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논썰>의 손원제입니다.
많은 국민의 울분을 건드린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낙마 사건의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대략 3부작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검찰 특권의 나라가 된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논썰] “악마같다” 피해자 절규, 두번 짓밟은 검찰 특권의 나라. 한겨레TV
1편은 이번 사태의 출발이죠. 검사 출신이 경찰 핵심 요직인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사실 그 자체를 다룹니다. 정순신 본부장, 이제는 변호사라고 불러야겠죠. 정 변호사는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 등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근무했습니다. ‘윤석열 사단’의 일원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더구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과는 사법연수원 27기 동기입니다. 3만명의 수사 경찰을 지휘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이런 사람을 임명한 겁니다.
“저는 참 경찰의 수사 최종책임자 실무자, 이런 사람을 검사로 임명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한 것 자체가 저는 너무 웃겨요.”(장성철 공론센터 소장, 2월27일 MBC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검찰의 경찰 장악 시도에 탈 나
지난 정부에선 경찰의 독립성을 높여 권력기관 간 견제가 가능하도록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고, 경찰 수사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경찰청장 휘하에서 수사 기능을 떼내 국가수사본부를 창설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윤석열 사단 검사 출신을 떡 하니 갖다 앉힌 겁니다. 사실상 검찰에 의한 경찰 장악과 다를 바 없습니다.
[논썰] “악마같다” 피해자 절규, 두번 짓밟은 검찰 특권의 나라. 한겨레TV
장윤선 “검찰 말고 경찰에 30년씩 일한 수사전문가들이 많은데 치안정감도 있고. 굳이 검찰 출신을 불러다가 세워야 되는 이유가 뭐냐?”
장성철 “이유는 다 알잖아요. 우리가.”(2월27일 MBC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가뜩이나 윤석열 정부에선 검찰 출신이 아니면 명함을 내밀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대통령실 인사·총무 라인은 싹쓸이하다시피 했고, 국정원 기조실장에도 연속으로 검사 출신이 임명됐습니다. 보훈처장도 금융감독원장도 검사, 총리 비서실장도 검사 출신입니다. 정 변호사의 본부장 임명은 검사 천하, 검찰 공화국의 그림자가 경찰 조직까지 뒤덮었다는 의미를 띱니다.
[논썰] “악마같다” 피해자 절규, 두번 짓밟은 검찰 특권의 나라. 한겨레TV
판결문에 드러난 충격적 학폭 행태
2편은 장르가 바뀝니다. 1편이 정치 스릴러라면, 2편은 학교 호러물입니다. 정 변호사와 함께 아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게 됩니다. 정 변호사의 본부장 임명 당일인 2월24일 <KBS> ‘9시 뉴스’는 ‘정순신 학폭 가해 아들 소송에 가처분까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여론이 들끓자, 정 변호사는 하루 만인 25일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애초 이 보도 뒤에도 “자식이나 부모가 문제가 있다고 본인이 평가받는 건 연좌제 아니냐”는 말로 정 변호사를 편들던 국민의힘에서도 사의 표명 뒤엔 환영 논평을 냈습니다.
“사안의 심각성이나 국민정서 등을 고려했을 때 국가적 중책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더 늦지 않게 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25일 구두논평)
그러나 정 변호사의 낙마는 2편의 도입부일 뿐입니다. 여러 후속 보도로 정 변호사 아들의 경악스런 학폭 내용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정 변호사 아들은 2017년 기숙사 생활을 하는 강원도의 한 명문 자사고에 입학한 뒤 동급생 ㄱ씨를 상대로 1년 가까이 폭언을 하고 집단따돌림과 괴롭힘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중에 진행된 이 학폭 관련 소송 판결문에 나온 가해자 정씨의 행태는 충격적입니다.
[논썰] “악마같다” 피해자 절규, 두번 짓밟은 검찰 특권의 나라. 한겨레TV
원고는 피해학생에게, 기숙사 방이나 식당 등에서 “더러우니까 꺼져라”, “넌 돼지라 냄새가 난다”, “제주도에서 온 돼지새끼”, “빨갱이 새끼” 등과 같이 단순히 친구들 사이에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피해 학생의 인격과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춘천지방법원 판결문)
판결문에는 학교 학폭위에서 피해 학생이 한 발언도 들어 있습니다.
[논썰] “악마같다” 피해자 절규, 두번 짓밟은 검찰 특권의 나라. 한겨레TV
처음부터 “넌 사료나 처먹어야 한다”, “좌파 빨갱이”라고 했다.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러면 더 힘들게 하고 나중에는 익숙해졌다. 식당에 오면 ‘왜 인간이 밥 먹는 곳에 오냐? 구제역 걸리기 전에 꺼져라’라고 했다. 죽을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냥 내가 참고 전학 갈까 생각했지만,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설득해 주셔서 신고하게 된 것 같다.
“괴롭힌 이유도 피해자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에요. 단지 제주도에서 왔다. 이런 이유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막말을.”(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 2월27일 KBS ‘최영일의 시사본부’)
고위 검사 아버지의 집요한 소송 ‘2차 가해’
피해자의 신고로 학폭 사실을 알게 된 학교 쪽은 가해자 정씨에게 강제전학·서면사과·특별교육 이수 10시간·보호자 특별교육 이수 10시간 처분을 내립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정 변호사가 학교 징계에 맞서 재심 청구, 행정소송, 징계효력 집행정지 신청 등 온갖 법적 수단을 동원해 징계를 막으려 시도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정 변호사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을 맡고 있었습니다.
[논썰] “악마같다” 피해자 절규, 두번 짓밟은 검찰 특권의 나라. 한겨레TV
“인권감독관이 하는 일 중의 하나가 피해자 보호 관련 업무 등의 인권 수호 업무를 전담을 하거든요. 저는 이 정도의 인권의식을 가진 사람이 참 어떻게 인권감독관을 지냈고, 또 어떤 인권을 보호하는 일을 했는지가 참 의문스럽습니다.”(신인규 변호사, 2월27일 YTN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졌고, 그사이 피해 학생은 계속해서 학폭을 부인하는 가해자와 마주치며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극심한 불안 등 트라우마 증상을 보였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두 차례나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부모도 시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에 피눈물을 흘린 것은 물론 기나긴 소송으로 정신적·물질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정 변호사 쪽의 재심 청구로 학폭위에 다시 나온 피해 학생은 그 힘겨웠던 상황을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논썰] “악마같다” 피해자 절규, 두번 짓밟은 검찰 특권의 나라. 한겨레TV
“그렇게 진짜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애는 처음 봤다. 저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 자기가 변호사 선임해서 무죄 판결 받았다고 떠들고 다니고. 정말 악마인 것 같다. 걔 얼굴만 봐도 트라우마가 있다.”
피가 거꾸로 치솟을 일입니다.
가해자는 서울대 합격, 피해자는 기나긴 후유증
더욱 황당한 일은 이런 소송전 끝에 가해자 정씨는 3학년이 되기 직전인 2019년 2월에야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 판결을 받아 강제전학으로 학교를 옮겼고, 2020년 서울대에 합격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피해자는 제주도에서 명문 자사고로 유학을 왔고, 그 안에서도 상위 30%에 들 만큼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결국 학폭 후유증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학교 폭력을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엔 주인공 문동은이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마지막 수단으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가해자 박연진은 자신의 어머니와 친한 고위직의 비호로 아무 일 없이 풀려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후로도 박연진은 대학을 나와 유명 기상 캐스터가 되고 재벌2세와 결혼하는 등 승승장구합니다. 정순신 시리즈 2편과 영락없이 닮은꼴입니다. 그나마 드라마에선 파트2에서 문동은의 속 시원한 복수극이 기다리고 있지만, 현실 속의 피해자에게 정의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입니다.
가해자 정씨 쪽이 재판으로 시간을 끈 이유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학폭 징계 내용이 기재돼 입시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정씨 경우는 학폭위 처분이 정당하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고3이 되기 전에 내려지면서 실제 징계 내용 기재를 막거나 낮은 수위로 수정하지는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서울대 정시모집에서는 학생부가 필수 제출 서류이고, 학내외 징계 여부는 감점 요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현재 서울대는 학생부에 기재된 강제전학 조처를 확인해 감점을 했는지 여부에 대해 ‘개인 정보’라는 이유를 들어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반드시 확인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강제는 아닌데 사회적 공분이 커지다 보면 서울대 쪽에서 입장을 내놔야 되는 경우로 번질 수도 있다고 저는 봅니다.”(양지열 변호사, 2월27일 YTN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학폭 가해자에게 규정대로 감점이 주어졌는지 제대로 밝힌 다음에야 학폭 근절을 위한 추가적인 제도 개선 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있는 규정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제도만 만지작거리는 건 모래 위에 집 짓기나 다름없습니다.
가해자, 검사 아버지 권력 과시 잦아
[논썰] “악마같다” 피해자 절규, 두번 짓밟은 검찰 특권의 나라. 한겨레TV
또 하나 이번 사건과 관련해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교육계나 법조계에 따르면, 요즘 학폭 세탁을 위해 소송이 빈발하긴 하지만, 정씨 일가처럼 집요하게 학폭 소송을 이어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초기에 깊이 사과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징계 수위를 최소화하려고 하고, 이후 소송에 들어가더라도 이들처럼 대법원까지 끝장 소송을 이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겁니다.
“저도 학폭 사건은 많이 다뤄봤는데요. 가해자인 부모들은 대체로 ‘내가 자식 관리를 잘못했다’, ‘가정교육을 잘못했다’ 하면서 선처를 호소할 수는 있지만, 대체로 학폭 자치위원의 처분에 따라서 어떻게 하든지 반성하고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 이렇게 하는 편이지, 이걸 행정소송 하고, 집행정지 가처분하고, 대법원까지 가고.”(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2월27일 YTN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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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정씨만 이렇게 한 것은 당시 잘나가는 특수통 고위 검찰이던 아버지의 지위와 뒷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많습니다. 검찰 특수통은 피의자의 죄를 캐내고 어떻게든 유죄를 만드는 데 능숙한 전문가들입니다. 정 변호사는 국가수사본부장을 물러나면서 내놓은 입장문에 “수사의 최종 목표는 유죄 판결”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진상 규명이 아닌 유죄를 받아내는 게 수사의 목표라니, ‘누구라도 일단 불려가면 어떻게 될까’ 소름 끼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직업적 특성상 말 한마디로 법적 꼬투리를 잡힐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데는 인색합니다.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실제 정 변호사 아들은 학폭 사실을 줄곧 부인하고, 학폭위의 사과문 제출 결정이 나왔음에도 A4 용지 3분의 1 정도만 제대로 된 서식 없이 써서 냈다고 합니다. 판결문을 보면, 한 학폭위원은 이렇게 말했을 정도입니다.
“제출한 서면사과 양이나 질에 있어 부족해서 다시 작성하라고 했다고 한다. 서면사과의 양이, 그리고 필체나 이런 것이 정성이 전혀 안 들어가 있는 듯한, 너무 간략해서.”
양지열 “게다가 저는 부모님의 문제가 더 컸던 것 같은 게, 일부나마 어떻게든 선생님이 지도를 해서 그 상황이 잘못됐다는 것을 가해 학생에게 공감을 시키고 나면, 집에 갔다 오면 바뀌어 있다라는 거예요. 갔다 오면 잘못을 인정 안 한다는 식이에요.”
신인규 “코치를 받았겠죠.”
(양지열-신인규 변호사, 2월27일 YTN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가해자 정씨는 검사 아버지의 권력을 종종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판결문에 나온 한 목격 학생의 진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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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학생이) 평상시에 계속 아버지 자랑을 하며 “내 아빠 아는 사람이” 등을 언급하곤 한다. 그 내용이 “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을 받고 하는 직업이다. 내 아빠는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는 사람이 많으면 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 등 부정적이고, 마치 자신의 아버지가 이런 대한민국의 비리와 관련되어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한 발언을 하였다.
“가해자인 아들이 그런 언급을 해가면서, 아버지가 현직 검사라는 점이 ‘아빠 찬스’로 활용된 그런 측면이 있죠.”(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2월27일 YTN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정순신 시리즈 2편은 이번 사건이 고교생 아들의 단순한 학폭 사건을 넘어, 우리 사회의 특권계급으로 자리 잡은 검사 아버지의 권력과 위세를 동원한 권력층의 연쇄 가해 사건이라는 점을 말해줍니다.
윤 대통령 사과·문책 없이 또 뭉개기
[논썰] “악마같다” 피해자 절규, 두번 짓밟은 검찰 특권의 나라. 한겨레TV
이제 정순신 3부작의 마지막 3편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가 왜 어쩌다가 이런 인물을 국가수사본부장에 앉히는 역대급 인사 참사가 벌어졌는지, 그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추리 스릴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단 이번 사태의 최종적 책임은 인사권자인 윤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인사 실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잘못된 인사로 국민의 거센 분노를 유발하고도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2월27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는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보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국민들은 검찰 특권과 인사 참사를 가리키는데, 엉뚱한 곳을 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말 본인도 학폭에 대해서는 아니 느닷없이 불쾌함을 피력하면서 학폭 사건에 대해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하는데, 저는 그게 너무 코미디라고 보이는 거죠. 이런 사람을 임명해놓고.”(장윤선 기자, 2월27일 MBC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구체적으로 책임 층위는 인사 추천과 검증의 실패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인사 추천은 공식적으로 윤희근 경찰청장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1편에서 살펴봤듯이, 사실상 정 변호사를 민 것은 검사 출신으로 국수본을 장악하기 위한 대통령실의 뜻이라고 봐야 합니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 인사풀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예요. 또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 출신들을 많이 쓰는데, 쓸 때 써야 되잖아요. 경찰도 자존심이 있는데.”(조원진 전 의원, 2월27일 YTN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이게 정말 시중에서 회자되는 말처럼 검찰공화국이 아니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2월27일 YTN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실제 윤 청장은 2월27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대통령실과 의견 교환을 통해 적격자를 추천했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실의 인사 담당은 모두 검찰 출신입니다. 복두규 인사기획관은 대검 사무국장 출신이고, 이원모 인사비서관은 검사 출신입니다. 이 비서관은 정 변호사와 평검사로 같이 근무한 인연도 있습니다. 이들이 어떤 인물을 추천했을지는 누가 봐도 뻔해 보입니다.
한동훈 “책임감 느끼지만 책임 못져” 궤변
[논썰] “악마같다” 피해자 절규, 두번 짓밟은 검찰 특권의 나라. 한겨레TV
인사 검증은 1차 검증을 맡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2차 검증을 맡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책임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정 변호사와 연수원 동기이고,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도 검사 출신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 중 누구 하나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동훈 장관은 2월28일 “정무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되는 것 아니겠냐”라면서도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냐’는 기자들 질문엔 “아니다”라고 일축했습니다.
책임감은 느끼는데, 책임은 안 진다. 이런 초라한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이 한 나라의 법무부 장관이라는 현실이 암담할 따름입니다. 애초 민정수석실에 있던 인사 검증 기능을 미국 FBI 방식을 거론하며 법무부로 옮겨놓은 당사자가 할 말인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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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경우 FBI 같은 법 집행기관에서 그걸(인사 검증을) 한 사례가 많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번에 대통령실에서 하던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업무를 루틴하고 부서의 통상 업무로 편입시키겠다는 차원에서 법무부를 선택한 것으로 보이고 그 선택한 합리적 근거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한동훈 법무부 장관, 2022년 7월28일 국회 법사위)
지난해 7월 법사위에 출석해선 ‘책임을 져야 할 상황’ 운운하며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과도 상반됩니다.
“더 심할 경우에는 (인사 검증 실패로) 국민적인 지탄이 커지면 제가 책임을 져야 될, 다른 종류의 책임을 져야 될 상황도 생기지 않겠습니까.”(한동훈 법무부 장관, 2022년 7월28일 국회 법사위)
그래놓고 이제 와선 실제 국민의 지탄이 쏟아지는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해 어떤 실질적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하고 있으니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한 장관이 “법무부는 일차적인 객관적·기계적 검증을 하는 것”이라며 “구조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도 ‘비겁한 변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한 장관이 말한 구조적 문제는 인사 대상자가 인사검증 서류에 허위 기재하거나 자녀 관련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을 경우 미리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 변호사는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에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이 관계된 소송이 있는지를 묻는 항목에 ‘없다’고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검증 과정에서 과거 학폭 관련 사실관계로 파고들 동기를 찾지 못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를 두곤 두가지 반론이 나옵니다. 먼저 정 변호사가 학폭 소송 사실을 숨겼더라도 다른 기본적 관련 자료를 제대로 검증했다면, 그 과정에서 이 문제가 튀어나왔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강제전학’ 여부를 떠나 고3 때 전학 간 사실 자체는 학적부에 기재돼 있는 만큼 기초 검증 단계에서 학적 자료를 확보해 들여다보기만 했으면 왜 전학을 갔는지 캐물어 볼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제가 볼 때는 그런 인사 검증 과정을 다 거쳐 놓고도, 윤석열 정권은 눈을 감았던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논썰] “악마같다” 피해자 절규, 두번 짓밟은 검찰 특권의 나라. 한겨레TV
“공직후보자 인사 검증의 기본 중의 하나가 ‘후보자와 직계 가족의 학적 사항’이다. 민사고를 다니던 아들이 졸업 직전 전학을 갔다면,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2월26일 페이스북)
“그런데 빠뜨렸다 하더라도 사실은 검증단계에서 이것이 다 검색이 되는 것이고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 지금 누락이 되고 평가가 빠졌다라는 것은 사실상 인사검증시스템의 무능 내지는 부실을 의미하거든요.”(신인규 변호사, 3월1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끼리끼리 검찰 특권 카르텔이 배경
또 하나는 기본적으로 정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 시절 KBS에 크게 보도된 사안을 당시 같이 근무했던 윤 대통령이나 한 장관, 검찰 출신 대통령실 관련 인사들이 몰랐을 리 있겠느냐는 지적입니다.
최경영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이 당시 검사랑 같이 근무했던데 몰랐을까요?”
이언주 “말은 그렇게 하는데요. 몰랐겠어요? 그때 아마 발칵 뒤집어졌을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당시에 중앙지검장이 윤석열 지금 대통령이시잖아요. 보고 다 받으셨겠죠.”(이언주 전 의원, 2월28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
“이것 때문에 심지어 당시에 윤석열 중앙지검장, 한동훈 3차장 할 때 이거 터지고 나서 정순신이 아예 검사장으로 승진을 못하고 옷 벗고 나간 거예요. 이거 지금 전부 거짓말입니다. 제가 아주 단언을 할 수 있는데. 몰랐다라는 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김준일 뉴스톱 대표, 2월27일 KBS ‘최영일의 시사본부’)
이렇다 보니 대통령실과 한 장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실은 이 정권이 정 변호사의 문제를 다 알고서도 임명을 강행했다가 일이 커지자 모르쇠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검사 출신 국가수사본부장을 앉히고 싶다는 대통령의 의중을 받들어 검찰 출신이 인사 추천을 하고 검사 출신들이 인사 검증을 하는 검찰 공화국의 패거리 특권 카르텔이야말로 이번 인사 참사의 근본 원인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지금까지 정순신 사태의 실체와 의미에 대해 3가지 측면에서 짚어봤습니다. 여전히 풀어야 할 미스터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더 글로리>처럼 ‘정순신 파트2’에선 통쾌한 해결이 가능해질까요. <논썰>에서 함께 계속 주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금 바로 영상으로 확인하시죠.
기획·출연 손원제 논설위원 wonje@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