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김남일의 시렁시렁_상향식 ‘공천 오디션’의 허상
“걸그룹의 최종 멤버는 100% 국민 투표를 통해 결정됩니다.”
“이제 새누리당 후보는 100% 국민 여러분이 공천합니다.”
“이제 새누리당 후보는 100% 국민 여러분이 공천합니다.”
참여형 아이돌 그룹, 성장형 아이돌 그룹은 ‘무한경쟁’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작동한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어떤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대중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엠넷의 <프로듀스 101>의 한 장면. <엠넷> 갈무리
심판은 없다? 그룹에서 비주얼 담당은 맡지 못해도 ‘노래와 춤’은 된다고 생각했던 김무성 대표는, 과거 ‘사장님(MB)’의 횡포로 총선 무대에 아예 오르지 못했던 눈물겨운 경험이 있다. 기획사 사장님이 되면 그런 일, 없게 하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기획사 공동지분을 가진 친박근혜계가 “그러다 뮤뱅(뮤직뱅크)이나 음중(음악중심) 무대에 과반도 못 오른다. 노래 되고 춤 되고 외모 되는 애들을 적당히 섞어줘야 한다”며 방방 떴지만, 이수만·박진영·양현석이 된 김무성 대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런 권력자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2회(1월29일)까지 방송된 ‘프로듀스 101’을 보고 있자니 뭔가 불안하다. 정치신인(완전 연습생) 가점은 아예 없다. 오히려 과거에 배지를 달았거나(이미 데뷔했거나), 장·차관이나 주요 공직·당직을 맡았거나(다른 방송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췄거나), 주요 계파(대형 소속사) 출신들이 은근히 또는 대놓고 ‘특혜’를 받는 듯싶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불공정 경선) 논란이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공정성 문제를 지적하는 ‘국민공천단’의 불만과 협박이 속속 올라온다. 엠에스(MS) 김무성 사장님의 100% 상향식 공천도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프로듀스 101’은 “소녀 연습생들의 프로듀서는 바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당신”이라고 주장한다. “최종 멤버 11명은 100% 국민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보통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평가 반, 허세 반’식 심사위원들은 없는 줄 알았다. 100% 상향식이어서 ‘후보 심사’는 하지 않고 ‘경선 관리’만 한다는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프로듀스 101’에서는 ‘트레이닝팀’으로 불린다. 공천관리위원장 격인 ‘프로듀스 101’의 대표는 ‘아시아의 프린스’라는 가수 겸 배우 장근석이다. 트레이닝팀은 보컬 트레이너 2명, 랩 트레이너 1명, 댄스 트레이너 2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첫 회부터 연습생 101명에게 A, B, C, D부터 최하 F 등급까지 매긴 스티커를 붙여주며 일부 연습생의 눈물을 쏙 빼놓았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도 각 지역에 출마한 모든 예비후보들을 경선판에 올리지는 않는다. 최대 5명까지 추려낸 뒤 경선을 치르겠다고 하지만, 이 과정에서 100% 상향식 공천의 취지를 흐리는 일이 벌어질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평소 전략공천 필요성을 주장해온 이한구 의원이 공천관리위원장에 앉는 것을 김무성 대표가 극구 반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이한구 의원에게 위원장을 맡기려는 친박계 의원들에게 “그렇다면 나에게는 공천관리위원(트레이너) 구성 전권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어쨌든 대구 4선 이한구 의원은 아시아의 프린스 ‘장근석’이 됐다.
걸그룹 선발 오디션 프로그램 < 프로듀스 101 >의 한 장면. <엠넷> 갈무리
국민이 결정한다? ‘프로듀스 101’은 101명에게 공평하게 방송 분량을 할애하지 않는다. 발언 시간이 동등하게 주어져야 하는 후보자 합동토론 방송도 아니고, 시청률이 중요한 예능 프로그램이니 당연하다. 문제는 춤도 노래도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비주얼이나 스타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들에게 상당한 방송 분량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연기자 매니지먼트사에서 연기 공부만 하다가 걸그룹 멤버가 되겠다며 나온 소녀, “예쁘다”는 평가 외에는 아무 자막도 안 달리는 일본 소녀가 실력 있는 소녀들을 제치고 맨 앞줄에 세워지고, 가장 많이 방송에 나온다. ‘수잔 보일’형 가수를 뽑는 정통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니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트레이너들의 등급 평가도 주관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누구는 ‘노래가 형편없다, 춤이 안 된다’며 하위 등급을 주다가도, 어떤 사람은 ‘걸그룹에 꼭 그런 멤버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분이 좋아진다’며 상위 등급을 주는 식이다. 이러니 일부 국민공천단은 ‘이미 11명을 낙점해 놓고 괜한 쇼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한다. 새누리당도 사정은 비슷하다. ‘종편 패널’이 주요 경력인 이들이 갑자기 소주를 나눠마시다가 총선에 출마하겠다는데, 당 대표가 직접 손잡고 카메라 앞으로 끌고 나왔다. 이미 엉덩이춤은 골반이 빠질 정도로 잘 추는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또다시 엉덩이춤이 특기라는 이들을 ‘새로운 인재’라며 소개하는 식이다. 방송 분량을 받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100% 상향식 공천이니 우리들이 알아서 잘 판단하면 된다. _______
모두가 연습생? ‘프로듀스 101’은 101명 모두가 연습생이라고 한다. 모두가 정치신인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10년 넘게 연습생 신분이라는 한 출연자는 이미 걸그룹으로 데뷔한 경력이 있다. 국회의원으로 따지면 18대 총선에서 한 번 배지를 달았다가, 19대 총선 때는 공천을 받지 못하고 미끄러진 셈이다. 인지도가 높아 누적 투표에서 상위권을 차지한다. 이미 비슷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상당한 인지도를 쌓은 초대형 기획사 소속의 15살짜리 연습생은 1회 방송에 이어 2회 방송에서도 누적 투표에서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별 이변이 없다면 이 연습생은 최종 11명에 들 것이 확실하다. 비례대표로 따지면 1번을 받아놓은 셈이다. 김무성 대표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영웅”이라고 했던 여성이 딱 그런 케이스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진박’(진실한 친박)이라는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정종섭 전 행정안전부 장관,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윤상직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됐던 안대희 전 대법관 등을 ‘정치신인’ 또는 ‘영입 인사’로 분류했다. 이들은 경선 과정에서 가점을 받거나 유리하도록, ‘당원을 제외한 일반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경선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 ‘진짜 정치신인’들은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당신의 한 표가 소녀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온라인 회원으로 가입하고 직접 투표를 해봤다. 101명 프로필을 하나하나 살피고 올라온 동영상을 열어보자니, 내가 뭐 하고 있나 싶다. 결국 한 번이라도 방송에서 얼굴을 본 소녀 11명을 골라 찍게 되더라. 노래와 춤에 비주얼까지 되는 소녀 약간에, 노래도 안 되고 춤도 안 되고 비주얼만 되는 소녀들로. ‘픽 미, 픽 미, 픽 미 업~.’ 101명의 소녀가 서로 자신을 뽑아달라며 떼창하는 ‘프로듀스 101’ 타이틀곡 ‘픽 미 업(Pick me Up)’이라는 노래가 자꾸 입가를 맴돈다. 총선 로고송으로 쓰면 딱이라고 전해라~.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 정치BAR 텔레그램 바로가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