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 전략회의에 입장하며 시계를 보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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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6시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1000만명이 거주하는 수도 서울의 아침이 혼란과 공포에 점령당했다. 시작은 31일 오전 6시41분에 발송된 서울시의 ‘위급재난문자’ 한통이었다. 몇분의 시차를 두고 서울시내 곳곳에 사이렌 경보가 울렸고, 내용을 알아듣기 힘든 방송 음향이 관공서 스피커를 통해 퍼져 나갔다.
시민들은 무슨 일로 경계경보가 발령됐는지, 대피는 어디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했다.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상황 파악을 시도했으나 트래픽 폭주로 그마저 불통이었다. 말 그대로 ‘패닉’이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송은경(57)씨는 “겁만 잔뜩 주고 구체적 내용과 지침은 없는 경보 문자에 너무 막막해졌다. 진짜 전쟁 나면 허둥지둥하다가 다 죽겠더라”고 말했다. 에스엔에스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일본 정부가 오전 6시30분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안 또는 지하로 대피하라”는 내용으로 보낸 재난문자를 공유하며 서울시가 보낸 메시지의 부실함을 꼬집는 의견들이 호응을 얻었다.
31일 용산 전자상가에 북한 우주발사체 발사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연합뉴스
행정안전부가 22분 뒤인 오전 7시3분, 재난문자를 통해 서울시 경계경보가 잘못 발령된 것임을 알렸지만, 서울시는 오전 7시25분에야 ‘경계경보 해제’ 사실을 재난문자로 통보했다. 앞선 경계경보가 ‘오발령’이 아니라는 강변이었다.
재난대응 주무부처인 행안부와 실행 주체인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상황 판단과 대응이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국가 위기관리 체계의 난맥상을 드러낸 이른 아침의 ‘문자 재난’이었다.
이날의 혼란은 북한의 위성탑재로켓 발사와 관련해 정부 내 안보-재난대응 부처와 지자체 사이에 사전 정보 공유와 대응 지침 점검만 적절히 이뤄졌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란 점에서, 서울시뿐 아니라 정부 역시 책임을 피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이 군사위성 발사를 며칠 전부터 예고한 데다, 한-미 군당국의 정보자산을 통해 발사 준비단계부터 북한 쪽 동향에 대한 실시간 감시가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정부와 서울시의 엇박자를 단순히 지자체 재난대응 실무자의 오판 탓으로 돌리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한둘이 아닌 탓이다.
실제 서울시가 북한 위성로켓 발사 뒤 발송한 문자를 보면, 위기상황에 대해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보 공유가 얼마나 이뤄졌는지부터 의문이다. 서울시는 실제 발사 시각(합참 발표 기준)보다 12분이 지나고서야 경보 발령 사실을 문자로 알렸을 뿐 아니라, 경보 발령 이유에 대해서도 일언반구가 없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31일 시청 브리핑실에서 이날 오전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 발사와 관련해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위급재난 문자 관련 입장을 밝힌 뒤 브리핑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서 250㎞ 떨어진 상공 통과 뒤 대피 문자
위성탑재로켓의 궤도가 서울 등 수도권과 거리가 상당한 백령도 서쪽 해상을 통과해 동중국해 쪽으로 향하는 것으로 탐지됐음에도 서울시가 경계경보를 발령한 것 역시 납득이 쉽지 않은 부분이다.
서울시가 위급재난문자를 보냈을 때 북한 위성로켓은 서울에서 서쪽으로 250㎞ 정도 떨어진 서해바다 상공을 통과한 뒤였다. 서울시가 발사체의 비행궤도에 대해 정부로부터 어떤 정보도 공유받지 못했거나, 공유받고도 무시했다는 뜻이다.
실제 북한이 발사체(미사일)을 쏘면 공군작전사령부가 1분 안에 탐지해 속도와 예상 비행경로, 낙하지점을 계산해 육해공군, 정부 기관 등에 전용통신망을 이용해 거의 실시간으로 통보한다. 그러면 행안부 중앙경보통제소는 통보받은 정보를 정리해 각 시·도 경보통제소에 한꺼번에 전파하게 돼 있다.
서울시의 경계경보 오발령은 이 정보 전달의 고리 한 곳이 끊어졌거나, 시스템 자체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