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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마녀도 사랑한다

등록 2016-12-06 16:40수정 2016-12-06 16:57

정치BAR_최재천의 정치를 읽는 밤_’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촛불은 분노다, 저항이다, 성스러운 희생이다. 그러나 한편, 촛불은 대의제의 실패다. 공화정의 파탄이다.

의사당 내에서 싸워야 하는지, 거리에 나가 촛불을 들어야 하는지는 여의도 정치의 영원한 딜레마다. 시민의 촛불을 세속 정치인 스스로 왜곡하거나, 자신의 삿된 정치적 이득으로 원용하거나, 독점하려 드는 것 또한 우리 정치의 고질이다. 눈앞에 너무 가까운 것은 보이지 않는 법. 콧등의 정치적 이득 앞에 여의도는 온통 눈이 멀었다.

‘해리포터’의 한 장면이다. “(마녀 재판의) 화형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마녀나 마법사는 아주 기초적인 마법인 불꽃이 뜨겁지 않게 하는 마법을 부린 뒤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척하며 오히려 부드럽고 간지러운 느낌을 즐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마법사는 변신술을 이용해 여러 모습으로 변장하여 자진해서 마흔일곱 번이나 잡혀갔을 정도로 화형당하는 걸 즐기기도 했다.” 처절한 성찰이 없다면, 그 누군가에게 촛불은 그저 ‘놀이’일 수도 있다.

4·19 혁명 다음에는 박정희의 쿠데타가 있었다. 80년 ‘서울의 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다음에는 전두환 독재가 있었다. 87년 6·10 민주항쟁 다음에는 전두환의 평생 동지 노태우가 집권했다. 2008년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다음에는 이명박의 무단통치와 박근혜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누군가 그러했듯,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의 전환은 순식간에 이뤄졌고 역시나 역사가 염려했듯 ‘혁명’보다 ‘반혁명’은 무서웠다.

이렇듯 우리 현대사는 촛불을 ‘헌법으로 제도화’하는 데 전면적으로 실패했다. 촛불을 시민의 행복으로 전환시키는 데에도 실패를 거듭했다. 그래서 촛불은 결코 축제일 수 없는데도 누군가는 계속 ‘축제’라고 강변한다. 지금이야말로 겨울 서리가 되어야 한다.

(공화정제의) 영속성과 (세속 권력의) 덧없음 사이에 선 지금, 우리가 들어야 할 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경전보다는 ‘호메로스’를 추천한다. 영국 작가 애덤 니컬슨이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정혜윤 옮김·세종서적)에서 말했다. “호메로스가 세계를 보는 시각은 근본적으로 정신적 외상의 징후를 보이며 복합적이라 모든 게 서로 맞서고 있다. 권력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지 순순히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작 신들도 서로를 끊임없이 공격한다. 자연은 아름다운 배경으로 거기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 역시 투쟁과 고통에 젖어 있다. 개인의 승리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절대 공동체적인 사랑과 사회를 우선시하는 것과 화해할 수 없다. 우리는 그 두 원칙, ‘티메(Time·존경)’와 ‘아레테(Arete·탁월함)’, 명예와 덕성, 자아와 타자 사이의 끝을 모르는 거대한 전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촛불은 낭만이 아니다. 일시적 후퇴는 위악에 불과하다. 어설픈 온정주의야말로 공화주의의 적이다. 카를 슈미트의 표현을 딱 한번만 빌려 쓰자면, 최초의 인간은 아담이 아니다. 루시도 아니다. “최초의 인간은 카인이다.”

최재천 전 의원은 이름난 독서광입니다. 현역 시절에도 한 달에 스무 권씩 읽을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를 풀어냅니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의 ‘낯선 정치’와 격주로 연재됩니다.
전 국회의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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