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국회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관계법개선소위원회가 열려 조해진 소위원장이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국회가 김진표 의장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주도로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나서고, 윤석열 대통령 또한 언론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언급하면서 구체적인 방안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구 1곳에서 1등만 당선하는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 의석(전체 47석) 중 30석을 정당득표율 및 지역구 의석수와 연동시키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2020년 21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당선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죽은 표(사표)가 돼버린 비율이 43.7%였던 점을 고려하면, 1등만 살아남는 소선거구제를 손질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에는 여야가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21대 총선에 처음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위성정당’ 출현으로 이어지며 비판받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또한 여야는 없애거나 뜯어고치기로 합의한 상태다. 하지만 단순히 지역구를 넓혀 2명 이상의 당선자를 내는 방식만으로 지금의 대결적 양당 정치를 해소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비례성과 대표성을 모두 높이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인천 동·미추홀을 지역구에서 윤상현 당시 무소속 후보(4만6493표)는 171표(0.1%포인트) 차이로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후보(4만6322표)를 이겼다. 부산 사하갑에서는 최인호 민주당 후보(3만9875표)가 697표(0.9%포인트) 차이로 김척수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를 이겼다. 실제 민심은 근소한 차이였지만, 결국 2등을 찍은 유권자들의 표는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고 그대로 사라졌다. 권명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당선된 울산 동구는 사표 비율이 60.92%로 가장 높았다. 권 의원은 38.3% 득표율로 당선됐는데, 2위인 김종훈 민중당 후보(33.8%), 3위 김태선 민주당 후보(24.5%) 등 낙선한 후보들의 득표가 훨씬 많았다.
이처럼 1개의 선거구에서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는 지난 13대 총선(1988년 4월)부터 30년 넘게 적용돼왔다. 하지만 2위 이하 득표자들이 얻은 표는 모두 사표가 되는 점을 줄이기 위해 소선거구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왔다.
소선거구제를 보완하기 위해 21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지만, 거대 양당의 횡포로 이는 무용지물이 됐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이 받은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수를 산출한 뒤, 지역구 당선 의석을 빼고 나머지 의석수의 50%를 채워서 비례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당시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을, 민주당은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위성정당을 창당해 소수정당 진입 취지를 무력화했다. 당시 더불어시민당이 17석, 미래한국당 19석, 정의당 5석, 국민의당 3석, 열린민주당이 3석을 가져갔다. 현재 국회에는 ‘위성정당 창당 방지’를 담은 법안이 발의돼 있긴 하지만, 이것만 손대는 것으로는 선거제도 개편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선거구를 키우고 2명 이상을 당선시키는 중대선거구제는 유신 시절인 9대 총선(1973년 2월)에서 처음 도입돼 12대 총선까지 적용됐다. 당시 중대선거구제는 집권당의 안정적인 의석 확보를 위해 도입된 제도로 여겨져 오히려 소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중대선거구제 역시 사표 최소화와 ‘승자 독식’의 양당 구조 완화라는 기대효과만큼이나 단점 또한 명확하다. 우선, 중대선거구제가 제3당, 4당의 원내 진입이라는 결과로 나타날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가령 현재의 경기 성남 수정, 중원, 분당갑, 분당을 등 4개의 지역구를 하나로 합친다고 하면, 김태년(수정)·윤영찬(중원)·김병욱(분당을) 민주당 의원과 안철수(분당갑) 국민의힘 의원 등 유권자가 많은 주요 지역들을 각각 장악하고 있는 양당 의원이 1~4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거대 양당이 한 지역구에 여러명 공천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김찬휘 선거제도개혁연대 공동대표는 15일 “3~6명의 선거구제가 된다고 하면 각 정당에서 최소한 그 숫자만큼, 그 이상의 후보자를 ‘복수 공천’할 것”이라며 “결국 소선거구제를 합치는 효과가 돼서 소선거구제 1위 했던 당사자들이 나눠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대선거구제가 시범 도입된 지난해 6·1 지방선거 결과가 단적인 예다. 5명을 뽑는 충남 논산시 ‘가’ 선거구에 민주당이 5명, 국민의힘 4명, 정의당이 1명을 공천해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이 당선됐다.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지역구 기초의원 정수를 2~4명에서 3~5명으로 확대하고 30개 기초의원 지역구에 이를 시범 적용했지만, 총 109개 의석 중 105석(민주당 55석, 국민의힘 50석)은 거대 양당에 돌아갔다. 소수당이 당선한 곳은 인천 동구 가, 광주 광산구 마(이상 정의당), 광산구 다·라(진보당) 선거구 등 4곳뿐이었다. 다만 제도 도입 초기였고, 소수당도 지역 다지기와 후보군 육성 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뿐 아니라 선거구를 합치게 되면 지역구 활동의 대표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강원도 속초·인제·고성·양양 지역구의 경우 전체 면적 3042.4㎢를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 1명이 대표한다. 면적이 605㎢인 서울의 경우 지역구 의원이 48명이다. 강원도의 경우 지역구를 확대하면 대표성은 더 떨어진다. 또, 예컨대 5~10%의 낮은 득표율로 4~5위로 당선되는 의원의 대표성 문제도 남는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중대선거구제 도입보다는 ‘어떤’ 중대선거구제로 갈지 세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중대선거구제는 호남에서 국민의힘, 영남에선 민주당의 진입 기회가 높아져 결국 거대 정당에 유리한 부분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 적고 땅은 넓은 농촌 지역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땅에 비해 인구는 많은 도시에서는 중대선거구제를 혼용하는 도농복합제도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된다.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 때도 도농복합제를 제시했으나 여야 합의에 이르진 못했다. 농촌 지역은 보수 강세 지역으로 여겨지는 만큼 이 방안은 국민의힘에 유리하다고 봐 민주당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 유권자의 투표가 도시에서는 ‘여러명’ 당선으로, 농촌에서는 ‘한명’ 당선으로 귀결되는 평등성 위배 논란도 있다.
결국 선거제도 개편의 애초 취지를 살리려면 비례대표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 상태에서 ‘보완’하는 게 의미가 있겠냐”며 “비례대표 47석은 너무 적기 때문에 비례대표제를 중심으로 논의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당 지지율을 그대로 의석수에 반영할 수 있게 현재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행 병립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지역구는 지역구대로 의석을 확보하고, 비례대표(47석) 의석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당에 배분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로 그 당의 의석수를 정하고, 지역구 당선 수와 연동해 나머지 비례대표 의원 수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연동형 중에서도 전국을 몇개의 권역으로 나누는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있다. 가령 서울 권역의 전체 의석수를 100명으로 미리 정한다고 치자. ㄱ정당이 정당득표율을 10% 받고 지역구에서 9명 당선됐다고 치면, 이 정당의 서울 권역 의석은 10석(정당득표율 10%)이 되고, 지역구 9석을 뺀 1석을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독일의 경우,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정받은 의석보다 지역구 의석이 많게 나와도 초과의석을 인정해주지만, 한국은 의원 총정원(300명)을 늘리지 않는 선에서 논의가 이뤄져왔다.
이러한 연동형은 지역구에서 정당득표율만큼 의석수를 가져가면 비례대표 의석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기존 밥그릇을 놓치기 싫어하는 거대 양당은 소극적이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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