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국민의힘에선 “이러다 부산도 디비진다(뒤집힌다)”는 얘기가 자주 들립니다. 당연히 이길 것으로 생각했던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신공항 변수’ 등이 불거지며 국민의힘에 불리한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래도 부산인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부산 민심이 정말 뒤집히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엄살 전략’일까요?
민주당이 역전한 권역 지지율, 믿어도 좋을까?
최근 위기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21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발표 직후였습니다. 부산·울산·경남(PK·부·울·경)에서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이 큰 폭(10.2%포인트)으로 하락해 29.9%에 그치면서, 8.4%포인트가 오른 더불어민주당(34.5%)에 역전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입니다. 25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부·울·경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28.7%로, 민주당(31.3%)보다 낮게 나타났습니다(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전문가들은 일부 조사만 보고 ‘부산이 역전됐다’고 단순하게 해석해선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실제 한국갤럽이 지난 22일 발표한 조사에서는 부·울·경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36%로, 민주당(22%)보다 앞섰습니다. 조사 대상이 부산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울산·경남까지 포함된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21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의 경우 전체 응답자 1510명 가운데 부·울·경 지역 응답자는 191명(12.6%)에 불과했습니다. 전체로 보면 표본오차가 ±2.5%포인트지만, 부·울·경만 봤을 때는 표본오차가 ±7.1%포인트까지 오릅니다. 선거가 치러지는 부산으로만 표본을 좁히면 오차는 더 커집니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부·울·경 조사에서 부산 응답자의 비율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며 “부산 90명 중 9명만 돌아서도 10% 지지가 빠진 것으로 나오니, 섣불리 ‘민주당이 앞선다’고 표현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민의힘도 이런 여론조사의 ‘함정’을 인정합니다. 그런데도 “바닥 여론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며 경각심을 풀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과도한 네거티브 공방과 가덕도신공항을 둘러싼 당내 불협화음이 겹치면서 표심의 유동성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부산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워낙 커서 아직은 판세가 뒤집힐 만한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문제는 우리 지지자들 사이에서 ‘다 이긴 선거라고 너희들끼리 싸우느냐. 오만해 보인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의힘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당내 양강’인 박형준 동아대 교수와 이언주 전 의원 사이에서 사생활과 관련한 공방이 난타전 수준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수영 의원은 27일 페이스북에 “부산시장 선거에서 여론조사 1위 후보와 2위 후보 간 싸움이 도를 넘고 있다. 이도 저도 안 하고 수수방관만 하다가 선거 결과를 망칠 수도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국민의힘이 주춤하는 사이 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 카드로 대대적 반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부산을 찾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가덕도 특별법 통과’를 약속하며 지역 민심을 공략했습니다.
문제는 가덕도 신공항 문제를 두고 국민의힘 지도부와 부산지역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 시각차가 뚜렷하다는 점입니다. 부산 의원들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관철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도 라디오에서 “중요 국책사업을 예비 타당성 조사도 없이 개별법으로 만드는 것은 악선례가 될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국민의힘 대구시당위원장인 곽상도 의원은 ‘가덕 특별법’에 맞서 ‘밀양신공항 특별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부산지역 국회의원들과 각 후보 캠프는 다음 달 1일 부산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여는 김종인 위원장의 메시지에 기대를 거는 눈치입니다. 김 위원장도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비대위를 하는 과정에 가덕도 문제를 포함해 부산 경제 활성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부산 경제 활성화 방안’ 보고를 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지역에서는 부산까지 찾아온 김 위원장이 신공항에 대해 부정적 메시지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신공항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 같지는 않다는 우려 또한 적지 않습니다.
부산이 지역구인 장제원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신공항 하나 한다고 부산경제 달라지지 않는다’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이 부산을 방문해 말실수를 계속한다면, 가뜩이나 반 김종인 정서가 팽배해져 있는 상황에서 마이너스가 될 뿐”이라고 했습니다. 자존심 센 김종인 위원장이 과연 부산 의원들이 원하는 선물 보따리를 준비해갈 것인지, 저 역시 궁금합니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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