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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요구하라, 우리의 존엄과 생명인 일자리를

등록 2016-12-27 18:18수정 2016-12-27 18:28

정치BAR_최재천의 정치를 읽는 밤_‘이놈의 경제가 사람잡네’
“국가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그런데 국가권력은 어디로 갈까?/ 그래, 국가권력은 어딘가 가겠지/ 그 어딘가로 갈 거야!”(베르톨트 브레히트)

정치인의 눈에 권력은 광화문 근처 어딘가의 유실물이다. 먼저 줍는 놈이 임자다.

‘대통령은 버리더라도 당권을 뺏길 수는 없다. 버티면 산다. 차라리 야당에 주고 말지, 당신들에게 줄 순 없다.’(여권 1) ‘정국의 주도권만 잡으면 끝이다. 간판만 바꿔 달면 된다. 선거는 구도다. 보수 지역 기득권층이 뭉치게 돼 있다.’(여권 2) ‘권력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미끌거릴 수 있다. 권력은 움직이는 거니까.’(여권 3) ‘대권은 이미 손안에 들어왔다. 빨리 선거만 치르면 된다. 우리만 준비됐다.’(야권 1) ‘이대로 가면 무난하게 진다. 패권은 우리 동네에도 있다. 개헌을 고리로 뭉쳐서 한번 뒤집어 보자.’(야권 2) ‘누구만 아니면 된다. 다만 약한 모습 보이면 망한다.’(야권 3)

현 정국을 풍자하자면 이런 식일 것이다. 그래서 다들 불안해한다. 의심한다. 묻는다. 그렇게 주워 든 권력을 과연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것인가. 누구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인가. 이상주의자로 비치겠지만, 첫째는 이번 기회에 헌정 체제와 시스템, 나라의 목표를 완벽하게 재구성해야 한다. ‘땜빵 선거’로는 부족하다. 그저 권력이 여에서 야로, 야에서 여로 옮겨 다닌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된다는 것은 생거짓말이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뀐다고 이 땅의 특권·패권·기득권 체제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거대한 착각이다.

둘째는 그게 아니라면 정권의 비전과 목표를 정확히 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경제다. 좁히자면 경제 민주화다. 더 좁히자면 재벌 개혁이다. 좀 더 좁히자면 일자리다. 반복하거니와 역시 일자리다. 일자리가 존엄이고 일자리가 생명이다. 일자리가 밥이고, 일자리가 국이다. 일자리가 영광이고, 일자리가 평화다.

미국의 민주주의 혁신가 메리 리스는 1890년 농민동맹을 편들며 이렇게 주장했다. “현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월가의, 월가에 의한, 월가를 위한 정부다.” 그로부터 126년 뒤인 지난 미국 대선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월가 개혁이었다. 미국에 월가가 있다면 한국에는 재벌이 있다.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지난 대선의 키워드였지만, 다음 한국 대선에서도 키워드일 것이다. 재벌 지배구조 개혁을 떠나 재벌 체제에 반대하는 핵심 논거 중 하나는 재벌의 경제력 팽창과는 정반대로 재벌은 더 이상 일자리를 늘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니다. 철저히 줄이고 있다. 나아가 하청업체를 쥐어짜며 경제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2013년 3월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두번째 공식 방문지는 실업으로 상징되는 이탈리아 서부의 사르데냐 섬. 교황은 어린 시절 가족들의 실직과 공황의 경험을 반추했다. 그러곤 “특별한 일터가 없는 젊은이들, 정리해고된 이들, 기간제 노동자들, 더 나은 상황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인들과 상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로 강론을 마무리했다.

“주님, 당신에게는 일이 있었습니다/ 목수로 일하는 당신은 행복했습니다/ 주님, 저희에게는 일이 없습니다/ 우상들은 저희의 존엄을 훔치려 합니다/ 불의한 제도는 희망을 훔치려 합니다/ 주님, 저희를 혼자 두지 마시고/ 저희가 서로 도울 수 있도록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가 이기심을 잊고 마음 안에서 ‘우리’를 깨닫게 하소서/ 주님, 저희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여, 당신은 일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희에게도 일을 주시고, 일을 위해 투쟁할 수 있게 하시고/ 축복하소서.”(<이놈의 경제가 사람잡네>, 안드레아 토르니엘리·자코모 갈레아치 지음, 최우혁 옮김, 갈라파고스)

최재천 전 의원은 이름난 독서광입니다. 현역 시절에도 한 달에 스무 권씩 읽을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를 풀어냅니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의 ‘낯선 정치’와 격주로 연재됩니다.
변호사·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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