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8일 국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국회 본청 225호. 국민의당 대표실에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새겨진 펼침막이 20여일째 걸려 있다. 지난 4·7 재보궐 선거 야권 승리 주역으로 꼽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선거 다음 날인 지난 8일부터 초라한 집 한 채와 고목 몇 그루가 그려진 세한도를 배경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세한도 그림 밑에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라는 문구도 적혀있다.
지난 28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안 대표는 자연스레 세한도 펼침막 앞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원칙을 지키면 손해가 나고 더 어려워질 때, 그래도 그 원칙을 지키면 그때야말로 원칙이라는 게 진정성을 가지게 되지 않나요. 그 순간 손해가 날지 몰라도 두고두고 힘을 가지게 되는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국민의힘과 합당 의사를 밝힌 안 대표는 지난주까지 전국을 돌며 당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28일 저녁에는 주호영 국민의힘 당 대표 권한대행과 만나 합당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안 대표는 “변화와 혁신이 없는 무조건적인 정권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필요한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 문지기라도 하겠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혁신 없는 정권교체는 권력 주고받기…그래서 원칙 강조”
–4·7 보궐선거 평가를 한다면.
“야권이 이겨야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그나마 확보할 수 있다, 누가 후보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야권이 승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나름대로 목표 달성을 했다.”
–서울 연립시정은 계획대로 잘 돼가고 있는 건가.
“정책에 대한 자문이나 요청이 오면 거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다. 예컨대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제가 틈틈이 알려주고 있다. 저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 ‘시민들이 원하는 일’을 제안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의힘과 ‘원칙 있는 통합’을 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첫째, 통합을 추진하는 이유 자체가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야권 지지층을 넓히는 게 목적이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저희가 걸어왔던 길, 합리적인 개혁을 하는 중도 실용정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셋째는 개혁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개혁해야 하는 열쇳말은 ‘유능·도덕·공정·국민통합·청년을 위한 미래’다. 이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국민의힘과 이런 ‘원칙 있는 통합’이 가능할까.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성이다. 국민들은 막혀있던, 필요한 개혁을 이루라고 더불어민주당에 180석 표심을 모아주신 것이다. 그런데 검찰개혁 하나 이뤄지고, 그 방향에 대해서도 찬반이 나뉜다. 그것 말고도 해야 할 개혁이 많다. 정권이 교체돼야 이런 개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정권 교체하는 세력이 이런 개혁을 못 한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기득권 세력 간의 권력 주고받기처럼 보일 것이다. 반드시 말씀드린 원칙 아래에서 야권이 바뀌어야 하고, 바뀐 야권이 집권해야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다는 생각이다. 변화 없는, 혁신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정권교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8일 국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8년 반 정치…어떻게 하면 개혁할 수 있을지 이제 알 것 같다”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대선 출마 가능성도 열어놓는 건가.
“필요한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 문지기라도 하겠다는 그런 생각이다. 뒷짐 지고 아무 일 안 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 아닌가.”
–당원과 대표와 대선주자의 역할이 다를 것 같다.
“어떤 직보다 업이 중요하다. 어떤 위치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서울시장 선거처럼 범야권 대통합, 그리고 혁신이 가능한 통합 플랫폼을 만드는 게 제 목표다. 저에게 현안은 그것일 뿐 대선이나 전당대회가 아니다.”
–10년간 달고 있던 ‘새정치’ 간판은 어떻게 되는가.
“정치를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낸 것이 있었다. 국민이 정치에 실망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봤다. 첫째는 부정부패. 둘째는 패거리 정치. 셋째는 군림하는 정치. 그것을 낡은 정치라고 보고 바꾸겠다고 한 것이 ‘새정치’다. 나는 부정부패가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 봉사하는 정치, 패거리 정치가 아니라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꾸는 정치, 왕처럼 군림하는 정치가 아니라 수레 뒤에서 미는 역할을 하는 정치. 그 세 가지를 계속하겠다는 생각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생각하는 개혁을 여러 가지 방해를 뚫고 관철할 수 있을지 이제 알 것 같다. 부침이 많았지만 아무것도 없이 창당해 교섭단체까지 만든 사람은 3김과 저, 고 정주영 회장 이렇게 뿐이다. 제3지대에서 이렇게 오래 살아남은 것 자체가 경쟁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8년 반 동안 모든 전국선거를 당 대표 자격으로 다 지휘해봤다. 대선 출마부터 지방선거 출마, 국회의원 출마도 해봤다. 살아남았다. 중도개혁·실용정치의 노선, 제대로 된 대중정당이 되려면 중도까지 스펙트럼 넓어야 집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1년 반 정도 민주당에 몸을 담았을 때도 민주당을 이런 세가지 정치를 하는 정당으로 만들려고 했다. 제 역량이 부족해서 나왔다. 지금도 똑같은 마음이다. 바꾸지 못하면 더 정치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까지 모두 아우르는 야권 대통합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나.
“보궐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에서도 국민의힘-국민의당-윤석열 ‘트로이카’가 모여 범야권 대통합이 돼야 한다. 가장 느슨한 통합의 형태가 서울시장 선거의 후보 단일화였다면, 가장 강한 형태의 통합은 정당을 하나로 만드는 것 아니겠나. 그 사이에 여러 다른 형태가 있을 수 있고 윤 전 총장님은 아직 변수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최소한 후보 단일화는 돼서 대선은 야권 단일후보로 나가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다.”
–보궐선거 승리 뒤 국민의힘에서 ‘탄핵 불복’ 등 구태가 재현되고 있다.
“선거결과에 대한 성찰이 먼저 있어야 했다. 승리 요인을 따져보는 제대로 된 토론회나 평가회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2030, 무당층, 중도층이 야권에 손을 들어 준 결과인데 그걸 잘못 해석해 ‘20대 30대가 보수화됐다’고 하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었다. 이분들은 보수화된 게 아니고 실용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지금 현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민주당에 실망하고, 공정하지 못한 행태를 보면서 실컷 화풀이한 거다. 그다음 시선은 어디로 가느냐. ‘내가 표를 주긴 했지만, 야권에 같은 기준을 대보면 어떤가’이다. 이제 다른 면을 안 보여주면, 개혁하지 않으면, 대선에선 질 것이다. 성찰이 필요한데 왜 국민의힘은 그걸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승리 요인을 짚어보고 객관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가지고 대선에 임해야 한다.”
–젊은층·무당층·중도층의 지지를 받는 안 대표 본인이 등판해야 한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제가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그분들이 원하는 정치를 하는 정당이 되면 되는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8일 국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종인과도 대통합? 생각 같은 사람 세상에 하나도 없어”
–‘킹메이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도 ‘대통합’할 수 있나.
“생각이 같은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그중에 어떻게 무리를 짓는가. 다 달라도 하나만 같으면 우리 무리라고,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래야 커지고 중도까지 확장하고 정권을 잡을 수권정당이 될 수 있다. 하나가 다르다고 적으로 돌리면 자꾸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금태섭 전 의원 같은 경우에도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포괄할 수 있으면 그게 훨씬 더 바람직하다. 세력 대 세력이 합치는 것뿐만 아니라 개혁과 변화를 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훨씬 더 확장될 수 있고 정권교체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김 전 위원장은 최근 안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가 서울시장 선거 후보 단일화를 앞두고 ‘작당했다’는 발언도 했다.
“전혀 그런 적 없다. 주 원내대표와 (후보 단일화를 앞두고) 어떤 서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교감한 적도 없다. ‘정치권에서는 전해 들은 말은 절대 믿지 말고, 직접 들은 말도 반만 믿으라’는 말이 있다. 지나고 보니 사실이더라. 여의도 정치권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 눈앞에 상대만 보는 것이다. 그런데 심판은 따로 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싸우는지 모습을 보면서 국민은 다 판단을 하신다. 판단은 정치인들의 몫이 아니라 국민 몫이라는 생각 때문에 별로 거기에 대해서 대응하지 않았다.”
–생각해놓은 대통합 시점이 있나. 내년 대선이 3월인데.
“그러니까 3월 전에.”
–통합 시점과 대선이 너무 가깝지 않나.
“그러니까 그것도 의논을 해야 한다. 그냥 단순히 합치는 게 아니라 그 효과를 극대화 하는 것도 필요해서 그러면 제일 좋은 시기가 언제일까에 대해선 서로 의논해야 한다.
-‘시기를 서로 의논한다’는 것은 국민의힘과 합당, 그리고 윤석열 전 총장까지 뭉치는 것을 포함하는 건가.
“그렇다. 전반적으로 다 의견을 나눠야지 저만 혼자 생각하면 안 되는 것 아니겠나.”
김미나 장나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