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7) 홍준표와 유승민의 엇갈린 운명
(7) 홍준표와 유승민의 엇갈린 운명
2017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재집권할 수 있을까? 낙관적 전망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어쨌든 이길 것”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요즘 애들 말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왜 근거가 없겠는가? 정당 지지율도 큰 차이로 1위고 유권자 수에서 훨씬 많은 영남과 50대 이상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것만 해도 충분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믿는 구석은 된다. 그러나 ‘어쨌든’ 속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경험적 판단이 숨겨져 있다. 이를테면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뜻도 들어 있을 것이다. 원래 스포츠든 선거든 질 때는 계속 질 것 같고 이길 때는 계속 이길 것 같은 법이니까.
반면 같은 질문에 정권교체를 전망(혹은 희망)하는 사람들은 연속 패배에 주눅 들어서 그런지 그런 자신감은 없다. 적어도 “어쨌든 이긴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야권도 믿는 구석은 있다. 정권교체 10년 주기설(?)도 믿는 구석 중 하나다. 보수 정권 피로감이 올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도 야권 후보들이 월등히 앞서고 있고, 보수 정권이 자신하던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별로였다는 것도 근거가 된다. 이명박이 ‘국민 성공 시대’를, 박근혜가 ‘국민 행복 시대’를 내걸고 대통령이 되었으나 오히려 대기업만 더 성공하고 부자들만 더 행복해졌으므로 서민들이 또 속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야권이 자신감을 갖는 이유는 새누리당에 강한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에서 누가 후보가 되어도 박근혜보다는 약한 후보라는 것이다.
포스트 박근혜 안 보이는 새누리당
실제로 박근혜는 대구·경북과 충청 두 지역을 고향으로 인식시켰고 보수 세력을 완벽하게 결집시켰다. 그렇게 강한 박근혜에게 얼떨결에(?) 불려나온 문재인이 3.53%밖에 지지 않았다면 다음에는 틀림없이 이긴다는 것이다. 여당은 누가 돼도 박근혜보다 약할 것이고 야당은 누가 돼도 문재인보다는 강할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보수 정당의 강점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항상 있었다는 것이다. 두 번 연속으로 패한 이회창도 당내 위상은 확고했다. 그 전의 김영삼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후의 박근혜도 강력한 지도자였다. 민주당은 김대중만 그런 위상을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도 당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리더십 부재가 야당의 만성적 약점이다. 그런데 지금 새누리당에 포스트 박근혜가 안 보인다. 그런 우려는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도 잘 드러나 있다. 여당 내에서 가장 앞선다는 김무성 대표가 겨우 10% 언저리에 있을 뿐이다. 5년 전인 2010년 4월의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박근혜가 23.7%로 여야를 통틀어 압도적 1위였다. 2·3위가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와 경기도지사 후보가 된 한명숙과 유시민인데 10.2%와 8.8%였다. 두 달 뒤에 지방선거가 끝나고 같은 기관이 다시 조사한 결과는 박근혜 25%,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한 오세훈 11.2%, 유시민 9.8%, 한명숙 9.3% 그리고 경기지사 재선에 성공한 김문수 7.4%의 순이었다. 그보다 5년 전인 2005년에는 박근혜·이명박이, 2000년에는 이회창이 민주당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후보가 없다. 보수의 위기다.
국민은 ‘대통령이 되면 잘할 것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다. 나중에 속더라도 뽑을 때는 그런 사람을 선택한다. 강한가? 신뢰할 수 있는가? 돌봐줄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모두 ‘그럴 것 같다’는 사람이 그런 이미지를 갖는다. 2012년 대선 당시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봤다. 만약 당신 혼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 나라를 떠나서 20년간 못 돌아온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 여기에 남겨질 가족과 재산을 들고 찾아가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꼭 돌봐 달라고 사정했을 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가족처럼 돌볼게요”라고 상대가 말했을 때 가장 신뢰가 가는 후보가 누구냐는 질문에 박근혜가 가장 많이 지목됐다. 2007년 대선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당신 돈 5000만원을 투자한다면 누구에게 맡기겠는가”라는 질문에 이명박이 지목됐다. 또 다른 기업인 출신 후보 문국현을 압도했다. 대통령이 되려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경제를 성장시킬 것 같은 기대를 주는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객관화된 상황을 설정하고 적임자를 묻는 질문보다는 자기의 상황으로 묻는 것이 좀더 솔직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새누리당에 그런 후보가 없다는 것은 대통령이 되면 잘할 것 같은 사람이 아직까지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대권 선수들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드디어 대권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선거에서 ‘캠프’, ‘캠페인’이라는 군사용어를 괜히 붙인 게 아니다.
오른쪽으로 과감히 움직인 홍준표
무한도전일까 무모한 도전일까
왼쪽으로 과감히 움직인 유승민
이회창·박근혜 실패에서 배웠나
중간에 어정쩡하게 뜬 김무성 노무현 불안한 이미지 때문에
안정감 있어 보이는 고건이 떴고
이명박의 사적 이미지 때문에
공적 이미지의 안철수가 부상
전임자와 차별화하라는 교훈 홍준표와 프루동, 그리고 헨리 포드 변방의 초조함일까? 홍준표가 먼저 움직였다. 건드리면 손해라는 위험한 카드 ‘무상급식’을 들고 오른쪽으로 과감하게 움직였다. “욕먹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대놓고 욕먹는 길을 택한 것도 홍준표다웠다. 곧바로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왼쪽으로 과감하게 움직였다. 두 사람이 순식간에 좌우로 이동하자 김무성 대표는 어정쩡하게 가운데 자리잡았다. 홍준표의 도박은 ‘무한 도전’일까? ‘무모한 도전’일까? 홍준표 지사가 “쪽방에서 근근이 생활하는 어르신들, 독거노인 등을 도와주는 게 진짜 서민들이 필요로 하는 복지”라며 “간디학교 같은 귀족형 학교에 무상급식 하는 것은 복지 낭비”라고 하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로 결국 인간에 대한 철학의 문제”이며 “복지는 인간의 존엄성, 차별과 빈곤의 극복, 시민의 행복을 위해 투자돼야 하는 귀중한 자산”이라며 정면 비판했다. 1846년에 프루동이 <빈곤의 철학>을 발표하자 이듬해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을 써서 혹독하게 비판한 것이 떠올랐다. 홍준표가 이기려면 ‘(지방)재정 프레임’이 ‘(무상)복지 프레임’을 압도해야 한다. 뜻대로 될까? 야당이 엔엘엘(NLL)과 국정원 댓글 싸움에서 사실상 패배한 것은 ‘평화’ 대 ‘안보’, ‘민주주의’ 대 ‘종북’ 프레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사자가 계곡에서 싸우거나 호랑이가 들판에서 싸우면 불리한 게 당연하다. 홍 지사는 “공짜로 준다는데 반대하면 오히려 이상하죠”라며 여론조사로 물어볼 일이 아니고 지도자가 결단할 문제라고 분명히 했다. 마치 헨리 포드가 자동차 만들 때,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을 만들 때 소비자에게 물어봤느냐는 질문에 두 사람 모두 “그걸 왜 물어보느냐”고 답한 것을 연상시킨다. 1996년에 정치에 입문한 후 ‘한나라당의 전략적 자산’으로 성장했던 정치인 홍준표가 이제 ‘보수의 전략적 자산’의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유승민 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내건 보수의 상징적 슬로건인 ‘더 큰 대한민국’에서 진보의 상징적 슬로건인 ‘더 따뜻한 대한민국’으로의 이동을 새누리당 재집권 전략으로 제시했다. 2012년에 박근혜가 취했던 전략이다. 안보에서 보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사회경제적 의제에서 과감히 경제민주화·복지 확대를 내걸었던 모델이다. 유승민은 사드 배치를 앞장서 주장하면서 안보에서 보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사회경제적 의제에서 진보적 입장을 취했다. 2007년에 박근혜가 실패했을 때는 사회경제적 의제에서 보수적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를 내세웠다. 유승민은 그때 박근혜의 전략가였다. 유승민은 그때 알았을까? 보수의 이미지가 굳어져 외연 확대가 안 되면 본선 경쟁력이 앞서는 후보에게 진다는 사실을. 실제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노무현 정권에 맞서 ‘사학법’ 투쟁을 이끌면서 보수의 아이콘이 되었으나 그것이 결국 외연 확대를 가로막는 독이 되었다. 그 결과 박근혜는 두 번 실패한 이회창처럼 영남(지역)·보수(이념)·노년(세대)·부자(계층)의 지지를 받는 ‘올드 한나라당’에 갇히고 말았다. 유승민은 자신의 정치적 보스인 이회창의 두 번의 실패와 박근혜의 실패까지 세 번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반면 이명박은 중부(지역)·중도(이념)·중년(세대)·중산층(계층)의 지지를 받는 ‘뉴 한나라당’의 상징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때 이명박의 옆에 있던 정치인이 홍준표였다. 홍준표 역시 그때까지는 외연 확대가 가능한 대표적 정치인이었다. 홍준표는 그때 본선 경쟁력이 있는 사람이 결국 경선에서도 이긴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을 텐데 이상하게 지금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 전해인 2006년 서울시장 경선에서도 홍준표, 맹형규에 비해 뒤늦게 뛰어든 오세훈에게 패배한 것도 결국 오세훈이 본선 경쟁력이 더 있다고 당원들이 믿은 것 때문 아닌가? 당시 오세훈은 “이길 사람은 이겨 놓고 싸우고 질 사람은 싸워서 이기겠다고 말한다”는 연설로 자신의 경쟁력을 맘껏 뽐냈다. 확실히 2007년까지는 홍준표, 오세훈, 김문수는 기득권 대 혁신, 과거 대 미래, 낡음 대 새로움, 분열 대 통합의 네 가지 전선에서 혁신·미래·새로움·통합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된 일인가? ‘한나라당의 전략적 자산’으로 성장한 세 명의 정치인 앞에 두 개의 길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산’으로 가는 길과 ‘보수의 전략적 자산’으로 가는 길이 있었는데 세 명 모두 뒤의 길로 발을 옮겼다. 그때 그 길로 유혹한 것이 바로 ‘무상급식’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의 유혹에 빠져버린 것이다. 가난한 서민의 아들 홍준표와 부유한 정치인 2세인 유승민의 엇갈림은 여러모로 운명적이다. 보수의 본류인 티케이(TK)의 유승민과 ‘변방’의 자의식이 강한 홍준표의 경쟁은 2011년 당 대표 경선 이후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김무성은 박근혜를 무서워하는가 유승민이 과거로부터 배운 것은 또 있다. 대통령이 되려면 대통령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박근혜가 ‘세종시 수정안 반대’를 걸고 살아 있는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 싸워서 후보를 쟁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명박 서울시장도 ‘수도 이전 반대’를 걸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맞섰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것 역시 놓치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회창과 정동영도 김영삼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맞섰기 때문에 후보가 된 것이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대통령 단임제의 속성상 노태우에서 김영삼으로,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넘어간 것도 어느 정도 ‘정권교체’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국민은 전임자와 차별화되는 사람을 선택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불안한 이미지 때문에 안정감 있어 보이는 고건이 뜬 것이고, 이명박의 사적 이미지 때문에 공적 이미지가 강한 안철수와 박근혜가 부상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든다고 해서 새누리당이 재집권에 성공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정권 재창출은 실적, 그중에서도 경제적 실적이 좋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빌 클린턴 8년의 경제적 성과가 찬란했음에도 앨 고어는 조지 부시에게 졌다. 왜냐하면 이미지가 너무 겹쳤기 때문이다. 김무성·김문수·정몽준은 대기업 중심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면 이명박·박근혜의 아류로 인식될 것이다. 그러면 이길 수가 없다.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무서워하는 듯하다.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하겠다는 약속으로 대표가 되었는데 그 약속은 유승민이 지키고 있다. 민주계의 적자인 김무성이 민정계의 적통을 잇는 박근혜에게 굴복하고 유승민에게 혁신 경쟁에서 밀리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새누리당이 야당으로부터 민정당과 공화당의 후예라는 모욕을 받는 것은 ‘개혁 보수’인 ‘신한국당’을 역사의 평가에서 지운 탓이고, 그 책임은 김무성 대표에게도 작지 않게 있다. 보수 정당의 혁신 디엔에이(DNA)가 완전히 소멸한 것은 김문수, 이재오 등 1996년 들어온 ‘김영삼 키즈’들이 민정계에 투항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잃어버린 혁신 디엔에이를 대구의 유승민이 되살리려 하고 있다. 1980년대에 진보세력과 손잡고 보수독재정권을 무너뜨렸던 자유주의 세력의 양대 산맥인 김영삼과 김대중이 서로를 격하시키면서 결국 패권을 다시 보수세력에 뺏기고 두 세력(상도동계와 동교동계) 다 몰락했다.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정치인은 뿌리를 잊으면 안 된다. 김무성의 몸에는 사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당한 수모는 김무성 개인만은 아니다. 김무성이 내는 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
무한도전일까 무모한 도전일까
왼쪽으로 과감히 움직인 유승민
이회창·박근혜 실패에서 배웠나
중간에 어정쩡하게 뜬 김무성 노무현 불안한 이미지 때문에
안정감 있어 보이는 고건이 떴고
이명박의 사적 이미지 때문에
공적 이미지의 안철수가 부상
전임자와 차별화하라는 교훈 홍준표와 프루동, 그리고 헨리 포드 변방의 초조함일까? 홍준표가 먼저 움직였다. 건드리면 손해라는 위험한 카드 ‘무상급식’을 들고 오른쪽으로 과감하게 움직였다. “욕먹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대놓고 욕먹는 길을 택한 것도 홍준표다웠다. 곧바로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왼쪽으로 과감하게 움직였다. 두 사람이 순식간에 좌우로 이동하자 김무성 대표는 어정쩡하게 가운데 자리잡았다. 홍준표의 도박은 ‘무한 도전’일까? ‘무모한 도전’일까? 홍준표 지사가 “쪽방에서 근근이 생활하는 어르신들, 독거노인 등을 도와주는 게 진짜 서민들이 필요로 하는 복지”라며 “간디학교 같은 귀족형 학교에 무상급식 하는 것은 복지 낭비”라고 하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로 결국 인간에 대한 철학의 문제”이며 “복지는 인간의 존엄성, 차별과 빈곤의 극복, 시민의 행복을 위해 투자돼야 하는 귀중한 자산”이라며 정면 비판했다. 1846년에 프루동이 <빈곤의 철학>을 발표하자 이듬해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을 써서 혹독하게 비판한 것이 떠올랐다. 홍준표가 이기려면 ‘(지방)재정 프레임’이 ‘(무상)복지 프레임’을 압도해야 한다. 뜻대로 될까? 야당이 엔엘엘(NLL)과 국정원 댓글 싸움에서 사실상 패배한 것은 ‘평화’ 대 ‘안보’, ‘민주주의’ 대 ‘종북’ 프레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사자가 계곡에서 싸우거나 호랑이가 들판에서 싸우면 불리한 게 당연하다. 홍 지사는 “공짜로 준다는데 반대하면 오히려 이상하죠”라며 여론조사로 물어볼 일이 아니고 지도자가 결단할 문제라고 분명히 했다. 마치 헨리 포드가 자동차 만들 때,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을 만들 때 소비자에게 물어봤느냐는 질문에 두 사람 모두 “그걸 왜 물어보느냐”고 답한 것을 연상시킨다. 1996년에 정치에 입문한 후 ‘한나라당의 전략적 자산’으로 성장했던 정치인 홍준표가 이제 ‘보수의 전략적 자산’의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유승민 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내건 보수의 상징적 슬로건인 ‘더 큰 대한민국’에서 진보의 상징적 슬로건인 ‘더 따뜻한 대한민국’으로의 이동을 새누리당 재집권 전략으로 제시했다. 2012년에 박근혜가 취했던 전략이다. 안보에서 보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사회경제적 의제에서 과감히 경제민주화·복지 확대를 내걸었던 모델이다. 유승민은 사드 배치를 앞장서 주장하면서 안보에서 보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사회경제적 의제에서 진보적 입장을 취했다. 2007년에 박근혜가 실패했을 때는 사회경제적 의제에서 보수적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를 내세웠다. 유승민은 그때 박근혜의 전략가였다. 유승민은 그때 알았을까? 보수의 이미지가 굳어져 외연 확대가 안 되면 본선 경쟁력이 앞서는 후보에게 진다는 사실을. 실제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노무현 정권에 맞서 ‘사학법’ 투쟁을 이끌면서 보수의 아이콘이 되었으나 그것이 결국 외연 확대를 가로막는 독이 되었다. 그 결과 박근혜는 두 번 실패한 이회창처럼 영남(지역)·보수(이념)·노년(세대)·부자(계층)의 지지를 받는 ‘올드 한나라당’에 갇히고 말았다. 유승민은 자신의 정치적 보스인 이회창의 두 번의 실패와 박근혜의 실패까지 세 번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반면 이명박은 중부(지역)·중도(이념)·중년(세대)·중산층(계층)의 지지를 받는 ‘뉴 한나라당’의 상징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때 이명박의 옆에 있던 정치인이 홍준표였다. 홍준표 역시 그때까지는 외연 확대가 가능한 대표적 정치인이었다. 홍준표는 그때 본선 경쟁력이 있는 사람이 결국 경선에서도 이긴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을 텐데 이상하게 지금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 전해인 2006년 서울시장 경선에서도 홍준표, 맹형규에 비해 뒤늦게 뛰어든 오세훈에게 패배한 것도 결국 오세훈이 본선 경쟁력이 더 있다고 당원들이 믿은 것 때문 아닌가? 당시 오세훈은 “이길 사람은 이겨 놓고 싸우고 질 사람은 싸워서 이기겠다고 말한다”는 연설로 자신의 경쟁력을 맘껏 뽐냈다. 확실히 2007년까지는 홍준표, 오세훈, 김문수는 기득권 대 혁신, 과거 대 미래, 낡음 대 새로움, 분열 대 통합의 네 가지 전선에서 혁신·미래·새로움·통합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된 일인가? ‘한나라당의 전략적 자산’으로 성장한 세 명의 정치인 앞에 두 개의 길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산’으로 가는 길과 ‘보수의 전략적 자산’으로 가는 길이 있었는데 세 명 모두 뒤의 길로 발을 옮겼다. 그때 그 길로 유혹한 것이 바로 ‘무상급식’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의 유혹에 빠져버린 것이다. 가난한 서민의 아들 홍준표와 부유한 정치인 2세인 유승민의 엇갈림은 여러모로 운명적이다. 보수의 본류인 티케이(TK)의 유승민과 ‘변방’의 자의식이 강한 홍준표의 경쟁은 2011년 당 대표 경선 이후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김무성은 박근혜를 무서워하는가 유승민이 과거로부터 배운 것은 또 있다. 대통령이 되려면 대통령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박근혜가 ‘세종시 수정안 반대’를 걸고 살아 있는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 싸워서 후보를 쟁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명박 서울시장도 ‘수도 이전 반대’를 걸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맞섰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것 역시 놓치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회창과 정동영도 김영삼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맞섰기 때문에 후보가 된 것이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대통령 단임제의 속성상 노태우에서 김영삼으로,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넘어간 것도 어느 정도 ‘정권교체’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국민은 전임자와 차별화되는 사람을 선택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불안한 이미지 때문에 안정감 있어 보이는 고건이 뜬 것이고, 이명박의 사적 이미지 때문에 공적 이미지가 강한 안철수와 박근혜가 부상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든다고 해서 새누리당이 재집권에 성공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정권 재창출은 실적, 그중에서도 경제적 실적이 좋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빌 클린턴 8년의 경제적 성과가 찬란했음에도 앨 고어는 조지 부시에게 졌다. 왜냐하면 이미지가 너무 겹쳤기 때문이다. 김무성·김문수·정몽준은 대기업 중심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면 이명박·박근혜의 아류로 인식될 것이다. 그러면 이길 수가 없다.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무서워하는 듯하다.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하겠다는 약속으로 대표가 되었는데 그 약속은 유승민이 지키고 있다. 민주계의 적자인 김무성이 민정계의 적통을 잇는 박근혜에게 굴복하고 유승민에게 혁신 경쟁에서 밀리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새누리당이 야당으로부터 민정당과 공화당의 후예라는 모욕을 받는 것은 ‘개혁 보수’인 ‘신한국당’을 역사의 평가에서 지운 탓이고, 그 책임은 김무성 대표에게도 작지 않게 있다. 보수 정당의 혁신 디엔에이(DNA)가 완전히 소멸한 것은 김문수, 이재오 등 1996년 들어온 ‘김영삼 키즈’들이 민정계에 투항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잃어버린 혁신 디엔에이를 대구의 유승민이 되살리려 하고 있다. 1980년대에 진보세력과 손잡고 보수독재정권을 무너뜨렸던 자유주의 세력의 양대 산맥인 김영삼과 김대중이 서로를 격하시키면서 결국 패권을 다시 보수세력에 뺏기고 두 세력(상도동계와 동교동계) 다 몰락했다.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정치인은 뿌리를 잊으면 안 된다. 김무성의 몸에는 사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당한 수모는 김무성 개인만은 아니다. 김무성이 내는 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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