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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꽃은 시들기 마련, ‘뉴차르’ 푸틴이라 해도…

등록 2016-10-04 15:25수정 2016-10-04 16:52

정치BAR-최재천의 정치를 읽는 밤-‘뉴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평전’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여의도 생활 8년 동안 여당도 해보고 야당도 해보고 무소속도 해봤다. 무소속은 글자 그대로 속한 데가 없기에 자유롭다. 정치적 책임도 상대적으로 가볍다. 야당 생활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국회의 본질과 맥을 같이 하기에 제법 신난다. 세속 권력으로 따지면야 역시 여당이다. 집권 여당이라는 정치적 무한 책임도 버겁다. 하지만 여당이라고 다 여당은 아니다. 여당의 주류는 실세다. 여당의 비주류는? 그야말로 허세다. 집권 여당이라면 대단한 권력일 거라 추측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 권세가 얼마나 비루한지를.

청와대의 구심력에서 여의도의 원심력으로

여당 소속일 때 철저히 비주류였다. ‘여당 속 야당’이었다. 툭하면 원내대표에게 불려가 경고를 듣거나 청와대 비서실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거나 간간이 비공개 면담을 통해 모호한 메시지를 전달받곤 했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용산 미군기지 이전 협정, 한·미간 전략적 유연성 합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에 대한 불평등성과 협상 과정의 부실, 밀실주의를 비판했다는 이유 등이었던 것 같다. 대통령의 임기 말에 다가갈수록 이러한 경향성은 심해졌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헌정 질서에서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어느 정권이나 청와대가 절대적 구심점이다. 그래서 구심력이 지배한다. 운동의 법칙에서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같아질 때 균형이 유지된다. 집권 초기 여의도를 삼킬 듯한 청와대의 힘,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와 권력의 불균형이다. 입법부와 행정부 간 견제와 균형의 파산이다. 하지만 5년은 짧다면 짧다. 대통령 임기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원심력이 지배한다. 미래권력의 산실인 여의도가 정치의 중심으로 재등장한다. 구심점은 당연히 저항한다. 나라의 위기를 강조하고, 야당의 비협조를 탓하며 여당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 든다. 1987년 이래 어김없이 반복되는 헌정사다.

2002년부터 7년간 <뉴욕타임스> 모스크바 지국장을 지낸 스티븐 리 마이어스가 쓴 <뉴 차르?블라디미르 푸틴 평전>이 발간됐다. <서울신문> 초대 모스크바 특파원을 지냈던 이기동이 옮겼다. 책 뒷표지에 적힌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소로킨의 평가가 두렵다. 그래서 문득 러시아 시민이 안쓰러워졌다.

대통령이 술을 안 마시면 금주령, 불면증이면 모든 각료가 밤을 새우는 나라

“푸틴이 느끼는 불안감, 열정, 허약함, 열등감이 그대로 국가정책이 되었다. 그가 피해망상에 빠지면 국가 전체가 적을 두려워하고 스파이를 겁내야 한다. 그가 불면증에 시달리면 모든 각료가 함께 밤을 새워야 한다. 그가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으면 모두가 금주를 하고, 그가 술에 취하면 모두 함께 취해야 한다. 그가 미국을 좋아하지 않으면 전 국민이 미국을 싫어해야 한다.”

부지런하지 않은 대통령은 없다. 게으르다면 애당초 그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보기관 출신답게 밤 늦게까지 일하고, 사람을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친구들도 그를 만나려면 몇 시간 기다려야 한다. 푸틴과 한동안 가깝게 지냈던 영화제작자 이고르 사드칸이 2013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탈린도 밤에 일하는 스타일이었어요…(푸틴 생각에) 측근들이 지금은 굴욕을 참고 머리를 조아리지만 자기가 권좌에서 물러나는 순간 곧바로 덤벼들 것이라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지요.”

권력의 속성이자 숙명은 경계가 없다. 권력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한시적이다. 그래서 유한성에 대한 긍정이야말로 원심력과 구심력의 균형, 입법부와 행정부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의 기본을 회복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언젠가 재외공관 국정감사길에 전직 국회의장 출신 의원과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그가 낭송했던 고은 선생의 시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 꽃.”(<그 꽃>)

전 국회의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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