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검찰의 당사 압수수색에 항의해 보이콧한 가운데 2023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치적 이념 갈등이 심화한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은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협치와 상호 존중을 실천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여겼다. 다만, 선거제도 개편이나 개헌 등 정치제도 개선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렸다.
<한겨레>가 여론조사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2월26~27일 전국 성인 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정치적 이념 갈등 완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대통령과 여당, 야당의 상호 존중과 협치 강화’(41.0%)를 꼽았다.
다음으로는 △강성 지지층 외에 다양한 지지층을 포용하려는 정당의 노력(21.9%) △거대 양당제를 다당제로 바꾸기 위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18.8%) △대통령 중심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개헌(9.9%) 순이었다.
선거제 개편이나 개헌 등 제도 개선보다 기존 틀 안에서 대통령과 여야가 포용과 협치, 상호 존중이라는 운용의 묘를 발휘하는 것이 정치적 갈등을 완화하는 데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협치와 포용이 해법의 우선순위로 꼽힌 것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대치와 대립이 가팔라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선은 네거티브 공방 탓에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란 말이 돌았고, 이런 추세는 윤석열 정부 출범 뒤에도 개선되지 않았다. 지금껏 윤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이의 회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야당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이나 강성 지지층에 기댄 야당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면서 응답자들은 장기적인 정치제도 개선보다는 우선 정치 지도자들의 자제와 품격 있는 태도가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개헌 필요성에 대한 응답은 저조했다. 지난 총선 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음에도 거대 양당의 ‘위성 정당’ 사태로 취지가 왜곡되며 정치제도 개혁에 대한 실망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제도의 문제를 먼저 얘기하려면, 정치 지도자들이 노력했음에도 제도 탓에 가로막히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들이 노력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과 여야 정치 지도자들이 포용력을 발휘해 외연 확장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김태영 글로벌리서치 이사는 “정부 여당은 더 포용적이고 통합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국정 운영 동력을 얻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야당도 강성 팬덤에 의존해 이재명 대표의 법적 리스크 방어에만 주력하면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에도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조사에서 다당제를 위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을 합하면 28.7%에 이른다. 여야 의원 49명이 참여하는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은 여러차례 토론회를 열어 현행 소선거구제 개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여야 원내·외 인사들이 모인 ‘정치개혁2050’ 모임과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이홍구 전 총리 등 원로 정치인과 학자들도 공론화에 나서고 있다. 다음 총선을 위한 선거제도 개정 법정 시한은 오는 4월10일이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는 “정치 개혁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서는 실행이 불가능하다. 국민에게 직접 필요성을 호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개요>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 : 10.2%
표집틀 : 3개 통신사에서 제공된 휴대전화 가상(안심) 번호
조사 방법 : 전화면접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