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사흘째 칩거 중인 9일 낮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집 앞에서 박 전 대표 진영의 이정현 전 대변인(왼쪽)이 휴대폰으로 통화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박근혜, 이명박 후보 협조요청 거절 왜?
박, 정국흐름 예의주시…침묵 길어질수도
박, 정국흐름 예의주시…침묵 길어질수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 후보로의 회동 제의 전화를 사실상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후보의 ‘구애’를 외면하는 박 전 대표의 의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9일 양쪽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이 후보는 8일 오후 박 전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박 전 대표는 이렇다할 답을 주지 않았다. 12일 열리는 대구·경북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해달라고도 했지만 “다른 전국 대회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 굳이 대구라고 해서 갈 필요가 있겠나”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전화 내용에 대한 양쪽의 설명은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이 후보의 비서실장인 임태희 의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박 전 대표가) 만남 제의를 거절한 건 아니다. 만나는 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반면,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은 “박 전 대표는 (만나자는 제의에) 지금 입장에 큰 변화가 없는데 굳이 만날 게 있느냐고 했다”고 전했다. 상대방으로부터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끌어내고 싶은 이 후보와, 흔쾌히 도울 마음이 없는 박 전 대표의 판이한 속사정이 각기 다르게 표현된 것으로 풀이된다.
의문은, 이 후보가 며칠째 애타게 구조신호를 보내는데도 박 전 대표가 왜 계속 외면하고 있는가이다. 이날 열린 한나라당 의총에선 중립 성향의 의원들도 박 전 대표가 이 후보를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원성이 자자하다”고도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모를리 없는 박 전 대표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까닭에 대해, 측근들은 “불신감이 아직 씻겨지지 않아서”라고 입을 모은다.
박 전 대표는 이재오 최고위원이 사퇴한 8일 오후 2시께 사퇴 성명서를 받아보았다고 한다. 박 전 대표가 받은 성명 초안엔 “당권경쟁을 그만두라”, “박 전 대표가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상근도 하라”는 등의 문구가 들어 있었다. 박 전 대표가 이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지만, 불쾌하게 느꼈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한 시간 뒤 이 후보가 전화를 걸었을 때, 여전히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는 박 전 대표가 반갑게 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가 가시화되면서 이 후보가 박 전 대표에게 애걸복걸하는 것도 박 전 대표는 못마땅해한다고 한다. 박 전 대표 쪽 한 인사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하인’ 취급하던 사람이 이제와서 ‘총리’ 취급하는 것에 짜증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이 후보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 모습이 자칫 상대방으로부터 뭔가를 자꾸 얻어내려는 이른바 ‘앵벌이 작전’으로 비치는 것은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는 한 핵심 측근을 불러 “대권-당권 분리를 자꾸 입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는 대표를 다시 맡을 게 아니라 5년 뒤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본인에게 당권을 달라고 할 리 없다. 다만, 자기를 따르는 의원들이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도록 지켜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당권을 요구하는 의원들을 묵인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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