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으로 몸집을 불렸던 야권에서 반년 만에 또 한번 ‘야권 재편론’이 불거졌습니다. 이번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입을 통해 시작됐는데요. 안 대표가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승리를 위해 ‘야권 연대’가 필요하다며 신당 창당에 버금가는 ‘혁신 플랫폼’을 띄울 것을 주장하자, 곧바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선을 긋고 나서면서 두 사람의 ‘밀고 당기기’가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9일 두 당의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야권 재편론’은 가장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안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한민국 변화와 혁신의 비전을 생산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개혁연대, 미래연대, 국민연대가 필요하다”며 “야권 혁신 플랫폼은 이대로는 야권과 대한민국의 장래가 없다는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선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어느 한 정치인(안철수)이 밖에서 무슨 소릴 한다고 휩쓸릴 정당이 아니다. 일부 의원이 동조하느냐에는 관심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성일종 비대위원도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국민의힘에) 들어와서 재편하고 키워나가는 모습이 옳다”고 했습니다.
안 대표가 ‘미니 대선급’ 보궐선거를 5개월 앞두고 ‘판 흔들기’로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데엔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상 ‘안철수 대표’의 1인 정당 체제인 국민의당에선 국민의힘과 ‘정책연대’ 단계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며, 결과적으로 대선 전 야권 전체가 뭉치는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안 대표로선 이번 기회에 야권 재편의 주도권을 잡아 소수정당(3석)의 한계를 극복하고, 멀리는 2022년 대통령선거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품을 법합니다.
안 대표가 ‘신당창당’ 메시지를 낸 것은 최근 국민의힘 내부에서 ‘김종인 비대위’에 대한 비토 의견이 표출된 것과 무관치 않은 듯합니다. 장제원 의원은 9일 페이스북에 “안 대표가 주장한 야권 재편론은 (우리가) 서둘러서 해야 할 일”이라며 “당 지지율이 20%대에 고착화되어 버렸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지적한 것이 ‘김 위원장의 쇄당(쇄국정책에서 차용)정치’입니다. 그는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자, 부질없는 자존심일 뿐”이라며 “야권 전체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오로지 혁신과 통합의 길로 나가야 할 때”라고 적었습니다. 한 영남권 중진 의원도 <한겨레>에 “합당까진 아니어도 선거연대가 필요하다는 데는 내부에 다른 입장이 없을 것”이라며 “선거연대를 위한 혁신 플랫폼은 고려해봐야 한다”고 안 대표 입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0월1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에게 항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이날 국민의힘 경선준비위원회는 예비 경선에선 여론조사 100%, 본경선에서 여론조사 80%와 선거인단 20% 비율로 최종 후보를 결정하는 공천 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당내 인사보다는 외부 인사 혹은 정치 신인들에게 문호를 열어 국민의힘 경선 무대로 끌어오려는 뜻이 읽힙니다.
외곽에서 불거진 ‘야권 재편론’은 ‘나 홀로 리더십’을 내세운 김종인 위원장과의 팽팽한 긴장 관계 속에서 사그라들까요, 아니면 반작용으로 분출될까요? 현재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는 나경원·오세훈·이혜훈·윤희숙·조은희 등 당내 인사들과 당 밖 잠재적 후보들이 유권자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갈까가 관건입니다.
김미나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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