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12) 새누리당 권력투쟁 관전기(하)
“너 지금부터… 범인 해라” 새누리당은 유승민을 범인으로 만들었다
유승민이라는 혁신의 작은 불꽃마저 꺼버린 건 ‘민주계’ 인사들이다
옛 통일민주당을 지지한 합리적 보수가 이탈하면 총선은 힘들 것이다
“너 지금부터… 범인 해라” 새누리당은 유승민을 범인으로 만들었다
유승민이라는 혁신의 작은 불꽃마저 꺼버린 건 ‘민주계’ 인사들이다
옛 통일민주당을 지지한 합리적 보수가 이탈하면 총선은 힘들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김무성은 ‘대통령 자리’와 멀어져
유승민은 지고도 앞으로 갈 가능성
‘개혁적 보수’의 상징이 되었고
대통령 덕에 ‘전국구 정치인’ 돼 박 대통령이 거머쥔 오늘 승리는
어쩌면 내일의 패배와 맞바꾼 것
비박 지도부로 야당과 타협하며
업적 남길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야당과 대결’이란 위험한 길 택해 ‘공포의 이미지’를 남긴 박 대통령 정치 분석을 할 때는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먼저 ‘누구의 관점’에서 볼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일기예보는 자연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객관적 시각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슈도 정당 사이에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정당에서도 계파나 개인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이번 파동도 관점에 따라 득실 분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 고려할 것은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 언론이나 정치권이 보이는 1차적 반응보다는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미칠 파장을 분석하는 것이다. 정치 분석은 정치 실행의 6단계, 즉, 1. 의도는 무엇인가?(무엇을 노리고) 2. 의지는 강한가?(흔들림 없이) 3. 능력은 있는가?(관철시킬 힘) 4. 실행을 했는가? 5. 결과는 어떤가?(언론과 정치권의 반응) 6. 파장은 어떨까?(장기적 예측)를 모두 살펴야 한다. 많은 분석가가 의도에 주목하지만 사실 의도보다는 반응이 더 중요하고, 반응보다는 파장이 훨씬 중요하다. 반응 분석이 1차방정식이라면 파장 분석은 함수다. 단기적으로 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은 승리했다. 잘 짜진 계획대로 ‘쿠데타’에 성공했다. 연전연패하던 상황에서 당내 주도권을 되찾았다. 당내 주류이던 비박 내부에 큰 균열도 냈다. ‘대통령에 맞서’는 비박의 보스들을 무릎 꿇림으로써 ‘두려움’ 때문에 감히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든 것도 큰 수확이다. 그러나 이기고도 뒤로 가고, 지고도 앞으로 가는 것이 정치다. 노무현은 떨어질 때마다 앞으로 간 정치인이다. 유승민 역시 지고도 앞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불과 몇 개월 만에 ‘개혁적 보수’의 상징이 되었고, 박근혜 대통령 덕(?)에 이른바 ‘전국구’ 정치인이 되었다. 유승민은 사퇴의 변에서 “평소 같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오늘이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 지난 4월 국회 연설에서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제가 꿈꾸는 따듯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는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습니다”라고 자신의 노선과 정체성을 규정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의 정체성을 규정해버렸다. 이로써 유승민은 ‘신보수’의 상징으로 ‘구보수’의 상징인 박근혜와 대척점에 서게 됐다. 보수의 정치적 본거지인 ‘대구’ 출신에 ‘개혁성’과 ‘정책’으로 무장한 ‘젊은’ 유승민은 대구·경북의 ‘미래’다. 유승민은 ‘보수의 전략적 자산’이 아닌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산’이 되는 길을 택했다. 현명한 선택이다. 한나라당의 전략적 자산이었던 김무성, 홍준표, 김문수, 오세훈, 정몽준은 ‘보수의 전략적 자산’이 되는 길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수든 진보든 ‘외연 확대’가 가능한 정치인이 후보로 뽑힌다. ‘민심’이 ‘당심’을 견인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2006년 서울시장 경선,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2014년 경기도지사, 제주도지사 경선에서 오세훈, 이명박, 남경필, 원희룡이 승리한 것은 당의 정체성에 맞는 후보여서가 아니라 이길 가능성이 더 큰 후보였기 때문이다. 10년 집권의 새누리당이 국민의 피로감을 극복하고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야당 후보보다 더 젊은 후보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유승민과 오세훈이 경쟁하는 구도도 그려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장은 승리했지만 장기적으로는 패배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유승민을 몰아낼 의도를 갖고 강하게 밀어붙여서 원하는 결과를 얻었지만 오늘의 승리는 어쩌면 내일의 패배와 맞바꾼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가가 기록하게 될 한 줄의 업적을 아직도 못 만든 박근혜 대통령은 앞으로는 더 험난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야당은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과 직접 맞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비박 지도부를 내세워 야당과 타협의 정치를 하면서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길을 버리고 ‘불확실한 공천권’과 ‘흔쾌하지 않은 당의 충성’을 얻기 위해 야당과의 대결이라는 위험한 길을 택했다. 국민들에게 ‘공포’의 이미지를 남긴 것도 박근혜 대통령이 크게 잃은 것이다. 나탄 샤란스키는 <민주주의를 말한다>라는 책에서 ‘누구든지 광장 한가운데로 나가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체포, 구금, 물리적 위해에 대한 두려움 없이 발표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자유사회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공포사회다’라고 했는데 광장은 신문·방송·인터넷, 그리고 실제 광장일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큰 용기 없이는 대통령과 맞설 수 없고, 웬만한 용기 없이는 대통령을 비판할 수도 없다. 민주계, 권력에 투항해버리다 그러나 이 싸움의 가장 큰 패배자는 새누리당이다. 유승민이라는 혁신의 작은 불꽃마저 꺼버렸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혁신과 개혁의 불을 끈 사람들이 한때는 개혁의 상징이었던 ‘민주계’ 인사들이었다는 것이다. 서청원·이인제·김태호가 앞장서고 김무성이 동조했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1990년 3당 합당 이래로 티케이(TK, 대구경북)를 중심으로 한 민정계의 ‘보수성’과 피케이(PK, 부산경남)를 중심으로 한 ‘민주계’의 개혁성이 충돌하는 긴장 속에서 혁신이 일어났는데 이제는 민주계가 완전히 투항해버려 혁신의 동력이 사라졌다. 총선 전에 큰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과거 통일민주당을 지지했던 합리적 보수 유권자가 새누리당에서 이탈할 것이고 총선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민주계’가 자기 정체성을 버리고 권력에 투항해버렸기 때문이다. 국가, 기업, 정당, 어느 조직이든 혁신이 사라지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김무성 대표가 ‘대통령에 맞서’ 유승민을 지키는 ‘강한 사자’였다면 ‘낭만적인 민들레’가 아닌 이연실의 ‘민들레’를 들려줬을지 모른다. ‘민들레 민들레 피어나 봄이 온 줄 알았네. 잠든 땅 목숨 있는 건 모두 다 눈부시게 피어났다네 … 눈 덮인 겨울 산에서 시름 앓고 울었네. 길고도 추웠던 겨울 견디어 화사하게 피어났다네. 겨울이 가면 봄이 올 줄을 잊고 살았네 … 그 겨울 길고도 추웠음에 깜빡 잊고 살았네. 민들레 민들레 피어나 봄이 온 줄 알았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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