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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청와대-새누리의 ‘부당거래’…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등록 2015-07-17 18:43수정 2015-07-19 10:40

[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12) 새누리당 권력투쟁 관전기(하)

“너 지금부터… 범인 해라” 새누리당은 유승민을 범인으로 만들었다
유승민이라는 혁신의 작은 불꽃마저 꺼버린 건 ‘민주계’ 인사들이다
옛 통일민주당을 지지한 합리적 보수가 이탈하면 총선은 힘들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정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승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승부사였다. 전광석화 같은 기습으로 시작해 속전속결로 끝냈다. 당·청 관계는 ‘수직적’으로 돌아갔다. 대통령에게 예상치 못한 강펀치를 맞았던 ‘비박’은 첫주에는 싸울 의사를 보이더니 두주 만에 전의를 상실하고, 불과 3주 만에 백기를 들었다. 완전한 패배였다. 유승민 원내대표와 러닝메이트였던 원유철 정책위의장을 원내대표로 추대하는 장면은 패자의 굴욕감을 극대화했다. 정치 도의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들이 뽑았고 불과 2주 전에 의원총회에서 재신임했던 원내대표의 사퇴 결의를 ‘박수’로 환영하더니 그 자리를 메운 신임 원내대표에게 ‘꽃다발’로 축하하는 모습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당을 무릎 꿇린 박근혜 대통령은 당을 다시 장악했다.

영화 <부당거래>의 한 장면처럼

유승민은 그렇게 ‘숙청’되었다. 김무성과 원유철은 유승민을 지키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는 처음부터 “대통령을 어떻게 이기겠느냐”며 유승민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했다. 만일 김무성이 “우리가 개정안의 위헌성을 충분히 살피지 않은 것은 불찰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정당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지도부도 개정안에 동의했기 때문에 압도적 지지로 통과된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책임이 40%면 나를 비롯한 최고위원들의 책임이 60%다. 유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면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할 수도 있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김무성은 유승민의 자리를 치우고, 원유철은 유승민의 생각을 지웠다. 원유철은 “경제 활성화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를 통해 얻는 재원으로 복지에 투입해야 한다.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증세를 논의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통령 생각과 같다”며 유승민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당·청은 한 몸”이라며 “당·청이 불안하면 국정 운영이 불안해지고 국민이 불안해진다…. 당·청 협력이 국정 운영을 책임진 여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집안에서도 부부싸움 할 때 밖이 모르게 싸운다. 밖이 다 알게 싸우면 이혼하자는 것과 같다”고 했다. 결국 그는 ‘노선’과 ‘방식’ 모두 유승민과 반대로 가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본 듯하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나는 영화 <부당거래>가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 경찰국장은 형사에게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범인이 있어야 돼! 살아 팔딱거리는 놈이 우리 손에 딱 잡혀서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실려야 한다고. 과정은 필요 없고, 결과! … 잡고, 걸고, 재판 때리고, 집어넣고…. 야, 너만큼 일처리 깔끔하게 하는 놈이 없으니까 하는 소리 아니냐.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그동안 없던 줄이고 빽이고 한번에 생기는 거야…. 명심해라 청와대까지 걸린 이벤트다.” 결국 형사는 범인을 만들어낸다. “너 지금부터… 범인 해라.” 새누리당은 유승민을 범인으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화기애애하게 웃는 모습을 연출했다. 대통령과 당대표가 만나고 당·정·청 협의도 다시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새누리당에도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수평적 당·청 관계’를 내걸고 대표가 된 김무성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점수로 따지자면 스스로도 미흡하다고 생각된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생각을 많이 전달했고, 거기에 대한 답변도 많이 받았다”는 해명이 오히려 군색했다. 그는 취임 1주년 회견에서 “저의 각오와 열정을 이 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면서 윤동주의 ‘새로운 길’을 읊었다. 전문을 찾아 읽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아무리 읽어봐도 김무성의 새로운 길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시를 읽으면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는 경구가 문득 떠올랐다. 그는 강물은 계속 흘러가기 때문에 내가 다시 발을 담그는 순간은 처음 발을 담글 때의 그 강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윤동주의 세계관도 비슷하다. 매일매일 내를 건너 숲으로 가고, 고개를 건너 마을로 가지만 그것은 결코 같은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날마다 피는 꽃이 다르고, 지저귀는 새가 다르고, 오가는 사람들이 다르고, 날씨가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길이라고 본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강물만 다른 것이 아니고 발을 담그는 나도 처음 발을 담글 때의 내가 아니라고 봤다. 형식논리가 아닌 변증법적 논리다. 윤동주 역시 길을 통해 ‘나도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고 통찰한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길’은 실은 ‘새로운 나’인 것이다. 그런 뜻으로 김무성 대표의 마음을 읽으면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항상 변하는 것이고, 나도 그 상황에 맞춰 변하고 있다’는 정도가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 거사(?)로 김무성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는 얻게 되었다. 아쉽게도 딱 그만큼 ‘대통령 자리’에서는 더 멀어졌을 것이다. 유승민은 대통령과 거리가 더 멀어졌지만 딱 그만큼 대통령 자리에는 가까워졌을 것이다. 한국에서 대통령은 그런 존재다. 대통령과 맞서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졌을 때, 대통령으로 하여금 밤에 잠을 못 이루게 할 정도로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 다음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에게 가까이 갈 기회 얻은
김무성은 ‘대통령 자리’와 멀어져
유승민은 지고도 앞으로 갈 가능성
‘개혁적 보수’의 상징이 되었고
대통령 덕에 ‘전국구 정치인’ 돼

박 대통령이 거머쥔 오늘 승리는
어쩌면 내일의 패배와 맞바꾼 것
비박 지도부로 야당과 타협하며
업적 남길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야당과 대결’이란 위험한 길 택해

‘공포의 이미지’를 남긴 박 대통령

정치 분석을 할 때는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먼저 ‘누구의 관점’에서 볼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일기예보는 자연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객관적 시각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슈도 정당 사이에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정당에서도 계파나 개인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이번 파동도 관점에 따라 득실 분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 고려할 것은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 언론이나 정치권이 보이는 1차적 반응보다는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미칠 파장을 분석하는 것이다. 정치 분석은 정치 실행의 6단계, 즉, 1. 의도는 무엇인가?(무엇을 노리고) 2. 의지는 강한가?(흔들림 없이) 3. 능력은 있는가?(관철시킬 힘) 4. 실행을 했는가? 5. 결과는 어떤가?(언론과 정치권의 반응) 6. 파장은 어떨까?(장기적 예측)를 모두 살펴야 한다. 많은 분석가가 의도에 주목하지만 사실 의도보다는 반응이 더 중요하고, 반응보다는 파장이 훨씬 중요하다. 반응 분석이 1차방정식이라면 파장 분석은 함수다.

단기적으로 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은 승리했다. 잘 짜진 계획대로 ‘쿠데타’에 성공했다. 연전연패하던 상황에서 당내 주도권을 되찾았다. 당내 주류이던 비박 내부에 큰 균열도 냈다. ‘대통령에 맞서’는 비박의 보스들을 무릎 꿇림으로써 ‘두려움’ 때문에 감히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든 것도 큰 수확이다. 그러나 이기고도 뒤로 가고, 지고도 앞으로 가는 것이 정치다. 노무현은 떨어질 때마다 앞으로 간 정치인이다. 유승민 역시 지고도 앞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불과 몇 개월 만에 ‘개혁적 보수’의 상징이 되었고, 박근혜 대통령 덕(?)에 이른바 ‘전국구’ 정치인이 되었다. 유승민은 사퇴의 변에서 “평소 같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오늘이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 지난 4월 국회 연설에서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제가 꿈꾸는 따듯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는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습니다”라고 자신의 노선과 정체성을 규정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의 정체성을 규정해버렸다.

이로써 유승민은 ‘신보수’의 상징으로 ‘구보수’의 상징인 박근혜와 대척점에 서게 됐다. 보수의 정치적 본거지인 ‘대구’ 출신에 ‘개혁성’과 ‘정책’으로 무장한 ‘젊은’ 유승민은 대구·경북의 ‘미래’다. 유승민은 ‘보수의 전략적 자산’이 아닌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산’이 되는 길을 택했다. 현명한 선택이다. 한나라당의 전략적 자산이었던 김무성, 홍준표, 김문수, 오세훈, 정몽준은 ‘보수의 전략적 자산’이 되는 길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수든 진보든 ‘외연 확대’가 가능한 정치인이 후보로 뽑힌다. ‘민심’이 ‘당심’을 견인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2006년 서울시장 경선,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2014년 경기도지사, 제주도지사 경선에서 오세훈, 이명박, 남경필, 원희룡이 승리한 것은 당의 정체성에 맞는 후보여서가 아니라 이길 가능성이 더 큰 후보였기 때문이다. 10년 집권의 새누리당이 국민의 피로감을 극복하고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야당 후보보다 더 젊은 후보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유승민과 오세훈이 경쟁하는 구도도 그려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장은 승리했지만 장기적으로는 패배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유승민을 몰아낼 의도를 갖고 강하게 밀어붙여서 원하는 결과를 얻었지만 오늘의 승리는 어쩌면 내일의 패배와 맞바꾼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가가 기록하게 될 한 줄의 업적을 아직도 못 만든 박근혜 대통령은 앞으로는 더 험난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야당은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과 직접 맞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비박 지도부를 내세워 야당과 타협의 정치를 하면서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길을 버리고 ‘불확실한 공천권’과 ‘흔쾌하지 않은 당의 충성’을 얻기 위해 야당과의 대결이라는 위험한 길을 택했다. 국민들에게 ‘공포’의 이미지를 남긴 것도 박근혜 대통령이 크게 잃은 것이다. 나탄 샤란스키는 <민주주의를 말한다>라는 책에서 ‘누구든지 광장 한가운데로 나가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체포, 구금, 물리적 위해에 대한 두려움 없이 발표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자유사회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공포사회다’라고 했는데 광장은 신문·방송·인터넷, 그리고 실제 광장일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큰 용기 없이는 대통령과 맞설 수 없고, 웬만한 용기 없이는 대통령을 비판할 수도 없다.

민주계, 권력에 투항해버리다

그러나 이 싸움의 가장 큰 패배자는 새누리당이다. 유승민이라는 혁신의 작은 불꽃마저 꺼버렸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혁신과 개혁의 불을 끈 사람들이 한때는 개혁의 상징이었던 ‘민주계’ 인사들이었다는 것이다. 서청원·이인제·김태호가 앞장서고 김무성이 동조했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1990년 3당 합당 이래로 티케이(TK, 대구경북)를 중심으로 한 민정계의 ‘보수성’과 피케이(PK, 부산경남)를 중심으로 한 ‘민주계’의 개혁성이 충돌하는 긴장 속에서 혁신이 일어났는데 이제는 민주계가 완전히 투항해버려 혁신의 동력이 사라졌다. 총선 전에 큰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과거 통일민주당을 지지했던 합리적 보수 유권자가 새누리당에서 이탈할 것이고 총선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민주계’가 자기 정체성을 버리고 권력에 투항해버렸기 때문이다. 국가, 기업, 정당, 어느 조직이든 혁신이 사라지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김무성 대표가 ‘대통령에 맞서’ 유승민을 지키는 ‘강한 사자’였다면 ‘낭만적인 민들레’가 아닌 이연실의 ‘민들레’를 들려줬을지 모른다. ‘민들레 민들레 피어나 봄이 온 줄 알았네. 잠든 땅 목숨 있는 건 모두 다 눈부시게 피어났다네 … 눈 덮인 겨울 산에서 시름 앓고 울었네. 길고도 추웠던 겨울 견디어 화사하게 피어났다네. 겨울이 가면 봄이 올 줄을 잊고 살았네 … 그 겨울 길고도 추웠음에 깜빡 잊고 살았네. 민들레 민들레 피어나 봄이 온 줄 알았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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