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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처외삼촌 묘 벌초하듯’ 선거? 선거는 절박한 쪽이 이긴다

등록 2015-02-27 18:48수정 2015-03-01 10:37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토요판] 박성민의 2017 오디세이아
(4) 숨겨진 민심
선거가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 나라 민주주의 역사는 선거제도의 역사다. 독재에 저항한 수십년 민주화운동의 피와 땀과 눈물은 선거에 진하게 배어 있다. 선거는 한국 민주화운동이 이룩한 가장 강력하고 자랑스러운 성과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이 대통령 선거에 불법으로 개입하고, ‘국가의 최고 수사기관’은 수사에 나섰다가 조직이 쑥대밭이 되는 등 독재시대 때나 볼 수 있었던 익숙한 풍경이 여전한데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해도 내 대답은 ‘그렇다’다. 물론 민주주의가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국가정보원, 검찰, 법원, 경찰 등 국가의 권력기관이 법과 민주적 절차, 그리고 인권을 고려하는 것을 ‘못 견디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선거는 다른 어느 영역보다 가장 반칙이 적으며, 승패를 쉽게 예측할 수 없고, 실제로 승패를 주고받는 ‘공정한 전쟁’ 혹은 ‘공정한 게임’이 되었다.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의 정치지형

실제로 선거는 스포츠와 전쟁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룰은 스포츠처럼 정해 놓고 전쟁하듯이 싸운다. 전쟁으로 가까이 가면 상대를 적과 동지로 편을 갈라 상대를 증오하고, 스포츠로 가까이 가면 상대를 여와 야로 부르며 평화적으로 경쟁한다. 19세기 이전의 정치는 그것이 재판, 전쟁, 혁명, 쿠데타, 선거, 당쟁의 어떤 것이든 ‘통치자(다스리는 자)’와 ‘피치자(다스림을 받는 자)’를 결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승리한 자는 패배한 자를 죽이는 것이 목표였다. 소크라테스 재판이나 프랑스 혁명 모두 상대의 제거를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같다. 아마도 19세기 이전의 정치적 투쟁이 ‘체제 안에서’ 싸운 것이 아니라 ‘체제를 둘러싸고’ 싸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의 법철학자인 카를 슈미트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정치의 본질을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본 것은 뛰어난 통찰이다. 전쟁 같은 정치의 시대가 끝나자 민주주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상대를 죽일 ‘적’으로 보지 않고 ‘경쟁자’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승리한 세력은 여당이 되고 패배한 세력은 야당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담 셰보르스키의 말대로 민주주의란 ‘집권당이 (평화적으로) 야당이 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체제’인 것이다. 우리는 이긴 자가 진 자를 죽이는 ‘쿠데타’와 ‘혁명’을 동시에 폐기처분하고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한 체제를 1987년에 합의했다. ‘신생 민주주의는 두 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공고화된다’는 새뮤얼 헌팅턴의 말을 상기한다면 불과 30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대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선거는 한국 보수의 ‘약한 고리’다. 선거를 두려워한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보수가 압도적으로 힘의 우위를 점하는 데 비해 선거는 보수·진보 어느 쪽도 확실한 지배력을 갖지 못한 ‘평평한’ 운동장이 거의(!) 되어 가고 있다. 아직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은 패배의 책임을 ‘기울어진’ 운동장 탓으로 돌리지만 기울어봤자 2~3% 정도다.(1997년과 2002년은 지금보다 더 평평했는가?) 스포츠·선거·전쟁 모두 전력·전략·정신력으로 승부가 결정된다. 2012년 대선의 경우 사실상 완전한 1:1 대결 구도였으므로 반드시 이기겠다는 정신력은 양 진영이 모두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예상을 뛰어넘은 75.8%의 높은 투표율이 그것을 증명한다. 여권의 주요 지지기반인 50대 이상의 투표율에는 여전히 못 미쳤지만 야권의 주요 지지기반인 20~40대의 투표율도 놀라웠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의 전략적 오류(조만간 이 지면에 쓸 예정이다)가 꽤 있었음을 고려하면 양 진영의 ‘전력’ 차이는 3.53%포인트(두 후보 간 지지율 차)보다는 작을 것이다. 만약 야권의 전략과 실행이 제대로 되었다면 1~2%의 박빙 승부가 됐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 정치지형을 보수·진보로 나누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보수·진보로 나누는 것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선거 전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경험으로는 어떤 경우든 새누리당(한나라당)만 찍는 유권자가 38%, 한 번도 새누리당을 찍지 않았고 앞으로도 찍지 않을 유권자가 35%, 그리고 왔다 갔다 하는 스윙보터가 27% 정도로 보인다. 지금은 격차가 조금 더 줄어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야권 35%는 분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악의 기록을 남긴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문국현·권영길 세 후보의 지지율 합이 35%였다. 반면 보수 후보가 최악의 조건으로 싸웠던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는 38.7%였고 1987년 군 출신인 노태우 후보가 기록한 득표율 36.6%를 감안한다면 보수 후보의 바닥은 38% 정도는 돼 보인다. 한국의 정치지형은 보수 대 진보가 아니라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새누리당만이 연대 없이, 통합 없이 독자적으로 집권 가능한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진보는 정치의 본질이
‘권력 다루는 기술’임을 몰라
‘처외삼촌 묘 벌초하듯’ 선거
선거는 절박한 쪽이 이긴다
그동안의 보수세력을 보라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까
정권교체일까 정권재창출일까
차기 정치 지도자 조사 결과론
민심은 정권교체를 원한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란…

2002 이회창과 2012 문재인이 닮은 점

새누리당을 포함한 보수 세력에게 한국 대선은 거의 전 재산을 걸고 벌이는 위험한 도박이다. 승리는 불확실하고 지면 잃을 게 너무 많다. 두 번의 대선 패배 경험은 보수 세력에게 선거에서 진 것이 아니라 마치 ‘나라를 잃은 것’ 같은 심리적 상처를 남겼다. 잃을 게 너무 많은 보수 세력은 지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한다. 한국의 보수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새누리당을 정치의 전위로 인정하고 똘똘 뭉친 강력한 결사체다. 역할은 분산시키되 힘은 분산시키지 않는 규율과 질서가 있다. 권력의 속성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 보수의 무서운 점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진보는 정치의 본질이 ‘권력을 다루는 기술’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처외삼촌 묘 벌초하듯이’ 선거를 대한다. 선거는 절박한 쪽이 이긴다. 보수 세력은 이기기 위해서도 놀랍게 변신(혁신)하고 이기고 나서도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본래(기득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2007년의 이명박 후보와 2008년 이후의 이명박 대통령이 다른 사람처럼 보였듯이 2012년 박근혜 후보와 2013년 이후의 박근혜 대통령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야권은 아직 그런 절박함이 안 보인다. 1997년 김대중 후보와 2002년의 노무현 후보는 전력의 열세를 ‘담대한 전략’으로 뒤집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절박한 전략’이었다. 김대중 후보는 권력의 절반을 내주는 디제이피(DJP) 연합의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지만 만약 이인제 후보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1.5% 차의 신승. 2002년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 이전’과 재벌인 정몽준 후보와의 극적인 단일화를 통해 2.3%의 역전승. 노무현 대통령의 표현대로 그 두 번의 대선은 ‘기적이고, 의외의 결과’였다. 정권교체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전략의 부재로 승리를 날렸다는 점에서 2002년 이회창 후보와 2012년 문재인 후보의 캠페인은 여러모로 닮았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기고 있는 사람처럼 어떤 승부수도 날리지 않은 채 무난하게(?) 졌다는 것도 비슷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부수를 던질 줄 모르는 사람은 승리할 자격이 없다. 김대중, 노무현 선거에서 경험했듯이 대선은 역시 정치인이 주도해야 불리할 때 승부수를 던질 수 있다. 시민운동가들이나 학자들이 주도해서는 안 된다. 대선은 ‘권력투쟁’이지 ‘담론 투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야권의 유일한 전략이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는 ‘전술’이지 ‘전략’이 될 수 없었다. 단일화가 전략이 되려면 단일화하는 순간 승부가 사실상 결정될 정도의 질적 전환이 있어야 하는데 2012년은 그런 정도는 아니었다. 예컨대 1987년 양김이 단일화했다면 아마도 이겼을 것이다. 다른 공약 필요 없이 그것 하나로 승부를 결정했을 것이다. 지지 기반이 달랐기 때문이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도 양김의 단일화와는 비교할 수 없어도 역시 지지 기반이 달랐기 때문에 두 후보 모두 이회창 후보에게 이길 정도의 시너지는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는 지지 기반이 거의 겹쳤기 때문에 승리의 필요조건이었을 뿐이다. 어쨌든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고….

지금 궁금한 것은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는 것이다. 어느 당이 집권할지도 모르는데 누가 대통령이 될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대선 2년10개월 남은 시점에 다음 대통령으로 확실했던 사람은 없었다. 가장 근접했다고 평가받는 박근혜 대통령조차 2010년 2월에는 1월에 제출된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싸고 현직 대통령과 투쟁 중이었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여권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는 중이었고, 당내에서도 정운찬 총리와 재선에 도전하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이명박 대통령의 후원을 기대하고 기회를 엿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리라는 확신이 쉽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더 어려운 환경이었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얻은 상황이었고, 2005년 2월 현재 당내에서는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박근혜 대표가 여당과의 투쟁을 통해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을 때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0년 2월에는 대통령은 고사하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지역구인 서울 종로구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가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중이었다. 한나라당에는 이회창이라는 강력한 대권주자가 있었고 당내에서도 1998년 입당한 이인제를 비롯해 여러 명의 정치인이 노무현의 앞에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5년 2월에는 정계은퇴 상태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0년 2월에는 초라한 제3당을 이끌고 ‘호랑이 굴’로 들어갈 위험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5년 2월에는 자기가 직선제 대통령에 도전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대선은 1년 정도 남은 2016년 추석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고 그때쯤에 유력한 후보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여론조사는 계속 출렁이며 순위도 뒤바뀔 수 있지만 지금의 여론조사가 아주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3년 전에 예견된 대통령도 없지만 3년 전 여론조사에 없던 인물이 된 적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조사에 포함되어 있는 정치인은 8~10명이다. 다음 대통령은 그중에서 나올 것이다.

야권 주자 4명의 지지율 합 50%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그렇다면 지금의 여론 흐름은 정권재창출일까, 정권교체일까? 2월1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율이 42%,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이 29%였다.(리얼미터는 2월16~17일 조사에서 새누리당 34.7%, 새정치민주연합 33.8%라고 발표했다.) 정당 지지율은 아직도 새누리당이 앞서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같은 조사에서 30%, 부정 평가가 62%인 점을 고려하면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여론이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유권자의 속마음은 정당에 대해서 물었을 때보다 사람에 대해 물었을 때 더 솔직히 드러난다. 같은 조사에서 차기 정치 지도자 조사 결과는 정당 지지율과 완전히 반대로 나타난다. 문재인 25%, 박원순 11%, 안철수 11%, 안희정 3%로 야권 4명의 지지율 합이 50%다. 반면 김무성 10%, 김문수 5%, 이완구 3%, 홍준표 3%로 여권 4명의 지지율 합은 21%다. 정당 지지율과 반대로 나타나는 흐름은 갤럽이 발표를 시작한 이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조사가 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순으로 불러주고 어느 대통령을 좋아하는지 물어보면 김대중·노무현의 지지율 합이 이명박·박근혜의 지지율 합보다 꾸준히 높게 나오고 있다. 이것이 숨겨진 정치지형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2017년 대선 열차는 정권교체의 레일로 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평가(전직 대통령 호감도)와 현재의 평가(박근혜 대통령 직무수행평가), 그리고 미래의 평가(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에 숨겨져 있는 민심이 쳐다보는 방향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에서 역전패가 얼마나 많은가.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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