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오른쪽) 국민의힘 신임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예방해 손을 맞잡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4·7 보궐선거에서 성공적인 후보 단일화로 전국선거 4연패 고리를 끊고 서울시장 직을 탈환한 야권은 내년 정권 탈환을 꿈꾸며 한껏 고무된 모습입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다 돼가는데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될 듯 말듯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철수 “지금이라도 국민의힘과 통합 응할 수 있지만…“
김기현 국민의힘 신임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4일 국회에서 김 권한대행 취임 뒤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지난달 29일 전임 주호영 국민의힘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 앞에서 “통상의 합당 같으면 어제쯤(28일) (국민의당과) 합당 선언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전하면서 두 당의 합당이 임박했다는 해석도 나왔는데요. 이날 회동 뒤 두 당은 합당과 관련해,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후 본격적인 논의에 돌입하기로 정리했습니다. 김 권한대행은 이날 안 대표에게 “(통합에 대한) 전당대회 출마하신 분들의 의견이 다르다. 그것이 정리되고 나서 통합이 가시화되지 않겠냐”고 했고, 안 대표는 “국민의당은 지금이라도 통합에 응할 수 있지만 국민의힘이 전당대회를 앞둔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지만, 구체적 합당 시점은 정하지 않았습니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오늘 말씀을 나누신 거로만 보면 전당대회 전에 관련 움직임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일정은 이르면 6월 초로 예상됩니다. 두 당이 합당 관련 논의를 두고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김 권한대행은 지난달 30일 당선 뒤 “합당을 위한 합당을 해선 안 된다”며 당 체제 정비를 1순위에 올려놨는데요. 당 대표 권한대행으로서 여당과의 협상, 당 인사권 행사, 호남 지역 챙기기 등 각종 현안을 챙기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무리하게 합당 논의를 진행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 고려된 듯합니다. 전당대회 뒤로 논의가 넘어가게 되면서 새롭게 선출된 국민의힘 대표가 안 대표와 합당 관련 논의를 이어갈 카운터파트가 될 전망인데요. 불확실성이 한층 커진 모양새입니다. 양쪽 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합당 논의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조금씩 커집니다.
안 “내년 3월 전 통합” 농담? “야권 단일후보만 선출하면 돼”
처음 ‘합당의 싹’을 틔운 건 안 대표였습니다. 그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합당 추진” 의사를 밝혔습니다. 보수 진영 지지층을 아우르고, 야권 통합의 진정성을 보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는데요. 그랬던 그가 최근 ‘느긋한 속내’를 드러내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생각해놓은 대통합 시점이 언제인가’란 질문을 받고 “(내년) 3월 전에”라고 했습니다. ‘통합 시점과 대선이 너무 가깝지 않나’라고 다시 묻자 “그러니까 그것도 의논을 해야 한다. 그냥 단순히 합치는 게 아니라 그 효과를 극대화 하는 것도 필요해서 그러면 제일 좋은 시기가 언제일까에 대해선 서로 의논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안 대표는 이 발언이 ‘통합 시점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는 취지로 읽히자 지난 3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는 “(인터뷰 당시) 내년 3월 대선 전에는 (통합이) 되지 않겠냐고 농담 식으로 말을 한 것이다. 대선 직전에 한다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말을 주워담았습니다. “가급적이면 어느 정도 빨리 통합하고 불확실성을 줄이고 통합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지지층의 확장과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나절 뒤인 3일 오후, 안 대표는 ‘한국정치평론학회 2021 공론포럼’에 토론자로 나서서 “결과적으로 다음 대선 때 야권 단일후보만 선출되면 된다는 생각”이라며 “합당보단 통합이라는 표현을 썼던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합당이 아닌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정도의 통합이라면 후보 등록 이전(2022년 2월14일)에만 하면 됩니다. ‘통합을 내년 3월 전에만 하면 된다’는 <한겨레> 인터뷰 발언을 농담으로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문지기라도 하겠다” “페이스메이커라도 하겠다”며 ‘대선 역할론’을 스스로 띄우고 있는 안 대표의 합당 또는 통합에 대한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요. 야권 일각에서는 의원수 101명(국민의힘) 대 3명(국민의당)이 합쳐지는 모습보단, 안 대표가 ‘야권 대통합’이란 깃발을 들고 당 안팎의 대선주자급과 함께 움직이며 몸값을 올리려 한다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안철수 대표가 대선에 나갈 거면 굳이 (통합야당의) 공동대표 같은 걸로 힘을 뺄 필요가 있겠냐”며 “안 대표가 국민의힘 전당대회 전에 들어오면 당 대표, 전대 후에 들어오면 대선을 노리는 그림”이라고 짚었습니다. 이 분석을 따르면,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후에 합당을 논의하겠다는 안 대표는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안 대표 통합 전략의 또 다른 변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입니다. 퇴임 뒤 두 달째 ‘묵언 수행’ 중인 그가 국민의힘 입당 대신 제3지대 세력규합을 꾀한다면 안 대표의 ‘야권 대통합’ 시나리오 또한 수정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때문일까요. 안 대표는 최근엔 ‘합당’ 대신 ‘통합’이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합당과 통합 사이.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가 느껴지는 건 저뿐일까요. 안 대표의 진심은 무엇인지 정말 알고 싶습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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