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31일 오전 8시5분께 어청도 서방 200여㎞ 해상에서 인양한 ‘북 주장 우주발사체’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 합동참모본부 제공
북한이 31일 발사한 군사정찰위성인 ‘만리경 1호’를 실은 우주발사체가 추진체(로켓) 이상으로 정상 비행을 하지 못하고 서해에 추락하면서 실패 원인을 두고 의문이 제기된다. 그동안 북한이 우주발사체와 장거리탄도미사일(ICBM)을 수차례 발사하며 추진체 단 분리와 유도 제어 기술 등에선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또 가급적 빠른 기간 내에 2차 발사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한편에서는 2차 발사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은 이날 우주발사체 발사 실패를 신속히 인정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신형 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 1’형에 도입된 신형 발동기 체계의 믿음성과 안정성이 떨어지고 사용된 연료의 특성이 불안정한 데 사고의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원인 해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은 “2단 추진체 이상으로 추진력을 상실하면서 추락했다”고 설명했다.
통상 1단 로켓은 강한 추력으로 우주발사체를 2단 로켓 분리 지점까지 이르게 한 뒤 분리된다. 이어 2단 로켓이 바로 점화돼 위성체를 실은 3단 부분을 대기권 밖으로 끌어올린다. 북한이 일본 정부와 국제해사기구(IMO)에 통보하면서 밝힌 1단 로켓 낙하지점은 ‘전북 군산 쪽에서 서해 멀리’다. 북한 발사체가 추락한 어청도 서쪽 200㎞는 전북 군산과 비슷한 위도에 있다. 북한 설명과 예고된 로켓 낙하지점을 토대로 분석하면, 만리경 1호는 신형 엔진체계와 연료 불안정으로 1단 분리 뒤, 2단 로켓 점화가 제대로 안 돼 추진력을 잃고 바다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우주발사체 발사를 앞두고 군당국 등은 우주발사체보다는 발사체에 탑재된 위성이 궤도에 진입해 정상적으로 작동할지와 정찰위성의 성능에 관심을 뒀다. 이런 예상과 달리 이날 정찰위성의 궤도 진입은커녕 2단 추진체 분리도 못 하고 발사체가 추락한 것이다. 앞서 북한은 1998년 8월 이후 이날까지 모두 7차례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는데, 이 가운데 2012년 12월과 2016년 2월 단 2차례만 위성(정상 작동 실패)을 궤도에 올려놓은 바 있다.
국가정보원은 무리한 경로 변경을 발사 실패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에서는 이번 (만리경 1호) 비행을 보면서 과거에는 1, 2단의 비행경로가 일직선이었으나, 이번 발사는 서쪽으로 치우친 경로를 설정하면서 동쪽으로 무리한 경로 변경을 시도하려다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고 말했다. 또한 국정원은 만리경 1호가 길이 1.3m, 무게 300㎏급으로, 해상도가 최대 1m 안팎인 초보적인 정찰 임무 정도만 가능한 소형 지구관측위성이라고 보고했다.
발사체를 수거한 군은 “1단과 2단, 어디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추진체에 사용하는 액체연료는 독성이 크고, 연소 충격이 커서 통제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사 전 충분한 지상시험을 통해 신형 엔진의 고공 점화와 연소 특성을 충분히 파악해야 하는데, 부족했을 수 있다.
군 당국이 31일 오전 8시5분께 어청도 서방 200여㎞ 해상에서 ‘북 주장 우주발사체’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를 인양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북한은 가급적 빠른 기간 내에 제2차 발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은 고장 원인이 경미하면 북한이 애초 예고한 6월11일 0시 안에 군사정찰위성 2차 발사(재발사)에 나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정원도 “북한이 발사장을 변경해 조기에 2차 발사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정보위에 보고했다.
하지만 북한이 당장 재발사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2012년 4월 광명성 3호 발사 실패 뒤, 8개월이 지난 그해 12월 2차 발사에 나선 사례를 언급하며 “충분히 시간을 갖고 2차 발사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2차 발사도 실패하면 북한 정권 차원에서 부담이 크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할 것이란 예상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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