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3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The buck stops here!’라는 글을 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직권 출당 조처에 대해 서청원·최경환 의원이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며 비난하자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며 맞받은 것이다.
“대통령이라면 결정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릴(pass the buck) 수 없습니다. 누구도 대통령을 대신해 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대통령의 일입니다.”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1953년 1월 퇴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The buck stops here’라는 말은 ‘책임을 전가하다’라는 뜻인 ‘pass the buck’라는 속어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한다. 미 개척시대 시절 포커게임에서는 카드를 돌리는 딜러 앞에 사슴뿔(buckhorn)로 만든 나이프를 둬서 딜러가 누구인지를 나타냈다고 한다. 딜러를 원치 않으면 ‘벅’을 옆사람에게 넘겼는데, 여기서 ‘자기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다’라는 말이 나왔고, 여기서 다시 ‘책임은 내가 진다’는 ‘The buck stops here’라는 말이 파생됐다고 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1945년 친구로부터 이 문구가 새겨진 호두나무 명패(아래 사진)를 선물 받고는 백악관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뒀다.
트루먼라이브러리(trumanlibrary.org)
어차피 시간 문제였던 박 전 대통령 제명은 손수 책임졌던 홍 대표는, 그러나 가장 어려운 판에서는 직접 패를 돌리지 않고 정우택 원내대표에게 ‘딜러’ 자리를 넘긴 듯하다. 홍 대표는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제명 의원총회 개최는 “원내대표 소관”이라며 뒤로 빠졌다. 현역 의원 제명에는 당 소속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원내대표 임기가 한 달여 남은 정 원내대표가 자기 임기 내에 동료 의원을 제명하는 의총을 소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당내 중론이다. 자칫 제명 부결 결정이 날 경우 홍 대표가 아닌 정 원내대표에 정치적 책임이 몰릴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 수준의 ‘고상한 책임’을 강조했던 홍 대표는, 지난 4일 페이스북에는 서청원·최경환 의원을 향해 “탄핵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다가 자신들의 문제가 걸리니 슬금슬금 기어 나와 박근혜 전대통령을 빌미로 살아나 볼려고 몸부림 치는 일부 극소수 잔박들을 보니 참으로 비겁하고 측은하다”며 특유의 막말로 다시 돌아왔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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