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최재천의 정치를 읽는 밤_‘대통령의 셰프’
17대 국회의원 시절 청와대에 들어가 식사할 일이 두어 번 있었다. 밥맛?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메뉴조차도 그렇다. 19대엔 야당이어서인지 청와대 구경할 일조차 없었다.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의원간의 청와대 오찬이 있었다. 오찬 직후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중국요리는 원래 맛있는데 이상하게 오늘 요리는 별로 맛이 없더라”고 했다. 메뉴가 중국요리였던 모양이다. 왜 그때나 지금이나 청와대 밥맛은 그저 그럴까? 밥맛이야 그렇다 치고 시민의 입장에서 한번 물어보자. 청와대 밥값은 누가 낼까?
미국 백악관에선 대통령 자신과 가족 및 친인척, 친구 등 개인적인 손님을 위한 밥값은 모두 대통령 개인이 부담한다. 국가예산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국빈을 위한 정찬이나 의원들을 위한 파티, 외교사절단 환영회 등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한다.
〈대통령의 셰프〉(질 브라가르·크리스티앙 루도 지음, 안선희 옮김, 알덴테북스)를 참조해보자. 백악관 셰프 헨리 할러는 1987년 떠날 때까지 22년 동안 다섯 명의 대통령을 모셨고 250여 차례의 국빈 만찬을 치렀다. “한번은 식비 영수증을 (지미 카터 대통령의 부인인) 로잘린 카터 여사께 드렸더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며 좀더 소박하게 음식을 해달라고 하셨다.”
대통령들마다 백악관으로 들어와서 처음 몇 달 동안은 식비 청구서를 받아들고는 놀라곤 한다. “하나같이 다 불평을 하더군요.” 31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인 백악관의 부수위장과 수위장으로 일하며 포드 대통령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대통령만 여섯 명을 모셨던 경호실 출신 게리 월터스의 증언도 그렇다. 월터스는 로잘린 여사가 식비에 놀라던 장면이 특히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녀는 조지아주 출신이었는데 당시 그곳의 물가가 워싱턴보다 쌌거든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루 아침에 일류 요리들로 메뉴가 바뀌는데, 요리에 올리는 장식만 해도 어떻겠어요.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만큼 돈이 많이 들죠.”(내셔널 지오그래픽, 2009년 1월, 미국 대통령의 일상)
빌 클린턴 대통령은 공식 파티가 끝나고 나면 남은 샴페인과 음식을 2층 주방으로 옮겨가곤 했다. 그날이 대통령 친구들과의 파티 날이었다. 먹고 마시며 새벽까지 토론을 벌이곤 했다. 클린턴다운 소통의 방식이었다.
백악관은 그렇다 치고 청와대는 어떨까? 우리는 청와대의 경우 모두 다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사실 그러하다. 아무도 이 부분에 대해서 의심을 품지 않는다. 그리고 청와대 주방에 대해 일단 알려진 게 없다. 공개된 것도 없다. 모든 게 보안이고 모든 게 비밀 취급 되는 듯하다.
한동안 백악관은 관저의 요리 관련 활동을 전하는 블로그 ‘오바마푸도라마(ObamaFoodorama)’를 운영했다. 주요 리셉션 메뉴 등 백악관 테이블과 관련한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백악관에서 ‘화이트 하우스 허니 에일’이라는 맥주를 제조했다는 소식도 접할 수 있었다. 에디 게만 코헌(Eddi Gehman Kohan)이라는 백악관 음식·정책 역사가는 2009년부터 웹사이트와 에스엔에스(@ObamaFoodorama) 등을 통해 백악관의 음식 문화와 정책 이야기를 독점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이제 결론이다.
첫째, 청와대의 밥값을 어디까지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에 대한 민주주의의 기초 문제다. 둘째, 청와대의 음식 문화와 정책은 그 시대의 문화사요 정치사다. 거기다 올바른 식생활 문화를 선도하는 모델이 될 수 있다. 셋째, 청와대의 식탁은 소통과 공론의 식탁이어야 한다. 밥상을 함께 하며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고 나라의 비전을 공유하는 일이다. 이것이 청와대의 밥상과 밥값에 대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다.
최재천 전 의원은 이름난 독서광입니다. 현역 시절에도 한 달에 스무 권씩 읽을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를 풀어냅니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의 ‘낯선 정치’와 격주로 연재됩니다.
전 국회의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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