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선거제도 개혁 공청회에 참석한 진술인들이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심상정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14일 전문가들과 함께 선거제도 개편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각 정당에서 각각 추천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자유한국당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바른미래당이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심상정 위원장이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를 각각 추천했습니다. 김종갑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특정 정당과 관련없이 정개특위에서 참석을 요청했습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는데요. 그중에서도 △‘국회의원 정수 확대’ 필요성 강조 △한국당의 ‘중대선거구제’ 고민 △민주당의 선거제도 ‘실익’ 따지기 등 세 가지 장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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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정수 확대’ 논의 활발
정치권 안팎에서 의원정수 확대는 두 가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민심 그대로’를 반영하는 선거제도로 평가받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려야 하고 그러려면 의원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1명이 국민 17만명을 대표하고 있는데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9만7천명에 견줘 대표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과 별개로 의원정수 자체를 늘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강원택 교수는 초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국회의원 1명이 대표하는 인구수를 계산한 표를 제시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총 인구 1919만명·국회의원수 200명’이었던 제헌국회(1948년) 때는 국회의원 1명이 인구 9만5천명을 대표했지만, ‘인구 5100만명·국회의원수 300명’인 현 20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1명이 인구 17만명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제헌국회보다 1.8배나 많은 수치입니다. 만약 제헌국회 당시 의원 1명이 대표했던 국민 규모(9만5천명) 수준을 맞춘다면 현재의 국회의원 정수가 538명이 돼야하고, 독재정권 시절인 유신(1973년)과 5공화국(1981년) 당시 의원 1명이 국민을 대표했던 규모를 기준으로 해도 각각 359명, 378명으로 늘어나야 합니다. 민주화운동(1987년) 시기를 기준으로 삼아도 372명이 돼야하는 상황입니다.
박상훈 학교장도 “비례대표가 전체의석의 3분의 1은 돼야하고, 의원정수는 360명은 돼야한다”며 의원정수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에 그동안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이었던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처음으로 의원정수 확대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인 김종민 의원은 “지역구 (의석수)를 (현행대로) 놔두고 전체 의석수를 360석으로 확대해서 비례제를 확대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게 플랜A”라고 말했습니다. 기존에 민주당 의원들이 의원정수 확대에 대해 아무 의견을 제시하지 않던 상황에서 한걸음 나간 발언을 한 것입니다.
그동안 국회에 대한 불신이 깊은 국민들 사이에서 의원정수 확대 반대 여론이 강했지만 이런 분위기에도 다소 변화가 감지된다는 발언도 나왔습니다. 강원택 교수의 말입니다.
“4~5년 전만해도 비례대표 의원수를 증가시키지 않고서는 선거제도를 바꿀 수 없다고 말하면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두드려 맞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공감하는 분들이 느는 등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의원정수를 200명으로 축소하는 법안을 지난해 발의한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도 의원정수 확대 주장에 대놓고 반대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4년 전 (19대 국회에서) 정개특위를 했을 때는 기본적인 주류가 국회의원 수를 줄이라는 말이었는데 오늘은 또 늘려야한다고 말씀들을 하시니까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하는지 저 자신도 헷갈립니다.”
■한국당의 ‘중대선거구제’ 고민…‘중대선거구제 폐해’에 대한 구체적인 지적도
그간 자유한국당은 중대선거구제나 도농복합선거구제(도시는 중대선거구제+농촌은 소선거구제)를 비교적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한국당 의원 일부가 최근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이날 공청회에서 한국당은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관련해 당론이 아닌 의원의 개인의견이란 점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한국당이 이 제도에 대해 소신을 갖고 발표할 전문가를 찾지 못해 이날 공청회를 위해 정개특위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에게 관련 내용을 ‘주문생산’하기도 했습니다.
정개특위 한국당 간사인 정유섭 의원은 “김종민 의원이 자유한국당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얘기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김학용 의원 개인 의견이다. 자유한국당 당론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 ‘중선거구제가 연동형 비례제 도입시 초과의석 발생을 억제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내용의 발제를 한 김종갑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과 관련해, 심상정 위원장은 “중선거구제가 김종갑 입법조사관의 소신인 것은 아니다. 중선거구제에 대한 소신을 가진 전문가를 찾기가 어려워서 그동안 연구한 바를 말해달라고 저희가 특별히 요청했다”며 “그의 발언은 ‘주문생산’된 것”이라고 이날 공청회에서 세 차례나 거듭 밝혔습니다. 김 입법조사관 스스로도 최교일 한국당 의원의 “중선거구제를 적용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관심이 있는 거냐”는 질의에 “제가 그걸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모델도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결국 이날 공청회에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야한다는 입장을 가진 이들은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다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강원택 교수는 아래와 같이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중대선거구제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일본에서 오랫동안 중대선거구제를 시행했지만 돈선거, 파벌정치, 정치부패 등으로 이어져 중대선거구제를 폐기했다.
△특히 2인선거구(한 지역구에서 2명 선출)는 거대 양당에만 유리한 제도다.
△5인 선거구(한 지역구에서 5명 선출)의 경우 예를 들어 3명은 40%, 30%, 20%로 당선되지만 나머지 2명은 4%, 3%로도 당선될 수 있어, 이 2명에 대해선 대표성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중대선거구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김종갑 입법조사관도 강 교수의 지적에 대해 “후보간 경쟁과열, 낮은 득표로도 당선 가능 등의 부작용이 있다”고 동의했습니다. 다만, 김 입법조사관은 “그런 점만 보면 도입이 어렵겠지만 연동형 비례제와 결합했을 때 초과의석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며 중선거구제의 장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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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비례제, 누구한테 유리한 제도인가’…?민주당, ‘실익’ 따지기
민주당은 지난 18대·19대 대통령선거와 20대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했음에도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압승하고, 현재 높은 정당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봐도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의원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민주당 의원들의 고민스러운 한 단면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질의응답이 이날 나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동민 의원은 강원택 교수와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 받았습니다.
△기동민 의원
“노골적으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정치는 최선의 정책을 선택해야하지만, 제도를 조합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임을 인정하기도 해야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려서 그렇습니다만, 내놓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그런 현실 무시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대적 흐름이고 가장 민심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받아야하는 거 아니냐’고 합니다. 도덕적으로, 시대적으로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뤄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고 받을게 있어야 되는거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을 때 가장 유리한 정치지형을 확보할 수 있는 정당이 있을 텐데요. 현실에서 거기가 어디죠?”
△강원택 교수
“그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기동민 의원
“그리고 현실속에서 ‘이 제도가 채택되면 뭔가 정치적으로 손해보는거 아니야?’ 모든 정치집단이 이런 계산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현실을 조합해야되는 겁니다. 무조건 ‘흐름이 이렇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까지 제도가 불완전하고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비례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가야한다’는 것으로는 정치권을 설득할 수 없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현실정치를 많이 아시고, 학문적으로도 많이 연구하셨으니까 그 적정한 조합이 뭘까요, 현실적으로.”
△강원택 교수
“그건 제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고요. 민주당이 생각하는 여러 가지 협상의 내용들이 있을 것이고, 그게 전제가 돼서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질 거라고 봅니다. 여기 있는 의원님들이 지혜를 발휘해서 하면 될 거라고 봅니다.”
기동민 의원이 정당별로, 또 의원별(도시 지역구 의원, 농촌 지역구 의원, 비례대표 등)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선거제도 개편 문제는 단지 ‘옳은 방향’이라는 ‘당위’로 될 게 아니라 ‘손익’의 관점에서 봐야하는 문제라는 냉엄한 ‘현실론’을 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선거제도 전문가에게 다양한 이해관계 충돌의 현실 속에서 타협가능한 접점을 물은 것이고, 강원택 교수는 ‘그 해답은 정치권이 찾아야한다’고 답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지난 7일 심상정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선거제도 개혁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말한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심 위원장은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이 가능성은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동시 결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답했는데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현 상황에서 정개특위의 남은 활동기간 동안 이 ‘가능성의 예술’이 어떻게 펼쳐질지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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