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11) 야권의 대선 삼국지
11년전 한나라당 ‘박근혜-이명박-손학규’ 삼국지로 정권 탈환
박원순 ‘메르스 정국’의 명백한 승자…‘총사령관’ 이미지 각인
문재인 김대중·노무현의 ‘필승 공식’ 재현하기엔 아직 힘 부쳐
안철수 20~40대 지지 복원 관건…박원순 발 묶이면 대안 부각
11년전 한나라당 ‘박근혜-이명박-손학규’ 삼국지로 정권 탈환
박원순 ‘메르스 정국’의 명백한 승자…‘총사령관’ 이미지 각인
문재인 김대중·노무현의 ‘필승 공식’ 재현하기엔 아직 힘 부쳐
안철수 20~40대 지지 복원 관건…박원순 발 묶이면 대안 부각
2007년 12월 박근혜는 이회창을 끝내 만나지 않았다.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회창은 12월14일, 12월17일, 그리고 선거 전날인 12월18일 저녁까지 세 번이나 집으로 찾아갔으나 박근혜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8월20일 박근혜의 승복 연설은 인상적이었다. “저, 박근혜 경선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 국민과 당원의 ‘10년 염원’을 부디 명심하시어 정권교체에 반드시 성공해주시기 바랍니다. 치열했던 경선은 이제 끝났습니다. … 경선 과정의 일들은 이제 잊어버립시다. 하루아침에 잊을 수 없다면 며칠 몇날이 걸려서라도 잊읍시다. 그리고 다시 열정으로 채워진 마음으로 돌아오셔서 저와 함께 당의 화합에 노력하고 여러분의 그 열정을 정권교체에 쏟아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치열했던 경선이었고 박빙의 승부였던 점을 고려하면 놀라울 정도로 감정의 동요를 드러내지 않은 연설이었다. 내용보다 태도가 훨씬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나라당 혁신위원장 홍준표’의 말말말
한국과 미국 대선 모두 치열하게 경선하고, 분열하지 않으면 본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그랬고,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도 그랬다. 도저히 당을 같이할 수 없을 정도로 싸웠는데도 헤어지지 못한(않은 것이 아니라) 것은 정권을 빼앗긴 야당의 경선이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정권을 되찾아오라는 지지자들의 압력이 분열을 막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2004년 박근혜가 당대표로 선출된 후(2004년 3월23일 임시전당대회에서 대표가 되어 총선을 이끌었던 박근혜는 7월19일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 대표로 다시 선출되었다) 시작된 3년의 한나라당 경선 레이스는 거의 전쟁이었다. 이른바 빅3로 불린 박근혜 당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경선 레이스는 끝까지 지리멸렬했던 열린우리당과 비교하면 처음부터 흥미진진했다.
대선에서 연속으로 패배한 한나라당은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과반수를 내주며 121석의 제2당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 상태로는 차기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아오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배했고, 2005년 2월 당을 재정비하기 위해 ‘혁신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박근혜 대표는 ‘직접’ 혁신위원장을 맡으려고 했으나 당내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홍준표에게 맡겼다. 홍준표 위원장은 한 언론(월간조선 2005년 4월호)과의 인터뷰에서 왜 박근혜 대표가 대척점에 있는 홍 의원에게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느냐는 질문에 “1999년 당시 이회창 총재는 당을 혁신하기 위해 ‘뉴밀레니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2001년에는 ‘국가혁신위원회’를 만들었죠.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 혁신위원회가 명실상부한 당 개혁의 중심축이 되기 위해서는 외부의 어떠한 간섭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게 전제되어야 합니다. … 제가 박근혜 대표에게 이런 역제의를 했습니다. ‘혁신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사안에 따라 의원총회 및 운영위원회의 추인을 받을 경우, 그 내용이 당 방침으로 곧바로 확정돼야 한다. 이외에 어떠한 추가 논의도 없어야 한다. 이같은 독립적인 권한을 부여해주면 혁신위원장직 제의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전권을 줄 테니까 해보라’고 하더군요.”
“제일 시급한 혁신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997년 대선에서 패한 한나라당은 이후 어떠한 변화도 없이 그대로 이회창 총재 체제로 복귀했습니다. … 패배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2002년 12월 대선을 치렀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패할 수 없는 대선에서 두 차례나 정권을 잡지 못한 한나라당은 이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부패정당, 수구정당, 무능정당, 특권정당의 이미지가 고착돼 왔습니다.” 그러면서 홍준표는 “차기 대선을 노리는 ‘빅4’(박근혜·이명박·손학규·강재섭)를 모두 원형경기장 안에 밀어 넣을 것입니다.” 전쟁 같은 경선이 예고되는 순간이었다. 이회창만 바라보다 두 번이나 패배한 것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옳은 선택이었다. 화살이 많을수록 과녁을 맞힐 가능성은 높아진다. 바람대로 화살은 과녁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2005년 8월31일 한나라당은 홍천에서 연찬회를 개최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밖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의 수류탄(노 대통령의 표현)을 던졌고, 안에서는 ‘혁신안’을 두고 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대선 후보 선출 방식을 둘러싸고 각 진영은 크게 충돌했다. 한나라당의 초청으로 연찬회 특강을 맡았던 나는 현장의 긴장감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 장면들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재현되고 있다. 두 번의 대선 패배, 뒤바뀐 의석수, ‘빅3(문재인 당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의 존재’, ‘혁신위원회의 출범’. 문재인의 당대표 선출로 시작된 야권발 ‘대권 삼국지’는 과연 한나라당처럼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시작을 보니 그런 절박과 긴장은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표는 ‘직접’ 혁신위원장을 맡아 혁신을 주도하려 했으나 문재인 대표는 남에게 맡겼다. 김상곤 위원장은 문재인 대표와 ‘대척점’에 있는 인사도 아니다.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들 중 다수는 외부 인사이거나 정치 경험이 짧은 사람들이다. 홍준표 위원장은 당내 인사 17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빅3라고는 하지만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초선의원’이고 박원순 시장도 여의도 경험이 없다. 반면에 박근혜 대표, 이명박 시장, 손학규 지사는 적어도 ‘리더’로 인식되고 있었다. 한나라당은 선수 구성도 조화를 잘 이루었다. 보수(박근혜), 중도 보수(이명박), 중도(손학규)의 이미지로 집토끼와 산토끼 두 마리를 다 잡을 수 있는 이상적인 조합이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지지 기반이 흔들리고 외연 확대는 요원하다. 수비도 공격도 다 불안하다.
치열하게 경선하고 분열 안하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명박과 박근혜 경선이 그랬고
오바마와 힐러리 경선이 그랬다
정권 빼앗긴 야당은 그래야 한다 갈수록 심한 견제 받을 박원순
호남·충청·수도권 뚫어야 할 문재인
20~40대 지지 회복해야 할 안철수
당은 이들 경쟁을 전쟁 수준으로
끌어올려 흥행드라마 만들어야 문재인이 조심해야 할 ‘영남 후보론’ 6월12일 한국 갤럽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17%의 지지율로 여야를 통틀어 1위로 올라섰다. 그는 메르스 정국의 명백한 승자다. “늑장 대응보다 과잉 대응이 낫다”는 말을 남기며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국민들에게 전쟁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최고통치자처럼 행세”했다고 비판했는데 오히려 칭찬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인제 의원 역시 “메르스에 대한 국민의 공포를 정치적으로 악용해선 안 된다”며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시장을 맹비난했는데 국민을 ‘공포에 빠뜨린’ 집권당 의원이 할 말은 아니었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인 조지 부시와 맞선 민주당의 존 케리는 대부분의 대통령 자질에서 조지 부시보다 앞섰으나 ‘총사령관’의 이미지에서 밀렸는데 거기에서 승패가 갈렸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은 대통령을 뽑을 때 지도자 이미지, 공적 이미지, 혁신 이미지를 중요하게 보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은 지도자 이미지다. 문재인 대표는 13%로 떨어지며 위기를 맞았다. 1위를 빼앗긴 것보다 두 달 연속으로 김무성과의 가상대결에서 진 것이 뼈아프다. 4·29 재보선 패배 탓이다. 진짜 위기는 문재인은 김무성과의 가상대결에서 지는데 박원순은 이기는 조사 결과가 나올 때다. 2002년 대선 경선에서 노무현이 이인제에게 역전한 계기도 이회창과의 가상대결에서 엇갈린 흐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에서도 범여권의 고건과의 가상대결에서 박근혜는 지고, 이명박은 이기는 조사가 발표되면서 흐름이 역전되었다. 2017년에도 정권교체를 바라는 야권의 지지자들은 한 표라도 더 얻을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큰 선거에서는 민심이 당심을 견인한다. 문재인 대표는 ‘영남 후보론’의 오류에 빠지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이 영남 후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부산 29.85%, 경남 27.08%, 울산 35.27%의 지지를 받았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이 부산 39.87%, 경남 36.33%, 울산 39.78%를 얻은 것과 비교한다면 의외로 저조한 득표율이다. 사실 노무현은 김대중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승리했다. 첫째, 호남에서의 높은 투표율과 압도적 지지율이다. 1997년 대선 투표율은 80.7%였는데 광주 89.9%, 전남 87.3%, 전북 85.5%로 다른 지역을 압도했다. 김대중 지지율은 광주 97.28%, 전남 94.61%, 전북 92.28%로 압도적이었다. 2002년 대선 투표율은 70.8%였는데 광주 78.1%, 전남 76.4%, 전북 74.6%로 역시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았다. 노무현 지지율은 광주 95.17%, 전남 93.38%, 전북 91.58%로 역시 압도적이었다. 두 선거 모두 광주, 전남·북이 투표율 1·2·3위를 기록했다. 반면 2012년 대선 투표율은 75.8%였는데 광주 80.4%(1위), 전남 76.5%(7위), 전북 77%(5위)였고, 지지율은 광주 91.97%, 전남 89.28%, 전북 86.25%였다. 둘째, 충청에서의 승리였다. 두 후보 모두 충청이 고향인 이회창을 상대로 대전, 충남, 충북 세 지역에서 크게 이겼다. 반면 문재인은 대전만 비슷한 득표를 기록했을 뿐 충남과 충북은 모두 13% 차로 크게 졌다. 셋째, 수도권의 승리였다. 김대중은 서울에서 이회창을 44.87% 대 40.89%, 경기에서 39.28% 대 35.54%, 인천에서 38.51% 대 36.40%로 이겼다. 노무현은 더 크게 이겼다. 서울에서 51.30% 대 44.95%, 경기에서 50.65% 대 44.18%, 인천에서 49.82% 대 44.56%로 여유 있게 이겼다. 문재인은 서울에서만 박근혜에게 51.42% 대 48.18%로 이겼을 뿐, 경기 49.19% 대 50.43%, 인천 48.04% 대 51.58%로 져서 결국 수도권 전체에서 비슷하게 득표했다. 결국 김대중과 노무현이 승리했던 공식(?)을 고려했을 때, 갤럽의 발표는 문재인의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다. 박원순과 문재인의 지지율을 비교해보면 서울 22% 대 8%, 인천/경기 14% 대 13%, 대전/충청 18% 대 15%, 광주/전라 25% 대 21%, 부산/울산/경남 14% 대 15%로 밀렸다. 특히 호남에서는 안철수도 18%를 얻어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보였다. 문재인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정부 구성 능력 있는 당으로 혁신해야 2011년 4월 재보선에서 손학규는 한나라당의 텃밭인 분당에서 강재섭을 이겼다. 2013년 4월 재보선에서 안철수는 노원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 후보가 나왔음에도 60.46%의 압도적 득표로 승리했다. 이 세 선거의 공통점은 새누리당 지지층을 상당히 흡수했다는 것이다.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은 정몽준을 13%의 큰 차로 이겼는데 이것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를 찍었던 유권자 중에 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으로 옮겨 온 유권자가 꽤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누리당의 개혁성이 약해지면서 ‘온건 보수’(개혁적 보수, 합리적 보수 등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지만) 유권자가 방황하고 있다. 과거 김영삼이 이끌었던 통일민주당의 지지자들 중 일부가 당이 아니라 인물에 따라 흔들리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갤럽의 조사를 보면 박원순과 안철수는 새누리당 지지자의 5%씩을 흡수했는데 문재인은 3%에 그쳤다. 놀랍게도 50대에서는 안철수 9%, 박원순 7%, 문재인 5%였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은 박원순의 입당과 안철수와의 합당이 없었더라면 새누리당과 경쟁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메르스 정국이 야당에 주는 교훈은 이것이다. 정부를 구성할 능력이 있는 당으로 혁신하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새누리당보다 ‘문제 해결 능력’과 ‘위기 관리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면 국민은 믿고 대한민국을 맡길 것이다. 당의 지도자들은 국가적 현안이 생길 때마다 주저하지 말고 ‘대통령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대통령처럼 보여야 대통령이 된다. 박원순 시장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직후인 2014년에는 지지율이 22%를 기록하기도 했다. 서울시장이 정국 중심에 늘 설 수는 없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심한 견제를 받을 것이고, 지지율은 조정을 받을 것이다. 불려 나오기 전에는 스스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이 박 시장의 숙명이다. 문재인은 당대표이므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호남·충청·수도권에서의 지지율 제고가 큰 숙제로 던져졌다. 안철수 의원은 총선이 다가왔을 때, 박원순 시장의 발이 묶이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려면 ‘안철수 현상’의 진원지였던 20~40대의 지지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 풀어야 할 숙제다. 당이 할 일은 이들의 경쟁을 거의 전쟁 수준으로 끌어올려 국민드라마를 만드는 것이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명박과 박근혜 경선이 그랬고
오바마와 힐러리 경선이 그랬다
정권 빼앗긴 야당은 그래야 한다 갈수록 심한 견제 받을 박원순
호남·충청·수도권 뚫어야 할 문재인
20~40대 지지 회복해야 할 안철수
당은 이들 경쟁을 전쟁 수준으로
끌어올려 흥행드라마 만들어야 문재인이 조심해야 할 ‘영남 후보론’ 6월12일 한국 갤럽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17%의 지지율로 여야를 통틀어 1위로 올라섰다. 그는 메르스 정국의 명백한 승자다. “늑장 대응보다 과잉 대응이 낫다”는 말을 남기며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국민들에게 전쟁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최고통치자처럼 행세”했다고 비판했는데 오히려 칭찬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인제 의원 역시 “메르스에 대한 국민의 공포를 정치적으로 악용해선 안 된다”며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시장을 맹비난했는데 국민을 ‘공포에 빠뜨린’ 집권당 의원이 할 말은 아니었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인 조지 부시와 맞선 민주당의 존 케리는 대부분의 대통령 자질에서 조지 부시보다 앞섰으나 ‘총사령관’의 이미지에서 밀렸는데 거기에서 승패가 갈렸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은 대통령을 뽑을 때 지도자 이미지, 공적 이미지, 혁신 이미지를 중요하게 보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은 지도자 이미지다. 문재인 대표는 13%로 떨어지며 위기를 맞았다. 1위를 빼앗긴 것보다 두 달 연속으로 김무성과의 가상대결에서 진 것이 뼈아프다. 4·29 재보선 패배 탓이다. 진짜 위기는 문재인은 김무성과의 가상대결에서 지는데 박원순은 이기는 조사 결과가 나올 때다. 2002년 대선 경선에서 노무현이 이인제에게 역전한 계기도 이회창과의 가상대결에서 엇갈린 흐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에서도 범여권의 고건과의 가상대결에서 박근혜는 지고, 이명박은 이기는 조사가 발표되면서 흐름이 역전되었다. 2017년에도 정권교체를 바라는 야권의 지지자들은 한 표라도 더 얻을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큰 선거에서는 민심이 당심을 견인한다. 문재인 대표는 ‘영남 후보론’의 오류에 빠지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이 영남 후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부산 29.85%, 경남 27.08%, 울산 35.27%의 지지를 받았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이 부산 39.87%, 경남 36.33%, 울산 39.78%를 얻은 것과 비교한다면 의외로 저조한 득표율이다. 사실 노무현은 김대중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승리했다. 첫째, 호남에서의 높은 투표율과 압도적 지지율이다. 1997년 대선 투표율은 80.7%였는데 광주 89.9%, 전남 87.3%, 전북 85.5%로 다른 지역을 압도했다. 김대중 지지율은 광주 97.28%, 전남 94.61%, 전북 92.28%로 압도적이었다. 2002년 대선 투표율은 70.8%였는데 광주 78.1%, 전남 76.4%, 전북 74.6%로 역시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았다. 노무현 지지율은 광주 95.17%, 전남 93.38%, 전북 91.58%로 역시 압도적이었다. 두 선거 모두 광주, 전남·북이 투표율 1·2·3위를 기록했다. 반면 2012년 대선 투표율은 75.8%였는데 광주 80.4%(1위), 전남 76.5%(7위), 전북 77%(5위)였고, 지지율은 광주 91.97%, 전남 89.28%, 전북 86.25%였다. 둘째, 충청에서의 승리였다. 두 후보 모두 충청이 고향인 이회창을 상대로 대전, 충남, 충북 세 지역에서 크게 이겼다. 반면 문재인은 대전만 비슷한 득표를 기록했을 뿐 충남과 충북은 모두 13% 차로 크게 졌다. 셋째, 수도권의 승리였다. 김대중은 서울에서 이회창을 44.87% 대 40.89%, 경기에서 39.28% 대 35.54%, 인천에서 38.51% 대 36.40%로 이겼다. 노무현은 더 크게 이겼다. 서울에서 51.30% 대 44.95%, 경기에서 50.65% 대 44.18%, 인천에서 49.82% 대 44.56%로 여유 있게 이겼다. 문재인은 서울에서만 박근혜에게 51.42% 대 48.18%로 이겼을 뿐, 경기 49.19% 대 50.43%, 인천 48.04% 대 51.58%로 져서 결국 수도권 전체에서 비슷하게 득표했다. 결국 김대중과 노무현이 승리했던 공식(?)을 고려했을 때, 갤럽의 발표는 문재인의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다. 박원순과 문재인의 지지율을 비교해보면 서울 22% 대 8%, 인천/경기 14% 대 13%, 대전/충청 18% 대 15%, 광주/전라 25% 대 21%, 부산/울산/경남 14% 대 15%로 밀렸다. 특히 호남에서는 안철수도 18%를 얻어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보였다. 문재인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정부 구성 능력 있는 당으로 혁신해야 2011년 4월 재보선에서 손학규는 한나라당의 텃밭인 분당에서 강재섭을 이겼다. 2013년 4월 재보선에서 안철수는 노원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 후보가 나왔음에도 60.46%의 압도적 득표로 승리했다. 이 세 선거의 공통점은 새누리당 지지층을 상당히 흡수했다는 것이다.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은 정몽준을 13%의 큰 차로 이겼는데 이것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를 찍었던 유권자 중에 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으로 옮겨 온 유권자가 꽤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누리당의 개혁성이 약해지면서 ‘온건 보수’(개혁적 보수, 합리적 보수 등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지만) 유권자가 방황하고 있다. 과거 김영삼이 이끌었던 통일민주당의 지지자들 중 일부가 당이 아니라 인물에 따라 흔들리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갤럽의 조사를 보면 박원순과 안철수는 새누리당 지지자의 5%씩을 흡수했는데 문재인은 3%에 그쳤다. 놀랍게도 50대에서는 안철수 9%, 박원순 7%, 문재인 5%였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은 박원순의 입당과 안철수와의 합당이 없었더라면 새누리당과 경쟁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메르스 정국이 야당에 주는 교훈은 이것이다. 정부를 구성할 능력이 있는 당으로 혁신하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새누리당보다 ‘문제 해결 능력’과 ‘위기 관리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면 국민은 믿고 대한민국을 맡길 것이다. 당의 지도자들은 국가적 현안이 생길 때마다 주저하지 말고 ‘대통령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대통령처럼 보여야 대통령이 된다. 박원순 시장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직후인 2014년에는 지지율이 22%를 기록하기도 했다. 서울시장이 정국 중심에 늘 설 수는 없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심한 견제를 받을 것이고, 지지율은 조정을 받을 것이다. 불려 나오기 전에는 스스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이 박 시장의 숙명이다. 문재인은 당대표이므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호남·충청·수도권에서의 지지율 제고가 큰 숙제로 던져졌다. 안철수 의원은 총선이 다가왔을 때, 박원순 시장의 발이 묶이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려면 ‘안철수 현상’의 진원지였던 20~40대의 지지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 풀어야 할 숙제다. 당이 할 일은 이들의 경쟁을 거의 전쟁 수준으로 끌어올려 국민드라마를 만드는 것이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