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갈기를 세운 말머리 마크가 선명한 몽골 미아트 항공을 타고 울란바토르(‘붉은 영웅’이라는 뜻)에 갔다. 인천공항에서 3시간반여, 베이징 상공을 지나 서북쪽 내몽골의 다싱안링(대흥안령)산맥을 넘어 도착한 칭기즈칸 공항은 그 이름에 비해 많이 소박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대까지 100여m에 불과하다. 시 외곽에 일본의 차관 제공에 힘입어 초현대식 새 공항 건설에 착수했지만, 아직은 벌판이라고 한다.
오후 5시 넘어 울란바토르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온통 사람들과 차들로 북새통이었다. 좁은 도로 사정 탓도 하겠지만 5부제를 시행하고 있다는데도 아침부터 밤까지 정체가 계속됐다. 몽골의 면적은 한반도의 7배다. 그렇지만 전체 인구는 300만도 채 안 된다. 그 절반 정도가 울란바토르에 몰려 산다는 게 실감이 됐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탐사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세계 10대 자원 부국으로 우뚝 선 몽골은 2003년부터 7% 이상의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몽골 남부 최대의 구리·금 광산인 오유톨고이에 대한 66억달러 투자협상 타결 등에 힘입어 2011년엔 17.5%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중고차가 많았지만, 이제는 도요타, 혼다 등 일제 차는 물론이고 벤츠와 같은 고급 외제차와 랜드로버와 같은 다목적 승용차 등이 도로를 누비고 있다. 그러나 지금 몽골 경제는 어렵다. 광산 투자를 둘러싼 외국 자본과 몽골 정부의 갈등, 석탄·구리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의 하락, 서민지원용으로 내놓은 우리로 보면 고금리이지만 시중금리의 절반 정도인 8%대의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경상·재정수지 등이 악화되자 국채금리가 상승하고 몽골 화폐인 투그리크의 가치가 크게 하락하고 있다. 현지의 KDB(산업은행) 대우증권 김래환 법인장에 따르면 4월 하순 투그리크의 가치는 지난해에 비해 거의 30% 가까이 떨어졌다.(원화 대 투그리크의 교환 비율은 1 대 1.7 수준) 현지 언론은 4월 국제통화기금이 내놓은 2014~15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몽골의 2015년 경제성장률을 한자릿수인 7.7%로 낮춰 전망했다고 전했다.
몽골정부의 오유 톨고이 구리 금 광산 투자 관련 조처와 외국인 직접투자간 추이.출처: KDB(산업은행)대우증권 몽골 현지법인, ‘몽골 경제 최근이슈’ 2014년 4월
■ 축복받지 못한 땅
로버트 캐플런은 미국 및 강대국 패권의 지정학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보여온 미국 칼럼니스트다. 그는 <포린어페어스>(2010년 5/6월호)에 기고한 ‘중국 패권의 지정학: 중국의 대륙·해양 패권은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에서 영국 지정학자 해퍼드 매킨더의 1904년 논문 ‘역사의 지리적 중심축’을 인용하고 있다.
▲ 몽골 남부 중국과의 국경역인 자민우드역에서 표준궤로 싣고 온 중국 쪽 컨테이너를 광궤인 몽골 종단철도로 옮겨 싣고 있다.(위) 화차의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몽골의 기차가 남북 교통 중심지인 사인샨드를 지나고 있다.(아래)
자민우드·사인샨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에 따르면 중국은 ‘축복받은 지리적 위치’에 있다. 중국은 많은 양질의 항구가 있는 1만4500㎞의 온화한 해안선을 갖고 있다. 대륙 강대국이자 해양 강대국이다. 중국이 유라시아의 패권을 넘어 세계의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은 대륙의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해안지대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킨더는 반면에 유라시아 중심축 지역의 러시아는 이런 이점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몽골은 내륙국가다. 바다가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몽골은 6000여개의 광물자원 매장지에 석탄, 구리, 금, 우라늄, 형석, 철광석, 석유 등 80종의 광물을 보유해 자원 부국이라는 축복을 받았지만, 또한 가장 축복받지 못한 지리적 위치에 있다. 그것도 남과 북으로 8100여㎞에 이르는 국경선에 걸쳐 거대한 중국과 러시아에 에워싸여 포위돼 있다. 당연히 두 나라의 입김이 거세다.
■ 목줄과 몸통을 쥐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울란바토르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30일 남동쪽으로 750여㎞ 떨어진 국경도시 자민우드(‘길의 문’이라는 뜻)로 갔다. 동행한 청조해운항공의 강민호 몽골지사장은 “중국이 몽골의 목줄을 쥐고 있다. 자민우드가 그 현장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몽골 수출입 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자민우드는 말 그대로 중국과의 관문이다. 2003년 몽골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하자 중국이 이틀간 이곳의 열차운행을 중단시켰다. 몽골은 큰 혼란을 겪었다. 200여년 청나라의 지배를 받은 몽골의 중국에 대한 감정은 한국의 반일감정보다 10배는 더 강하다고 한다. 중국은 중국대로 티베트,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인접한 몽골의 움직임에 민감하다. 그럼에도 몽골은 중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 발표한 몽골 광물국 보고서를 보면 광업 분야 특별허가증을 소유한 100% 외국인투자회사 중 52.2%는 중국 기업들이었다. 캐플런의 지적처럼 중국은 몽골의 자원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무역상대국 2위인 러시아의 비중은 10% 수준이다. 중국에 비하면 크게 낮다. 하지만 러시아는 몽골의 몸통을 쥐고 흔들 수 있다. 몽골은 석유를 수출하지만 정유시설이 없어 휘발유와 디젤 등은 비싼 값을 주고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전력의 상당 부분도 러시아에 의존한다. 러시아는 울란바토르 철도회사(UBTZ)의 지분 50%를 갖고 있다. 이 회사는 기존 몽골철도 총연장 1815㎞ 가운데 1100㎞의 몽골종단철도와 동북부의 초이발산 기간 노선 286㎞를 관리 운영한다. 이 회사의 이사회 의장은 바딤 모로조프 러시아철도(RJD) 수석 부회장이다. 1987년 몽골과 수교한 미국은 몽골을 대중국, 대러시아 견제의 전략적 거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05년엔 부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방문했다. 이어 2007년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을 불러 2억8000만달러를 무상 지원했다. 몽골은 이 가운데 1억8000만달러를 철도시설 개보수에 쓰려 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반대하자 결국 도로 건설 분야로 전환해야 했다.
■ 신선철도 계획과 트랜짓(환승) 몽골리아
몽골 내부의 자원개발과 연계된 철도 도로 등 교통 물류 인프라 구축은 몽골 경제발전 전략의 핵심축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중국과 러시아 양쪽을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제3의 통로’ 등 다양한 출구와 바다로 나가는 항만 개척을 위한 국제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늘을 제외하면 수도 울란바토르, 나아가 사실상 몽골을 외부 세계와 연결해 주는 통로는 단선의 몽골종단철도이며, 그것도 오직 두곳뿐인데 모두 러시아와 중국을 거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몽골 정부는 이를 위해 2010년 주요 전략 탄광이자 단일 최대의 유연탄광 타반톨고이에서 동북부의 초이발산까지 동서횡단철도(1100㎞)를 새로 건설하는 1단계 계획을 내놨다. 그 뒤 매킨지 컨설팅그룹의 권고를 받아들여 2단계로 초이발산에서 동부 남부로 이어지는 지선과, 타반톨고이 인근 우하후다그 탄광에서 남쪽으로 오유톨고이를 거쳐 중국 국경의 가슌수하이트까지의 지선 등 총연장 1800㎞에 52억달러 규모의 신선철도 계획(뉴레일 프로젝트)이 마련됐다. 3단계는 서부지역에 타반톨고이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종단철도를 건설한다는 모두 5500㎞에 이르는 거대 프로젝트다. 이에 따르면 몽골은 동서 중앙에 남북 3개 축의 종단철도와 남부를 가로지르며 이들을 연결하는 동서축의 횡단철도망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오유톨고이 광산 투자 지연, 자금 조달의 문제, 공사 착공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란으로 1단계는 착공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2단계 계획의 지선 가운데 삼성물산이 시공을 맡은 남쪽의 우하후다그~가슌수하이트의 287㎞만이 건설에 들어갔을 뿐이다.
그럼에도 몽골이 추구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2008년 몽골 정부가 의결한 ‘트랜짓 몽골리아’ 계획은 “몽골을 내륙(에 갇혀 있는) 국가(land-locked)에서 내륙(을 연계하는)교통망 국가(land-linked)로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한국교통연구원장을 역임한 강재홍 박사는 3년여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몽골 도로교통건설부 자문역을 지냈다. 그가 지난해 11월 펴낸 자문보고서는 <몽골의 대외교통망 구축 전략 및 나진항 연계방안>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강 박사는 몽골이 북한과 협력해 제3의 통로로 나진항을 통한 동해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몽골철도를 포함시켜야 한다. 서로의 불리함을 딛고 유무상통의 새로운 대륙의 길을 건설하는 호혜공생의 지혜가 필요하다.”
울란바토르·자민우드/강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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