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이 27일 오후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매와 국내 민간인 사찰 의혹 논란에 대한 현안 보고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정원 해킹자료 안 내고 “불법 없다” 말뿐
삭제자료 51건 목록만 공개
대상·내용은 밝히지 않아
국내실험용 31건 포함
숨진 직원에 ‘책임 떠넘기기’
삭제자료 51건 목록만 공개
대상·내용은 밝히지 않아
국내실험용 31건 포함
숨진 직원에 ‘책임 떠넘기기’
지난 18일 숨진 채 발견된 국가정보원 직원 임아무개(45)씨가 삭제한 국정원 해킹 관련 자료는 모두 51건으로 이 가운데 31건이 국내 실험용이었다고 국정원이 27일 밝혔다. 이는 ‘해킹 프로그램은 해외 북한 공작원만을 대상으로 사용했다’는 이병호 국정원장의 애초 해명과 배치되는데다, 민간인 사찰용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임씨가 극단적 선택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사망한 임씨가 해킹 프로그램 도입과 운용을 주도한 탓에 내막을 알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 논란을 키우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정보위 전체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숨진 임씨가 삭제한 자료는 51건이고 이 중 대북·대테러용이 10건, (해킹) 실험에 실패한 것이 10건, 국내 실험용이 31건이었다고 국정원이 밝혔다”고 말했다. 다만, 내국인은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국정원 자체 실험용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임씨가 삭제한 자료 51건의 구체적인 대상은 밝히지 않고 복구한 자료의 리스트만 가공해 여야 정보위원들에게 공개했다. 한 야당 정보위원은 “이름이나 내역이 적시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무슨 자료인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대북·대테러용이라고 밝힌 10건의 자료도 실제 대북·대테러용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증명할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야당이 요구한 36개 자료는 물론, 의혹을 해소할 근거도 공개하지 않고 “직을 걸고 불법사찰한 사실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참석한 정보위원들은 전했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또 국정원이 도입한 해킹 프로그램 ‘아르시에스’(RCS·원격제어시스템)를 통한 “카카오톡 도·감청은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야당 정보위원은 “(국정원장이 증거는 내지 않고) 다 믿어 달라고만 한다. 정보위 전체회의 분위기가 교회 같다”고 말했다.
반면, 국정원은 삭제된 자료를 둘러싼 책임을 실무자인 임씨에게 떠넘기며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신경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아르시에스 관련된 일은 임씨가 주도적으로 해왔고, 이씨가 모든 책임을 졌기 때문에 임씨가 사망해 (자료 내용의) 상당 부분을 알 수 없게 됐다고 국정원이 여러차례 보고했다”고 전했다.
김경욱 이승준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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