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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탐하며 주술에 빠지는 사람들

등록 2016-11-01 17:43수정 2016-11-01 17:52

정치BAR_최재천의 정치를 읽는 밤_‘키루스의 교육’
정치하는 사람의 또 다른 본질은 불안이다. 의심이다. 두려움이다. 공포다. 총선이 끝나고 국회가 개원하기 전 당선자들에게 의원회관의 방을 배정한다. 점쟁이를 데리고 들어와 미리 방을 점지해두는 사람이 있다. 그 방이 아니면 망할 듯 집착한다. 의원이 전속적으로 사용하는 방의 책상 등 가구의 배치도 점쟁이의 몫이다. 보좌관을 채용할 때면 사주팔자를 가져오라고 해 자신의 운세와 견줘보게 한다. 하물며 관상이야 오죽 중요했을까? 의원 시절 직접 보고 들었던 얘기들 중 일부다.

국회 입성하며 점쟁이 대동하는 의원들

무엇이 그토록 정치인을 불안하게 하는 것일까? 권력, 보다 본질적으로 폭력에 대한 과도한 욕망과 시민의 자유 사이의 근원적 충돌 혹은 갈등 때문일까? 자유인의 본질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도 된다는 데 있다. 왜 이들은 합리적 이성과 균형에 기반을 둔 자유로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일까? 왜 이들은 이토록 미성숙하고 무책임할까? 왜 이들은 불안과 공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주술과 신화에 귀의하는 것일까? 남이든 북이든 정치든 재벌이든. 어쩌자고 우리 시대의 역사를 ‘정사’(正史)가 아닌 ‘야사’(野史)로 만들어버리는가?

정치철학자 크세노폰(기원전 430~354년경)은 플라톤과 동시대 사람으로 ‘좋은 삶’, ‘좋은 정치’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문제의식을 충실히 따랐던 제자다. 그는 ‘좋은 삶’이란 ‘정치적 삶’이며 정치세계에서 진정 필요한 자는 ‘정치교사’(teacher)가 아니라 ‘정치가’(statesman)라고 생각했다. 그의 책 <키루스의 교육>(이동수 옮김, 한길사)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히에론(또는 티라니쿠스)’의 일부를 소개해본다.

이는 시인 시모니데스가 참주 히에론을 찾아와 참주의 삶과 평민의 삶에서 인간의 즐거움과 고통이 어떻게 다른지를 놓고 이뤄진 두 사람의 대화다. 당시 참주들은 사회의 불안과 대립 상황을 이용하여 불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권력은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한데…

“히에론이 말했다. 참주가 겪는 또 다른 호된 고통을 말해주리다. 용기있는 자에 대해선 자유를 위해 무슨 일을 할지 몰라 두려워하고, 현명한 자는 무슨 음모를 꾸밀지 몰라 두려워하며, 정의로운 자는 군중이 그를 따를까 두려워하는 것이오. (…) 정의롭지 못한 자를 신뢰하는 이유는 그들도 참주처럼 언젠가 시민들이 자유로워져서 자신의 주인이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오. 무절제한 자를 신뢰하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 자유로워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18대 대통령선거대책본부에서 변변찮은 일감 하나 잡지 못하고 끝에 ‘부’자 하나 붙은 서류상의 직책을 받았었다. ‘땅끝 해남’ 출신인 내게 선거 전날 할당된 유세지역은 대구와 구미였다. 대구 동성로를 거쳐 구미역 앞이 마지막 유세였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구미 시민 여러분들의 아들, 딸, 손자, 손녀가 언제라도 대통령의 아들, 딸, 손자, 손녀가 될 수 있다면 박근혜 후보를 찍으십시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한번만 더 생각….” 이제 와서 누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느냐’가 더 중요한 법인데….

최재천 전 의원은 이름난 독서광입니다. 현역 시절에도 한 달에 스무 권씩 읽을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를 풀어냅니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의 ‘낯선 정치’와 격주로 연재됩니다.
전 국회의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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