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의 신임장을 받기 위해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내가 <한겨레>에다가 하소연할 줄은 몰랐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지자 여권의 난맥상에 답답함을 토로하던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의 얘기다. “(여권의 수뇌부가) 우리 얘기는 안 듣는 거 같다”, “<한겨레>가 제대로 더 지적을 좀 해달라”는 주문도 이어진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런 하소연은 ‘쓴소리’를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내부 분위기의 반영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이 본인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이준석 대표를 향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비방한 사실이 알려지고, 실제 징계로 이어지면서 ‘대통령한테 찍히면 끝장’이라는 공포는 더욱 커졌다. 한 중진 의원은 “얘기를 하면 경청하고 ‘그럴 수 있구나’ 이런 분위기가 돼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반발로 비치니 얘기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권성동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김웅 의원을 제외한 89명이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에 동의했다고 밝혔지만, 이준석 대표와 가까운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침묵이 찬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반박했다. ‘다른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 탓에 의총에 참석하지 않은 의원도 적지 않았다.
위기를 자초하고 홀연히 휴가를 떠난 윤 대통령을 향한 불만도 다음과 같이 폭발 직전이다. 윤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을 만나지 않고 전화통화로 갈음한 건 중국을 의식한 절충적 제스처이기도 하지만, 여당 안에서는 한·미 동맹을 무시했다는 불만도 팽배한 상황이다.
“지지율이 20%대로 폭락한 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이 겸손하지 않은 데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구설’을 만들어서 일을 보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휴가를 가냐. 민생이 난리고, 코로나 확진자가 이렇게 증가하는데…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금까지 임명하지 않은 건 직무 태만이다. 대통령은 2년 뒤 총선, 5년 뒤 대선에서 평가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래선 안 된다. 국정평가는 하루하루 쌓이는 거고, 그걸 무시해선 안 된다.”(국민의힘 중진 의원)
“지금 완전 개판이다. 경제가 ‘퍼펙트 스톰’이고,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방한했는데 대통령은 휴가를 갔다. 동네 구멍가게 사장도 휴가갔다고 이렇게 안 한다. 지금 대통령실과 여당에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가 있냐. 미국 현직 하원의장이 25년 만에 대만을 방문했는데 우리는 휴가 갔다고 대통령이 만나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왜 한미 동맹을 그렇게 외쳤나. 대통령실은 한 번 쓴 사람 계속 쓴다는 영웅의식에 빠져 있지 말고, 제대로 된 군기반장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지율 10%도 곧 온다.”(국민의힘 당직자)
윤석열 대통령은 휴가 중인 3일 대학로를 찾아 연극을 관람했다. 대통령실 제공.
하지만 대통령실은 여론을 읽지 못하고 여전히 민심과 동떨어진 소리를 하고 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이날 <와이티엔> 라디오 인터뷰에서 야당의 이상민(행정안전부), 박순애(교육부) 장관 교체 주장에 대해 “그분들이, 야당이 싫어하는 개혁과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냐”고 말했다.
김건희 여사와 인연이 있는 건설업체가 한남동 대통령 관저 공사에 참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관저나 지난번에 나왔던 사적 채용 등은 대통령실의 특수성, 보안, 국정철학 등 이런 부분과 함께 맞물려 가는 것이기 때문에 한 측면만 보고 ‘사적인 인연 때문’이라고 보는 건 일방적 프레임 공격”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아전인수식 해석’에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윤 대통령이 강조해 온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의 잣대가 본인에게는 관대하다. 검찰 내부에선 ‘엄격한 칼잡이’였지만 지금은 법과 원칙을 본인에게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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