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밤 10시부터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정치인의 선택은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소속 정당을 위해서, 지역민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등을 이유로 내걸어 행동하고, 법을 발의합니다. 이유들이 하나로 일치되면 좋겠지만, 배치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노사 간은 물론 여야 간에도 치열하게 의견을 달리하던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대한 국회 합의안이 지난 25일 나왔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는 24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30분까지 회의를 진행해 합의를 이뤘습니다. 합의한 최저임금법 일부 개정안에는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 수당 일부를 포함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지난해 두자릿수로 오른 최저임금에 대한 기업이나 소상공인 부담을 완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이를 두고 노동계는 ‘개악’이라며 반발했고, 경제계는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다행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간 득실은 어떨까요?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대한 논의는 애초 지난해부터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자 국회로 넘어왔습니다. 지난 25일 환노위가 열리기 전까지 환노위 고용노동소위원회는 수차례 공청회와 회의를 열어 여러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의견을 듣고 국회의원들 간에도 의견을 나눴습니다. 경영자총협회(경총),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는 물론 민주노총, 한국노총 관계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많은 의견 청취에도 하나의 입장을 정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만큼 최저임금 산입범위 변경으로 영향을 받는 노동자와 기업, 소상공인 등이 많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당은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상여금을 받는 경우가 적고 대신 교통비·숙박비 등 수당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산입범위에 상여금만 포함시키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반면 야당은 소상공인은 물론 기업들의 부담을 내세워 상여금과 교통비·숙박비 등을 모두 산입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은 다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최저임금위원회는 조만간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6월28일까지 결론을 내 고용노동부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론내리지 못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정해야 올해 정할 최저임금 인상률에 따른 임금 변화가 명확해지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로드맵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으로서는 최저임금법을 고쳐 산입범위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반면 야당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이었습니다.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못해도 그 책임론이 여당에 향할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입니다.
여야와 경제단체 관계자들의 말은 이런 상황을 잘 반영합니다.
“우리는 당론을 확실하게 정하지는 못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을 포함시키는 것은 대부분 동의하지만 숙박비는 이견이 있다. 일부 의원들이 숙박비 포함에 반대하지만 당론으로 안 된다고 정하지는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언급한 뒤 우리가 좀 다급해진 측면도 있다.”(여당 관계자)
“야당으로서는 손해를 볼 것이 없다. 여당이 당론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정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협상에 응하겠다는 의미 아닐까?”(야당 관계자)
“야당 의원을 방문했는데 ‘여당에서 숙박비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키지 못하면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야당 입장에서는 급할 것이 없어 보였다. 숙박비를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하면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 때문에 소상공인·자영업자 부담이 늘었다고 비판하면 되고, 나중에도 산입범위를 확대하지 않아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라는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보였다.”(경제단체 관계자)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거센 반발에도 여야 간 합의를 타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정미 정의당 의원뿐만 아니라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여야 합의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합의를 이루지 못해 국회로 넘겼지만, 다시 민주노총·한국노총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해보겠다며 합의를 미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합의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번 합의를 바라보는 여야의 속내는 다음날 논평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달성하여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현실화하고, 소득주도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마중물이 될 ‘최저임금 산입범위’도 결정하였다. 28일, 5월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생입법들을 본회의에서 처리해 국민이 바라고 여야가 합의한 국회정상화를 완성하는 데 앞장설 것이다. 야당 역시 국민을 위한 국회를 만드는 데 함께하기 바란다.”(더불어민주당 5월25일)
“이번 합의를 통해 저임금 근로자는 보호하면서도 중소사업장 및 소상공인의 숨통을 트여줄 수 있게 되었다. (중략) 이제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의 실패와 경제파탄 책임을 인정하고, 내년도 최저임금 산정에서 현실적인 속도조절을 보여줘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산입범위 조정을 악용해 또다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빌미나 발판으로 삼으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경고한다.”(자유한국당 5월25일)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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