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실업급여 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나온 “시럽급여” “샤넬 선글라스” 발언의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실업급여 관련 공개 논의를 별로 하지 않던
여당이 갑자기 하한액 축소 방침을 꺼내든 배경이 무엇인지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정부로선 노동계가 강하게 반대하는 실업급여 하한액 축소를 밀어붙이려다 발이 꼬이는 모양새다.
실업급여 하한액 축소 방침과 관련 발언은 지난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가 연 민·당·정 공청회에서 나왔다. 활동 기한이 오는 8월 말까지인 노동특위는 당초 △주 69시간제 보완책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적용 방안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업급여는 노동특위에서 다룰 주요 의제에 포함돼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이와 관련한 당정 협의를 먼저 요청하면서 이날 공청회가 열리게 됐다.
노동부는 지난 1월30일 ‘제5차 고용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구체적인 방식은 논의되지 않았지만 세금을 제할 경우 최저임금보다 높아지는 구직급여(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는 방향 자체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다”며 실업급여 하한액 축소 추진을 시사했다. 지난 3월부터는 양대 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참여하는 ‘고용보험 제도 개선 티에프(TF)’를 꾸렸는데, 여기서도 정부는 실업급여 하한액 축소 방향을 제시했다. 이에 지난 5월24일 양대 노총은 공동 입장문을 내, 현재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줄이는 논의에 동의할 수 없다며 티에프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17일 <한겨레>에 “노동계가 빠지긴 했지만 어쨌든 고용보험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진행해왔고, 그게 마무리돼 당정 협의를 한 것”이라며 “이번 공청회는 킥오프(시작)일 뿐, 앞으로 당정 협의를 통해 고용보험 제도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안을 만들 수 있는지 여론과 국민적 공감대를 살펴보며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실업급여 문제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국민의힘 분위기가 변한 데는 윤 대통령이 최근 ‘건전 재정’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풀이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예산을 얼마나 많이 합리화하고 줄였는지에 따라 각 부처의 혁신 마인드가 평가될 것이다. 꼭 필요한 부분에만 돈을 쓸 수 있도록 장관들이 예산을 꼼꼼하게 봐 달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의 한 축인 양대 노총조차 티에프에서 이탈하며 실업급여 하한액 축소에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당정이 공청회를 여는 등 여론몰이에 나선 것은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 자리에서 “시럽급여”(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 “실업급여 받는 분 중에 해외여행 가고, 샤넬 선글라스 사든지 옷을 산다”(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는 등 실업급여 제도를 폄훼하고 수급자를 비하하는 자극적인 발언이 나오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진 탓에, 정책 자체 논의는 제대로 진행도 안 되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실업급여 논의를 당에서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노동특위 관계자도 “‘시럽급여’ 발언이 모든 논의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며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에서 “실업급여 액수가 높다고 해서 이걸 무조건 줄여야 한다는 식으로 논의를 단순화시켜선 안 된다”며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시럽급여’ 내지는 명품 쇼핑 이렇게 이슈를 조금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