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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정치인 이미지’ ‘쇼’인가 ‘아우라’인가

등록 2006-04-08 10:31

[분석] ‘반도체·보랏빛·대통령의딸…’ 정치는 이미지로 간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다시 ‘이미지’ 열풍이다.

후보자뿐 아니라 정당 차원에서도 발벗고 나섰다. 그 정점에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서 있다. 이미지정치에서 자유로운 정치세력은 없다. 저마다 이미지 정치를 하면서 경쟁자에게 “콘텐츠는 없이 이미지 정치만 한다”고 비판하는 상황이다.

이미지 정치를 놓고 정책선거를 약화시킨다는 비판 못지않게 이미지는 정치인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나아가 대중에게 호소하는 정치인의 이미지에서 시대적 코드와 국민들의 욕망을 읽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정치인의 이미지는 실체없는 가식적인 포장에 불과한 ‘쇼’인가, 한 사람의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그만의 ‘아우라’인가.

이미지 정치와 이미지 선거를 둘러싼 여러 의견을 들어봤다.


--- 유일한 차별성은 ‘이미지’, 선명성 경쟁만 치열

한나라당 홈페이지는 대대적인 지방선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튀는 10대! 뛰는 한나라당! 다양한 목소리! 업그레이드 한나라당!’이라는 구호 아래 “첫 선거권을 가지는 10대들의 정서와 감성을 대변하겠다”며 하이틴 부대변인을 공모했다. 또 선거기간 동안 선거운동원들이 입을 단체복을 공모하고, 선거방송을 이끌 진행자(VJ)도 공개적으로 뽑기로 했다. 선거동안 쓸 핵심 구호를 온라인을 통해 공모하고 선거 로고송도 누리꾼들의 지혜를 빌렸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인터넷과 비디오가 주도하는 시대이다 보니까 이미지 정치를 무시할 수 없다”며 “40대까지 포함한 젊은 세대들은 정책대결이나 이념적인 차이보다 감성과 이미지에 따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보다 이미지 정치와 감성 정치가 훨씬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 열린우리당도 사정은 비슷하다. 꼭짓점댄스 플래시몹을 비롯해 우리당도 20대 부대변인을 뽑고 있다. 당뿐 아니라 우리당 후보들도 이미지 정치의 중심에 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입당식을 겸한 경기도지사 출마선언식에서 로봇을 대동한 채 “반도체 정치”를 선언했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5일 서울시장에 출마를 선언하면서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고, 정동극장을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강 전 장관의 출마선언은 내용보다 ‘보랏빛 정치’라는 이미지가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정치권이 이미지 선거에 주력하는 모습은 “정책선거를 실천하겠다”며 매니페스토(공약검증)를 선언한 태도와 크게 다르다. 정치권이 선거에 내세울 정책보다 정책을 전달하는 방식에 더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정치 효과 만만치 않다

앵커 출신 정동영, 미니홈피 정치 박근혜 등이 수혜자

이미지 정치와 이미지 선거 전략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텔레비전 토론이 도입돼, 본격 미디어 선거시대로 접어든 97년 대선부터 시작해 2002년 대선, 지난 17대 총선 등이 이미지 선거의 강력한 영향 아래 치러졌다. 방송과 신문은 물론 인터넷 등 매체 환경이 급변하면서 정책이나 콘텐츠보다 정치인 이미지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현재 유력 대권주자들도 이미지 정치의 수혜자들이다. 방송국 앵커 출신인 정동 영 열린우리당 의장도 그렇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감성에 호소하는 이미지 정치가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뛰어난 대중연설과 민생투어로 당 지지율을 40%에 육박하게 끌어올리면서 정치적 위상을 다졌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2004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당권을 잡자마자 텔레비전 연설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과거를 회고하며 ‘눈물’을 보여 지지층의 감성을 자극했다. 박 대표는 정치인 가운데 가장 많은 미니홈피 방문자를 자랑하고, 미니홈피를 통해 지지자들과 감성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등 이미지 정치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추미애 전 민주당 의원도 이미지 정치를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7대 총선 당시 민주당 선대위원장이었던 추 전 의원은 대통령 탄핵에서 한나라당과 공조한 것을 사과하는 ‘삼보일배’를 펼쳐 고행과 참회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후 민주당은 광주·전남에서 당 지지율을 5~10% 가량 끌어올렸다.

---쇼와 이벤트 끝나면 이미지는 사그라지기 마련

정치권이 이미지 정치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책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차별성을 들어낼 수 없고 유권자에게 감동시킬 비전을 만들수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플러스의 임상렬 대표는 “여야간 정책 차이나 이념적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다름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이미지”라며 “콘텐츠 정치에 실패한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어쩔 수 없이 이미지 정치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이미지 정치의 한계는 명확하다. 임 대표는 “유권자들이 처음에는 이미지로 흥미를 가질 수 있고,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으나 쇼나 이벤트가 끝나면 거품이 꺼진다”며 “콘텐츠가 없다면 지속적인 이미지 유지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치인이라는 브랜드의 구성요소로써 이미지 새롭게 인식해야”

“정치인 이미지에 시대적 감성과 대중들의 욕망이 투영돼”

이미지가 콘텐츠에 종속된 것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이미지 정치를 새롭게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안병진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미국정치)는 “이미지 정치를 비판하는 것이 관습적이고 상식처럼 되어 있으나 과도한 면도 있다”며 “정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미지와 정책을 별개로 분리할 수 없고, 이미지 속에 정책적 함의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이원태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정치인이라는 브랜드를 구성하는 요소로 이미지와 콘텐츠가 핵심”이라며 “회사가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려고 이미지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급변하는 매체환경으로 이미지 정치에서 자유로운 정치세력은 없다”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이미지 정치라고 비판하는 것은 반대편 정파의 정략에 이용당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이미지 정치라고 흔히 표현하는 것이 ‘정쟁을 위한 비판일 뿐’이라는 얘기다.

나아가 안 교수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통해 시대적인 코드나 국민들의 감성을 읽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정치인의 이미지를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박근혜 현상’, ‘강금실 현상’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의 등장이 하나의 현상이 되는 것은 여성이거나 예쁘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다. 시민들은 그 정치인을 통해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투영한다. 박근혜와 강금실이 세련되고, 연예인적인 기질만이 아니라 급변하고 있는 대중들의 문화적 코드와 감성적 코드를 그들은 대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안 교수는 강금실 현상을 새롭게 해석한다. “(옳고 그르다는 규범적 판단을 떠나) 강금실의 등장은 한국 최초의 ‘쿨’한 정치인의 탄생이다. 정치인의 쿨함이란 신선하고, 새롭고 기존 질서와 다른(또는 전복적인)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세대의 문화적 감성을 품고 있다는 의미다.”

---이미지도 좋고, 콘텐츠도 좋다면…

“콘텐츠와 이미지 사이의 간극 줄기차게 검증해야”

이미지 정치는 콘텐츠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빈 껍데기일 뿐이다. 이원태 연구원은 “포장지가 화려해 상품을 구입했는데 품질에 문제가 있다면 사기인 것처럼 콘텐츠가 담보되지 않는 이미지 정치는 국민들의 정책적 판단을 흐리고 정치적 사기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이미지 정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언론이나 유권자의 치밀한 검증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 교수는 “이미지 정치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정치인이 텅빈 이미지로만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없도록 언론이 나서 치열하게 검증한다”며 “이미지를 통해 높아진 기대치와 콘텐츠 사이의 간극을 언론과 시민사회가 더욱 치밀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강금실 전 장관도 이미지를 뒷받침할 콘텐츠가 없다면 쉽게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며 “새로운 세대의 문화적 감수성을 담지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서울시장으로서 서민들의 행복을 구현할 콘텐츠가 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금실 전 장관은 6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미지 정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섭섭함을 토로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법무부에서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사람들이 정확히 모른다는 점이다. 어떤 성과와 한계가 있었는지 분석 없이 ‘이미지 정치'라고 비난한다. 내용이 뭔지 들여다보려고 했나. 정작 내용에는 관심없는 사회가 아닌가. 그런 기초작업이 이뤄지는 사회로 가는 데 조금 기여할 수 있었으면 했다.”

--강금실 “우리 사회 정작 내용엔 관심없어”

국내에도 번역된 <이미지와 환상>의 저자 대니얼 부어스틴은 현대 대중사회의 특징으로 매스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환상을 만들어내고 실체를 현혹하는 현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실물보다 이미지가 우선시되고, 진짜보다 진짜를 더 진짜답게 모사한 ‘진짜 같은 가짜’에 현혹되는 현대사회의 부박함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이미지가 실재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실재를 왜곡해 진실 인식을 방해한다는, 이미지 과잉 사회에 대한 부어스틴의 경고는 21세기 한국의 정치현실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이미지 지배의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 자체의 선호가 아니라, 얼마나 이미지가 실체와 부합하는지를 꼼꼼히 따져보는 일이다. 한국 정치가 이미지의 늪에서 벗어나, 내용을 갖춘 이미지의 세계로 나아갈지는 언론과 유권자의 수준이 결정한다. 정작 강한 이미지 정치의 한 사람도 ‘내용에 관심이 없는 한국사회’를 탓하지 않는가?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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