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경축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드러나 있는 명백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정순신 사태’ 책임자 문책 가능성을 묻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정순신 변호사를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하는 과정에서 아들 학교폭력 전력을 걸러내지 못하며 인사 검증이 실패했음에도 문책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문책론’이 제기될 때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책 마련이 우선’이라며 문책을 미뤘다. 이번에도 그는 인사검증라인 교체 대신 학교폭력 종합대책 마련을 다그쳤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학폭 종합대책’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검찰 출신 인사 검증라인에 의한 허술한 검증에 대한 비판이 높지만 귀를 닫았다.
인사검증의 총괄 책임자인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큰 책임은 내게 있고, 책임을 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지만 대통령실은 이를 사퇴표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는 익숙한 패턴이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으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론이 강하게 일 당시에도 대통령실은 ‘선 수사 후 문책 검토’라며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막상 수사결과가 나온 뒤에도 이 장관에 대한 조처는 없었다. ‘선 수사’나 ‘선 대책 마련’이 인사 조처를 피하려는 시간 끌기용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게 ‘책임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은 최종 책임자의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정순신 사태’ 뒤 참모들에게 “(학폭) 피해자가 버젓이 있는데 어찌 검사라는 공직자가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할 수 있느냐”고 분노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고위공직자 후보자의 소송 이력을 걸러내지 못한 본인의 참모들을 질책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대다수 언론과 여야가 한목소리로 우려하고 비판하고 있는 인사‧검증 라인의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한 바도 없다.
애초 검증 구조를 대통령실에서 법무부로 다변화한 취지 자체도 무색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시행령으로 법무부 산하에 인사정보관리단을 만들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1차 검증 업무를 쥐어주며 “검증 영역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조처”라고 항변했다. 민정수석실의 깜깜이 방식과는 달리 국회와 언론의 공개적인 감시를 받겠다는 취지였다. 특히 한동훈 장관은 “이제 (인사 검증에 대해) 국회와 언론에서 질문하고 감사원 감사 대상도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법무부는 국회의 인사 검증 관련 자료 요구에 철저히 비공개로 맞서고 있다.
대통령실은 검증 시스템 손질과 관련해 “기술적으로, 실무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문제들이 굉장히 많다”며 단기간에 대안을 내놓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선 조처’는 또 시간끌기용 수사로, ‘후 검토’는 공허한 립서비스로 끝났던 전례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정순신 사태’는 누구의 책임도 아닌 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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