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일본 히로시마 한 호텔에서 열린 ‘히로시마 동포 원폭 피해자와의 만남’에서 발언하고 있다. 히로시마/연합뉴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관국(옵서버)으로 초대된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만나 “슬픔과 고통을 겪는 현장에서 고국이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최초로 성사된 원폭 피해자들과의 만남 자체엔 의미가 적지 않지만, 피해자와 2, 3세들의 실질적 보상으로 이어질지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저녁 히로시마 한 호텔에서 히로시마 인근에 거주하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10명과 그 후손,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관계자 등 20여명과 면담을 진행하며 “우리 동포들이 원자폭탄 피폭을 당할 때 우리는 식민 상태였고, 해방 그리고 독립이 됐지만 나라가 힘이 없었고 공산 침략을 당하고 정말 어려웠다. 우리 동포들이 타지에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정부, 국가가 여러분 곁에 없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희생되신 동포들과 여러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도 동석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늦게 여러분을 찾아뵙게 돼 죄송하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윤 대통령은 또 오는 2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한인 피폭자 위령비를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참배할 예정인 점도 언급하며 “저와 기시다 총리가 위령비 앞에서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타향에서 전쟁의 참화를 직접 겪은 한국인 원폭 희생자를 추모하면서 양국의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열어갈 것을 함께 다짐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권양백(80) 전 한국인원폭희생자 위령비 이설위원장은 “저도 2살 때 원폭을 맞았다. 오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감격을 느낀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어 “과거를 너무 따지지 말고, 너무 얽매이지 말고, 앞을 보고 갑시다.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없도록 서로 협조합시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피폭 동포와 그분들 가족, 민단과 동포 관계자분들께서 조만간 한국을 한번 방문해주시기를 초청하겠다”며 “고국에 오셔서 모국이 얼마나 변하고 발전했는지 꼭 한번 보시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였던 1945년 8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피폭자는 69만명, 이 가운데 사망자는 23만명으로 추계한다. 이들 지역에 강제동원 노동자로 거주하던 한국인 피폭자 규모는 7만명에 달했고, 이 가운데 4만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피폭 생존자 중 귀국한 이는 2만3천명, 현지에 남은 이는 7천명으로 집계됐다. 두 나라로 흩어진 피해자들은 체내 방사능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렸고, 결혼, 취업 등 각종 차별에 직면하기도 했다. 원폭 피해자들에게 실질적 지원책이 도출되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 정부의 협력이 필요하다. 고령의 피해자들과 피폭 2, 3세들은 수십년째 보상지원 체계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앞서 히로시마 도착 직후 앤서니 앨버니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총리, 팜민찐 베트남 총리와 연달아 정상회담을 했다. 한국과 호주는 핵심 광물 교역 등 공급망 안정화 방안 등을 위해 두 나라가 협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팜민찐 총리와는 투자 협력 방안이 논의됐다.
윤 대통령은 20일부터 주요 7개국 정상회의 확대회의에 참석해 식량·보건·환경 등에 대해 토론한다. 마지막 날인 21일에는 한-일 정상회담이 예고돼 있다.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도 유력하다.
히로시마/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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