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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사랑한 ‘영화 vs 영화’, 흥행성적표는…

등록 2017-08-13 15:41수정 2017-08-17 11:42

정치BAR_김남일의 시렁시렁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행 택시’에 ‘합승’했다.

문 대통령은 휴일인 12일 오전 서울 용산 시지브이(CGV)에서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실상을 알리려는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태우고 광주까지 갔던 택시운전사 김사복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택시운전사>는 개봉 열흘 만에 관객 725만명을 돌파하며 흥행 중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용납할 수 없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공약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었다. 당시 기념식에서 자신이 태어난 날 아버지를 잃은 ‘5·18둥이’ 김소형씨를 안아주며 위로했던 문 대통령이 취임 100일(8월17일)을 앞두고 짬을 내 보는 첫 극장 관람 영화로 <택시운전사>를 택한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문 대통령은 힌츠페터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79), 영화를 연출한 장훈 감독, 출연배우인 송강호·유해진씨,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주영훈 청와대 경호처장 등과 함께 관람했다. 같은 시간 극장을 찾은 일반 시민들도 문 대통령과 함께 영화를 봤다.

“매달 한 번씩은 영화, 연극, 공연을 보면 (문화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문화·예술 공연을 관람하는 대통령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문화예술인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의 한 극장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한겨레 독자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의 한 극장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한겨레 독자 제공

문 대통령은 당내 대선 후보 경선 기간이던 지난 2월24일 여의도 시지브이에서 살인 누명을 쓴 사법 피해자의 재심 사건을 다룬 영화 <재심>을 봤다. 영화가 끝난 뒤 무대에 올라 간 문 대통령은 “과거 변호사를 할 때도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제대로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영화를 보며 약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졌다”며 대선 핵심 메시지인 ‘적폐 청산’을 강조했었다. 이날 관람에는 재심에서 무죄가 난 인혁당 사건 유족들이 함께 했다.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이 검찰의 잘못된 과거사를 사과하며, 그 대상으로 인혁당 사건을 거론한 데는 배경이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영화를 많이 보는 대통령이 될 듯 싶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영화관을 자주 찾았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두 달여 남겨두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강하게 투사됐다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5분여간 안경을 벗고 눈물을 흘렸다. 당시 기자들에게 “오늘 소감을 말 못하겠다”며 말을 잇지 못했던 그는, 이후 페이스북에 이런 감상평을 올렸다. “제가 요즘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마지막 장면이었던가요. 강나루터 이별 장면. 백성이 원하는 진짜 왕이었지만 궁궐을 떠나야했던 하선. 가짜 왕노릇을 가르쳤지만 끝내 마음 속 왕으로 인정하고야 말았던 도승지 허균. 목례를 올리며 예를 취하는 허균에게 떠나는 배에서 손 흔들며 웃던 하선. 아마도 그 장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저절로 떠올랐던 모양입니다. 남들 보는 앞에서 수습 못할 정도로 이렇게 울어본 적은 처음이네요. 하선이 사대외교를 주장하는 신하들에게 호통을 치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야지’ 라고 했던 대사와 몇몇 장면에서, 참여정부 시절 균형 외교를 추구했다가 보수세력과 수구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았던 기억들과 겹쳐졌습니다. 곳곳에 그런 기억들 상기시켜주는 장면이 많아서 가슴이 먹먹했었는데 마지막 이별 장면에서 감정이 터졌던 것 같습니다.”

2014년 1월에는 부산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던 부림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을 관람했다.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 퇴행이 심화하던 때였다. 당시 문 대통령은 영화를 본 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들어서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다.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이룩했던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직설적 영화평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2014년 11월에는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다룬 영화 <카트>(관객 81만명)를 당 지도부 등과 함께 관람했다. 참여정부 시절 이랜드 파업을 다룬 이 영화에 대해 당시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는 잊을 수 없는 상처다. 이 영화를 안 보고 견딜 수가 있었겠느냐”고 했다. 역시 눈물을 흘리며 영화를 봤던 문 대통령은 영화가 끝난 뒤 “정말 미안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이어 “참여정부 때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고자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는데, 막상 사용자들이 사내하청 등을 이용해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참여정부가 서민들의 삶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뼈아픈 비판을 받았다. 이를 만회하고자 지난 대선 때 비정규직을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오히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로부터 2년6개월 뒤인 지난 5월12일. 문 대통령은 취임 뒤 첫 외부 일정으로 ‘국내 최대 공공부문 비정규직 사업장’으로 꼽히는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관객 1232만명을 본 <광해>, 1137만명이 본 <변호인>은 씨제이(CJ)가 투자·배급 등을 맡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문화예술계 좌편향’을 바로잡겠다며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실행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후 씨제이는 박근혜 정부 들어 영화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연평해전> 등에 투자하며 산업화세력 및 안보 코드 맞추기에 급급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하지만 문 대통령은 <국제시장>과 <연평해전>도 관람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기간이던 2014년 12월, 당권 주자였던 문 대통령은 눈물을 훔치며 <국제시장>을 봤다. “흥남철수 당시 아버지가 흥남시청에 농업계장으로 일했다. 제 개인사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젊은 세대로 영화를 통해 부모 세대를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제시장>을 보고는 “애국심”을 강조한 것을 두고는 “애국이라면 국민들 누구나 함께 하는 것”, “애국은 보수의 것만이 아닌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는 가치”라고 했다. 그는 “무대가 (부산인) 국제시장이라는 것만으로도 제가 보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지만, 보수층으로 외연을 확대하려는 시도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28일 미국 방문 첫 일정으로 워싱턴 미 해병대 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헌화했다. 그는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 덕분에 10만여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때 피난민 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다.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 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2015년 6월에는 제2연평해전 13주기를 맞아 영화 <연평해전>을 봤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회 인사청문회 진통 속에 어렵게 국방부 장관이 된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과 당 지도부 등이 함께 관람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영화 상영 도중 몇 번이나 눈시울을 훔쳤다. 영화가 끝난 뒤 충혈된 눈으로 기자들을 만난 그는 “조금 늦었지만 제2연평해전의 영령들을 다시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져 다행이다. 영웅들과 유가족들에게 이 영화가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 영토와 영해가 그냥 지켜진 게 아니라 장병들의 숭고한 목숨과 피, 희생으로 지켜진 것이라는 걸 결코 잊어선 안되고,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지켜나가야 한다”면서도 “더더욱 바람직한 건 장병들의 목숨을 바치는 희생 없이 안보와 평화를 지키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해석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고, 정치인들 역시 이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개봉한 영화 <서편제>(관객 103만명)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영화 최초로 관객 100만명을 넘는데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대선 패배 뒤 정계은퇴를 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귀국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덕이 컸다. 1993년 5월1일 청와대 춘추관에선 김영삼 대통령을 위한 <서편제> 상영회가 준비됐다. 임권택 감독과 배우 김명곤, 오정해씨 등이 참석했다. 김 전 대통령은 영화를 본 뒤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큰 감명을 받았다. 이 정도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되겠다. 문화대국으로 가는 것도 신한국건설의 하나”라고 했다. 두 달 뒤인 그해 7월13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권택 감독, 오정해씨, 박지원 당시 민주당 대변인 등과 함께 <서편제>를 봤다. 김 전 대통령은 “서편제가 나타내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한은 원한이나 절망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어내려는 몸부림이다. 우리가 오랜 역사를 통해서도 중국화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한 때문이었다”며 와이에스(YS)와는 차별되는 문화적 감상평을 내놓았다. 김 전 대통령은 1991년에는 5·18 민주화운동 등을 다룬 최초의 극영화 <부활의 노래>(단관 개봉, 관객 1만1천명)를 관람하며 ‘영화관람 정치학’의 비조(鼻祖)가 됐다.

역대 가장 많이, 자주, 그리고 ‘조용히’ 극장을 찾은 정치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2006년 1월 영화 <왕의 남자>를 봤다. 2003년 취임 이후 일반 극장을 찾은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노 대통령은 영화를 본 뒤 “이야기를 엮어가는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를 보면, <왕의 남자>는 노 대통령 관람 전날까지 494만명이 관람하며 이미 흥행가도에 오른 상태였다. <왕의 남자>는 한국영화 7번째로 관객 1000만명을 넘긴 영화가 됐다. 최종 관객 수는 1230만명이었다. 그해 4월에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청와대에서 <맨발의 기봉이>(관객 234만명)를 봤다.

영화 <왕의 남자>의 한 장면
영화 <왕의 남자>의 한 장면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들과 부부동반으로 서울 소공동 롯데시네마에서 장터를 떠도는 대장장이의 삶을 다룬 배창호 감독의 영화 <길>을 봤다. 주인공이 배신한 친구를 용서하는 내용이어서 정치권에 신년 화두로 화해의 메시지를 던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청와대 쪽은 “독립영화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본 것일 뿐”이라고 했다. 2006년 11월 개봉 사흘 만에 종영(관객 1856명)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청와대 쪽은 영화관에 따로 장소 대여를 요청했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과 일반 관객들과의 접촉은 없었다. 노 대통령은 “좋은 영화다. 사람들의 아름다운 정과 착한 마음을 이야기 속에서 잔잔하게 느낌으로 전달해주는 영화”라는 평을 남겼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영화 <밀양>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주인공 전도연씨가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이 영화는 참여정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이 연출했다. 이후 청와대에서 칸 영화제 수상 축하 오찬을 했는데, 출연배우인 전도연, 송강호씨,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영화 <길>, <왕의 남자>, <괴물>을 직접 극장에서 가서 봤다. <황진이>도 보겠다”고 약속했다. 노 대통령은 전도연씨에게는 “영화에서 본 사람이랑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나 보다. 꺼지지 않는 스타가 되셨으며 한다”라고 했고, 송강호씨에게는 “영화에서보다 똑똑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에 송강호씨는 노 대통령에게 “대통령이랑 동향인 김해의 가락마을 출신”이라며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송강호씨는 <택시운전사>, <변호인>, <밀양> 등을 통해 유독 노무현·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이 잦은 배우가 됐다. 송씨는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바 있다. 노 전 대통령 관람 전까지 156만명이 본 <밀양>의 최종 관객 수는 171만명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노 전 대통령은 두 달여 뒤인 9월 소공동 롯데시네마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봤다. 당시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평소와 달리 윤병세 안보수석을 비롯해 안보실 소속 비서관급 이상을 모두 대동했다. 영화를 본 노 대통령은 붉어진 눈과 잠긴 목소리로 “가슴이 꽉 막혀서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어 “이 영화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봤느냐.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볼 것 같다. 그럴 만한 영화다”라고 했다. 이날 관람도 일반 관객들과의 접촉은 없었다고 한다. 노 대통령 관람 전까지 640만명의 관객이 찾은 <화려한 휴가>는 이후 730만명을 모으고 종영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영화관을 자주 찾았다.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던 2008년 1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대표팀의 실화를 다룬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했다. 주인공인 배우 김정은씨를 비롯해 태릉선수촌 국가대표 선수 70여명이 함께 봤다. 당시 이 대통령은 “내가 함께 하면 뭐든지 잘 된다. 오늘 (내가 영화를 본 것을) 계기로 관객 100만명이 더 왔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가 성공하고 (비인기 종목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제고)하는 새로운 계기가 됐으면 한다. 영화가 잘 돼 국민들이 사랑하는 마음과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관객들을 향해 “티켓은 다 사왔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 대통령 관람 전까지 이미 144만명이 본 <우생순>의 최종 관객 수는 404만명으로, 이 대통령의 “나 때문에 100만명 더”를 훨씬 넘기는 흥행 성적을 거뒀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월에는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저예산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봤다. 그는 이 영화를 연출한 이충렬 감독 옆에 앉아 “지금까지 관객이 얼마나 들었느냐”, “이전까지 관객이 가장 만았던 독립영화를 얼마나 관객이 들었나”, “이번 영화를 계기로 (독립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역시 작품이 좋으면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온다”고 말했다. 이어 “자녀 9명을 농사지어 공부시키고 키운 게 우리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겠는가.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 했던 것이 우리의 저력이 됐고 외국인도 이에 놀라고 있다”며, 주인공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키우는 소와의 아름다운 인연을 다룬 영화 내용과는 다소 다른 엉뚱한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이 대통령 관람 전까지 60만명이 관람하며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폭발적 흥행’ 중이었던 이 영화의 최종 관객은 296만명이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한 장면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한 장면

이 전 대통령은 그해 10월에는 장애인학교의 인권실태를 다룬 영화 <도가니>를 본 뒤 “이런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과 제도의 보완도 필요하지만 전반적 사회의식 개혁이 더욱 절실하다”고 했다. 당시 301만명이 관람한 <도가니>는 관객 466만명을 끝으로 종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화 관람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국정과제로 삼았던 창조경제, 문화융성, 콘테츠산업 육성이라는 정책적 메시지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뒤 처음 본 영화는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이었다. 정치적 해석이 도저히 불가능한 영화였다. 당선자 신분이던 2013년 1월 시사회장을 찾았는데, 국내 흥행성적은 93만명이었다.

문화융성정책의 하나로 매월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한 박 전 대통령은 이후 ‘내가 이런 영화를 본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1월 설연휴를 앞두고는 한국·캐나다 합작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 <넛잡:땅콩 도둑들> 시사회를 어린이 160여명과 함께 관람했다. 입체영화용 안경을 쓴 박 전 대통령의 사진이 적극 홍보됐지만, 북미 시장에서 4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흥행했다는 이 영화는 국내에서 47만8천명이 보는데 그쳤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겨울왕국>이 완성도와 작품성을 평가받으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1029만명이 몰린 것과 대조됐다. 정작 여권에선 “조실부모 뒤 외롭게 지내온 박근혜 대통령이 겨울왕국의 여왕 엘사와 닮았다”는 낯뜨거운 평가를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본격적으로 작성·실행되기 시작한 2014년부터, 박 전 대통령의 영화관람의 정치학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팔이 비틀린’ 씨제이가 제작·배급을 주도한 <명량>(2014), <국제시장>(2014), <인천상륙작전>(2016) 등 이른바 ‘국뽕’ 영화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관심은 지대했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2014년 8월, 이미 662만명이 보며 흥행몰이 중이던 <명량>을 본 박 전 대통령은, 이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국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민관군이 합동해 위기를 극복하고 국론을 결집했던 정신을 고취하고, 경제활성화와 국가혁신을 한마음으로 추진하자는 의미가 있다”는 ‘과한’ 평가를 내놓았다. <명량>은 최종 관객 1761만명이 보며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이 됐다.

이듬해 2월 박 전 대통령은 <국제시장>(최종관객 1425만명)을 봤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상징인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 등을 대동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1200만명이 본 이 영화를 보며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고, 영화가 끝난 뒤 윤제균 감독에게 “감동적인 영화 정말 잘 봤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이 영화의 모든 스태프가 상업영화 최초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4대 보험을 든 점을 거론하기도 했지만,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은 박 대통령의 청와대 회의 발언에 꽂혔다. “(국제시장) 영화에도 부부싸움 하다가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 배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이 나라라는 소중한 우리의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애국가에도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이런 가사가 있지 않느냐.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해야 한다.” 이후 행정자치부는 온 나라에 국기 게양률을 높이기 위한 운동을 벌이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여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북한 주민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를 봤다. 이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지난해 8월 <인천상륙작전>을 관람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이번 관람은 누란의 위기에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의 정신을 한 번 더 되새기고, 최근 북한의 핵 위협 등 안보 문제와 관련해 국민이 분열하지 않고 단합된 모습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과 언론들은 앞다퉈 “안보 행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박 전 대통령 관람 전까지 661만명이 본 이 영화는, 최종 관객 수 704만명을 찍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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