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 20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기념관을 찾아 4·3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검색창에 ‘에스레터’를 쳐보세요.
지난 20일 오전 국민의힘 최고위원회가 시작되기 전 기자들이 수군거렸다. 태영호 최고위원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사라졌고 그가 최고위 회의에도 불참했기 때문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 최고위원은 지난 18일 공개된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전략에 당했다”고 했고 “대한민국에서 좌파들이 권력을 갖게 되면 역사를 왜곡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13일 제주도에서 열린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선 제주 4·3이 “명백히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Junk Money Sex(쓰레기·돈·섹스) 민주당, 역시 JMS(제이엠에스) 민주당”이라고 적었다가 글을 지웠다. 사이비 종교단체 기독교복음선교회(JMS)에 야당을 빗대며 막말을 한 것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언론 인터뷰 등 대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태 최고위원에게 경고장을 날렸고 결국 그의 ‘근신’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 관계자는 “태 최고위원은 실수를 한 게 아니고 확신범”이라며 “전당대회 때 한 4·3 발언이 자기에게 오히려 도움이 돼 자력으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고 믿고 있다. 저런 발언이 본인 정치에는 더 유리하다고 보는 거 아니겠냐”고 말했다.
국민의힘 최고위 ‘결석자’는 태 최고위원뿐만이 아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우파 진영을 전부 천하통일했다”고 주장한 김재원 최고위원도 이달 초 공개 활동을 당분간 중단하겠다며 이미 모습을 감췄다. 여당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2명이 ‘셀프 징계’ 중인 셈이다. 김 최고위원도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하고, ‘제주 4·3 추모일은 격이 낮은 기념일’이라고 하며 물의를 일으켰다.
당내에선 정치 경력이 많은 김 최고위원의 문제 발언을 더 엄중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자진사퇴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친윤석열계인 이용 의원은 지난 18일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진사퇴는 그분의 판단에 맡기겠지만, 어떤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지도부 안에선 “이건 수습할 수가 없으니 그만두는 게 맞다” “자진사퇴 분위기도 있지만, 누가 그걸 대놓고 얘기할 수 있겠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김 최고위원을 잘 아는 정치인은 “그의 성격상 자진사퇴를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선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징계를 규정하고 있다. 징계는 제명, 탈당 권유, 당원권 정지, 경고로 나뉜다. 이준석 전 대표는 성접대 관련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갔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해 10월 ‘1년6개월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았다. 다음 총선 공천 가능성을 봉쇄한 징계였다. 당 지도부 의원은 “저 두 사람(김재원·태영호)이 또다시 막말을 안 할 거라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며 “총선이 다가올수록 악재이기 때문에 징계를 세게 내려야 한다”고 했다. ‘막말만으로 중징계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징계를 피할 수 없다는 점에는 여당 내부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위원장 황정근 변호사)는 지난 13일 새로 출범했다. ‘친윤 일색 지도부’ 체제에서 국민의힘은 읍참마속, 환골탈태를 보여줄 수 있을까.
서영지 정치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