이 될 것이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를 양보받았고, 2014년 합당을 통해 재선의 도움을 받은 박원순 시장은 지지율에서 역전되면 나올 명분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때도 안철수의 지지율이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다음은 박원순의 시간이다. 본격적으로 박원순 시장을 경선으로 불러낼 것이다. 문재인, 안철수의 대선 레이스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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