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사진 오른쪽)과 김정재 간사를 비롯한 국민의힘 소속 국토교통위원들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이 제기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원 장관이 이런 결정을 “(여)당과 협의했다”고 밝히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원 장관이 관련 발표를 할 때까지도 내용을 알지 못했던 의원들 사이에서는 “원 장관이 당을 들러리 세웠다”는 반응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원 장관은 7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백지화 발표 과정을 묻는 진행자의 말에 “전격적인 발표로 들렸을 수는 있는데, 어떻게 당하고 한마디 얘기를 안 하고 그렇게 (발표)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과는 한마디도 논의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양평 고속도로가 대선 공약으로 대통령과 상의 없이 백지화 결정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대통령을 흠집 내기 위해 여사님을 계속 물고 들어가는 민주당의 날파리 선동 프레임에 장관은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원 장관은 전날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실무당정협의회 뒤 기자들과 만나서도 ‘사업 백지화 발표는 당과 상의된 내용’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의 목소리는 다르다. 전날 실무당정에 참석한 의원들은 원 장관의 백지화 발표 전까지 전혀 관련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복수의 참석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6일 오전 10시 실무당정협의에 앞서 의원들에게 공유된 안건은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한 가짜뉴스 대응’이었다. 원 장관은 실무당정 공개 발언에서 “가짜뉴스로 있지 않은 악마를 만들려는 시도를 국민이 심판할 수 있도록 저희가 강력한 방안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공개회의에서도 원 장관은 ‘강력한 방안’을 의원들에게 공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재 의원은 “저희도 몰랐다. 고속도로를 할 건지 말 건지는 정치권에서 조율할 수가 없다”며 “이건 당정협의할 일은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 참석자는 “(원 장관이) 여당 의원들을 사실상 ‘병풍’ 세운 거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더라. 비공개회의 때도 뭘 공유하는지 전혀 듣지도 못했고, 장관은 전화하느라, 메모지에 뭘 적느라 바쁘더라. (그 모습을 보고 용산과) ‘얘기하고 있는 거 아닌가’하는 추측이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원 장관이 (양평 고속도로에 대해) 책임지겠다고만 했지, (백지화 등) 내용은 전혀 얘기를 안했다”며 “회의 때 원 장관이 메모지에 혼자 막 뭘 적던데, 그게 아마 그날 발표한 백지화 내용이 아니었겠나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전날 실무당정 논의 때 이번 논란을 ‘감싸기’에만 급급한 국토부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고 한다. 국토부는 의원들에게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하고 난 뒤 노선을 바꾸는 것은 일반적’이라고 적힌 자료를 의원들에게 나눠줬는데, 이에 일부 의원들은 “예타를 하고 사업을 바꾸는 것은 ‘이례적’이지 이걸 어떻게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무당정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예타 뒤 노선을 바꾸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며 “(관련 의혹을) ‘가짜뉴스’라고 하려면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우리가 그 내용을 모르지 않는가. 우리가 (사실관계도 모른 채) 잘못 끼면 총선에서 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두고 ‘수직적 당정 관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의원은 “이럴 거면 국토부에서 자체적으로 그냥 백지화 발표를 하면 되지, 왜 굳이 의원들을 불러서 들러리 세우는가. 대체 당을 어떻게 보는 건지 한숨이 나온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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