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7월29일 오전 여당 의원들의 불참 속에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 협상 과정에서 여야가 서로 위원장 자리를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대치했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시작부터 파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소속 상임위원장의 회의 일정 ‘통보’를 문제 삼으며 회의에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다. 과방위에 올라와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망 사용료 관련 법 등 쟁점 법안의 처리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9일 <한겨레>의 취재를 종합하면, 과방위는 7월27일과 29일 두차례 전체회의를 열었다. 첫 회의에선 여야 간사 선임의 건을 처리했고, 두번째 회의에선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소관 부처 업무보고를 받았다.
국민의힘은 두번의 회의에 모두 불참했다. 여당이 내세우는 사유는 민주당 소속 정청래 위원장이 여야 간사 협의로 일정을 정해온 관행을 깨고 일방적으로 회의 날짜를 잡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간사 선임을 위해 잡은 첫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현재 과방위엔 여당 간사가 없는 상태다. 과방위 내 법안 심사를 위한 1소위(과학기술 분야)와 2소위(방송통신 분야), 예산결산심사소위, 청원심사소위 등 4개의 소위원회도 여당 간사가 없어 꾸리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수적으로 불리한 여당이 과방위 회의를 의도적으로 보이콧하는 것이라고 본다. 21대 후반기 과방위원 정수는 총 20명으로 11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국민의힘 소속 위원은 8명에 그친다. 나머지 1명은 박완주 무소속 의원이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상임위 회의를 열 수 있는 의사 정족수(전체 위원의 5분의 1)는 물론 의결 정족수까지 확보한 상황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다가올 방통위 및 <한국방송>(KBS) 국정감사 등 과방위의 쟁점 현안을 두고 민주당과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 국민의힘이 국회 대신 장외에서 ‘공영방송 때리기’를 이어가려고 한다는 게 민주당의 시각이다.
실제로 과방위 두번째 전체회의가 열린 날 같은 시간, 과방위에 속한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박성중 의원 등 여당 의원들은 공정언론국민연대 등 보수 성향 언론단체와 함께 국회 의원회관에서 ‘문재인 정권 공영언론인 블랙리스트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를 열었다. 이어 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윤두현 의원도 8월 첫 주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엠비시(MBC)·케이비에스(KBS) 편파 방송 사례’ 전시회를 개최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엠비시(MBC)·케이비에스(KBS) 편파 방송 사례전’을 열었다. 최성진 기자
국민의힘의 이런 태도와 관련해 정청래 과방위원장은 지난 5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어떤 정치적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위원장과 여야 간사 후보자의 상견례 자리(25일)나 간사 선임을 위한 회의마저 참석하지 않는 여당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특히 두번째 전체회의가 있던 날, 여당 의원들이 그 시간에 국회 다른 장소에서 토론회를 열었던데, 왜 그러는지 의도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과방위는 과거부터 극심한 여야 갈등과 상임위 소속 의원의 낮은 전문성 등으로 법안 처리 실적이 낮은 상임위 가운데 한 곳이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살피면, 과방위는 이제 막 후반기에 접어든 21대 국회에서 모두 189건의 법안을 처리했다(2022년 8월9일 기준). 전체 18개 상임위 중 과방위보다 법안 처리 실적이 떨어지는 상임위는 국회운영위원회(운영위), 외교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정보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등이다. 이 중 운영위 등 겸임 상임위 3곳과 상설 특위인 예결위를 뺀 나머지 14개 일반(전임) 상임위 중에선 과방위가 거의 최하위권이다. 미처리(계류) 법안도 453건이나 된다. ‘상임위 성적’을 법안 처리율로 매겨도 과방위가 최하위권이라는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여당의 잇따른 불참 탓에 ‘반쪽 상임위’로 출발한 이번 21대 후반기 국회에서도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방위의 파행적 운영이 거듭된다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나 방통위가 과방위에 제출한 협찬 고지 의무화 등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 논의 및 처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관련해선 여야 의원 모두 여러 건의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통신업계에서 줄곧 요구해온 ‘망 사용료’ 관련, 전기통신사업법 처리는 더 시급하다. 에스케이(SK)브로드밴드와 세계 최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두고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전혜숙 민주당 의원과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등 여야 의원이 모두 6건의 법안을 과방위에 발의했다.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인 취지는 넷플릭스와 구글 등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한테 국내 망 사용에 관한 대가를 제대로 내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과방위 논의를 기다리는 통신 관련 주요 법안으론 구글의 인앱결제 규제를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도 있다.
후반기 첫 1년간 과방위원장 자리를 맡게 된 정청래 위원장은 “여당이 뚜렷한 이유도, 명분도 없이 앞으로도 계속 회의를 보이콧한다면 결코 끌려다니지 않을 것”이라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 등은 반드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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