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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돼지’나 대통령을 꿈꾸는 나라

등록 2016-11-22 16:34수정 2016-11-22 16:43

정치BAR_최재천의 정치를 읽는 밤_‘구십 평생 내가 배운 것들’
정치가를 꿈꾸던 시절, 국회 보좌관으로 30년간 일하고 있던 선배를 만났다.

“국회의원들의 공통점이 있습니까?”

한참 뜸을 들이다 답했다. “이기심입니다.”

“국회의원들은 궁극적으로 뭘 꿈꿉니까?”

“국회의원을 계속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가장 많지요. 시·도지사를 꿈꾸기도 하고 다들 장관을 하고 싶어합니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도 상당합니다.”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아요?”

“여의도에 오면 청와대가 보인다고 합니다.”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생계형·생활형·직업형·소명형 정치인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끼고 살았다. 이 책을 기준삼아 나름대로 정치인을 네 부류로 나누곤 했다. 하나는 정치를 그저 먹고 살기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생계형 정치인’, 둘은 공적 의식 없이 그저 명예나 권력을 탐하며 정치인의 일상을 즐기는 ‘생활형 정치인’, 셋은 생계도 유지하고 일정 부분 자신의 정치적 적성과 능력을 투사하는 ‘직업형 정치인’, 넷은 직업을 넘어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에 따른 정치를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인’. 물론 ‘소명으로서의 정치’가 나름의 지향이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지난 2015년 세상을 떠난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가 2014년 12월 탈고한 마지막 저서 <구십 평생 내가 배운 것들>(강명순 옮김·바다출판사)이 최근 출간됐다. 이 책에서 슈미트는 자신의 정치관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길잡이 역할을 하는 세 권의 책을 소개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칸트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그리고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다.

헌법이 박근혜를 두려워하는 나라

베버는 정치하기에 적합한 자질들이 아니라 정치를 소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로 세 가지를 거론했다. 이 점에 대한 슈미트 총리의 논평. “(베버에 따르면) 정치가는 열정과 균형 감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들에 대해―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들까지 포함해서―본인이 책임을 지겠다는 책임의식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정치가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한 가지 자질이 빠져있다. 협상력과 평화 의지다.”

타협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실천능력 없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에겐 타협도 협상력도 협상 의지도 없다. 평화는 단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평화라고 부르는 국내적 평화도 함께 포함”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평화가 없다. 대통령에게는 눈꼽만큼의 평화 의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좀 더 확장시키자면 정치판 전체엔 극단적 권력욕과 대권에 대한 아귀 다툼뿐이다. 책임 의식? 검찰 수사조차도 거부하는 마당에 어떤 정치적 책임 의식을 따질 수 있겠는가. 헌법은 본질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권리장전이다. 권력기관의 근거법이 아니다. 입법·사법·행정 등 삼권은 철저히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국회는 헌법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헌법이 이들을 두려워 한다.

열정과 균형 감각 또한 언급하기조차 두렵다. 주술에 눈 먼 이에게서 균형을 찾으라고? 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봉건적, 세속적 탈환 욕구와 이에 대한 열정 말고 뭘 발견할 수 있겠는가. 베버에게 “정치란 열정과 균형 감각을 갖고서 단단한 널빤지에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을 뚫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슈미트의 덧붙임. “널빤지가 두꺼운지 얇은지는 사소한 문제다. 중요한 것은 열정과 균형 감각이 동시에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불행의 시작이다. 소명의 부재, 신념윤리, 책임윤리의 부존재. 이제 한국 사회는 악마의 도시, 유령들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제헌의회’ 수준의 과격한 재구성 없이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다

최재천 전 의원은 이름난 독서광입니다. 현역 시절에도 한 달에 스무 권씩 읽을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를 풀어냅니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의 ‘낯선 정치’와 격주로 연재됩니다.
변호사·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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