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지금 현재 입주민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시공, 부실 감리가 이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이른바 ‘철근 누락 아파트’ 사건의 발단은 현 정부가 아니라며 다시 이전 정부를 탓했다. 국민적 우려가 큰 사안에 무한책임을 지기보다 전 정부에 책임을 돌려 지지층을 결집하려 한다는 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 국무회의 머리발언에서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의 무량판 공사 부실시공에 많은 국민이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날 국토교통부는 무량판 구조에 필수적인 보강철근 누락이 확인된 15개 공공주택단지 가운데 5개 단지는 입주가 완료됐고, 3개는 입주 중이며, 7개는 입주가 예정된 곳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건설 산업의 이권 카르텔이 지적되고 있다”며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을 혁파하지 않고는 어떠한 혁신도 개혁도 불가능하다. 혁신과 개혁은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고 제가 누누이 이야기한 바 있다. 특히 국민의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수어야 한다”고 ‘엄벌주의’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거듭 “우리 정부는 반카르텔 정부”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월3일 부처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주며 “우리 정부는 반카르텔 정부다. 헌법 정신을 무너뜨리는 이권 카르텔과 가차없이 싸워달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안전은 돈보다 중요한 것”이라며 무량판 공법으로 시공한 전국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조속히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호응하며 이권 카르텔 국정조사에 나서겠다고 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총체적 부실이 모두 문재인 정권에서 일어났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짓밟고 임대주택으로 내몰더니 그마저도 엉터리 부실 공사였던 것이다”라며 “문재인 정권의 ‘이권 카르텔’을 국정조사로 모두 파헤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전 정부 탓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는 집권 1년이 지났음에도 남북문제나 외교·안보 문제, 재정 운용 문제 등을 포함해 대부분의 분야에서 전 정부를 비난해왔다. 그는 지난 7월18일 국무회의에서도 전국적 수해 대책을 언급하며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겠다”며 전 정부 때 지급된 보조금 재원을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 쪽에 투입하겠다고 했다. 이번 역시 부실 공사 문제를 전 정부 책임으로 돌렸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언급은 국민의 생활 안전과 관련한 문제에도 남 탓을 앞세우면서 진영 간 갈등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대통령실이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전 정부, 야당 때리기를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이관후 정치학자는 한겨레에 “정치는 사회 갈등을 찾아내고 조정하고 해소해야 하는 것인데 이런 메시지는 올바른 정치 방식은 아니다”라며 “내년 총선을 대선 연장전, 전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프레임으로 치르겠다는 전략을 드러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 정권 때문에, 다수당 때문에 아무것도 못 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남 탓 전문 대통령은 본인 임기 동안 벌어진 참사에 어떻게 대응했느냐”며 “유체이탈 화법으로 화부터 내는 윤 대통령에게 국민은 분노한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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