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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 ‘뒷문 상정’…새누리가 시전한 ‘자유당 흑마술’

등록 2016-01-25 13:59수정 2016-01-25 15:49

정치BAR_김남일의 시렁시렁_국회법 87조의 비밀

죽은 법안을 살려낼 수도 있다는 국회법 87조 ‘부활의 주문’은 이렇다.
‘위원회에서 부결된 법안이라도 부결 결정을 본회의에 보고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의원 30명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본회의에 부의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지난 18일 국회 운영위원회를 단독으로 열어 자신들이 제출한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을 스스로 폐기시켰다. 법안 직권상정의 요건을 재적의원 60% 이상에서 과반으로 낮추자는 내용이었다. ‘셀프 부결’은 국회법 87조를 활용해 야당이 반대하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거부하는 선진화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올릴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한 수순이었다.
30명 의원만으로도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올릴 수 있었던, 새누리당이 ‘흑마술’에 이용하고 있는 국회법 87조는 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새누리당 권성동 전략기획본부장과 신의진 대변인이 1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선진화법 개정안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권성동 전략기획본부장과 신의진 대변인이 1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선진화법 개정안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본회의 부의’와 ‘상임위 중심주의’
두 가지 원칙의 조화

국회사무처가 펴낸 <국회법해설>은 국회법 87조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위원회는 의안을 본회의 심의에 앞서 예비적 심사를 하는 것이므로, 위원회 의결이 그대로 국회 의사로서 최종적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위원회에서 어떠한 의결을 하였든 본회의 부의가 원칙이다.’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를 거쳐 가결(원안 또는 수정안)되거나 부결(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결정)된다. 현재 국회 16개 상임위원회 위원 정수는 이렇다.

운영위원회 28명, 법제사법위원회 16명, 정무위원회 24명, 기획재정위 26명,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24명,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30명, 외교통일위원회 23명, 국방위원회 17명, 안전행정위원회 22명,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19명, 산업통상자원위원회 30명, 보건복지위원회 21명, 환경노동위원회 16명, 국토교통위원회 31명, 정보위원회 12명, 여성가족위원회 16명.

가장 많은 국토교통위(31명)도 국회 정원 300명(현 292명)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국회법해설>을 더 보자.

‘위원회에서 부결된 의안은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본회의에 보고하고 부의하지 않는다. 이는 (본회의) 의사의 능률을 고려한 것이다.’

해당 상임위에서 여야 간에 찬반토론과 공청회 등 충분한 논의를 거쳐 부결된 법안이라면, 국회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일일이 본회의를 열어 전체 의원에게 의견을 묻지 않고 부결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국회가 채택하고 있는 ‘상임위 중심주의’에 따른 것인데, 모든 의안의 처리는 최종적으로 본회의에서 결정한다는 원칙의 예외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래서 국회법 87조는 국회법이 처음 만들어진 1948년(당시에는 국회법 33조)부터 존재했다.

<국회법해설>은 ‘위원회의 의안 폐기 권한은 국회의 능률적 운영이란 관점에서 본회의 최종 결정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본회의 부의 요구에 의원 30명 이상을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국회가 상임위 중심주의로 운영되는 점을 감안하면 상임위 의사를 존중하기 위한 것으로 일반의안 발의요건(10명 이상)보다 엄격히 한 것’이라고 했다.

제헌의회 이래 여당 7건, 야당 33건
친이계 요구로 ‘세종시 수정안’도 본회의 올라가

제헌의회(1948~1950)부터 19대 국회(2012~2016)까지 68년 헌정사를 따라가 보자. 국회사무처 자료와 의안검색시스템 검색, 언론기사 검색을 통해 25일까지 최대한 확인해보니, 의원 30명 이상의 요구로 상임위에서 폐기된 의안을 본회의에 부의 요구한 경우는 40건이다. 제헌의회 2건, 2대 국회(1950~54) 3건, 3대 국회(1954~58) 5건, 4대 국회(1958~60) 2건, 5대 국회(1960~61) 3건, 6대 국회(1963~67) 2건, 7대 국회(1967~71) 10건, 11대 국회(1981~85) 10건, 17대 국회(2004~2008) 2건, 18대 국회(2008~2012) 1건이다.
‘대표 부의 요구자’의 소속당을 기준으로 여당 의원이 부의 요구를 주도한 경우는 3대 국회에서 자유당 2건, 6대 국회 공화당 2건,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2건, 18대 국회 한나라당 1건 등 7건뿐이다. 나머지 33건은 ‘힘없는’ 야당이 주도한 본회의 부의 요구였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고진화, 민주노동당 권영길,이영순, 민주당 손봉숙 의원 등이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돼 살해된 고(故) 김선일씨 사망 1주기를 맞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라크 아르빌에 파병돼 있는 국군 자이툰부대의 철군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6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제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고진화, 민주노동당 권영길,이영순, 민주당 손봉숙 의원 등이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돼 살해된 고(故) 김선일씨 사망 1주기를 맞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라크 아르빌에 파병돼 있는 국군 자이툰부대의 철군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6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제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7·18대 국회에서의 부의 요구는 그 내용과 성격이 2016년 1월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이 흑마술을 부리는 것과는 판이하다. 17대 국회 2건은 모두 ‘이라크파견 국군부대(자이툰부대) 철군 촉구결의안’이 국회 국방위에서 부결되자,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의 임종인 의원과 야당인 한나라당의 고진화 의원, 그리고 민주노동당 의원 전원 등 여야 의원 30명 이상의 요구로 2005년 11월, 2006년 12월 본회의에 힘겹게 밀어올렸던 사안이다. 그나마 국회의장이 안건으로 상정조차 하지 않아 17대 국회 임기가 끝난 2008년 5월29일 2건 모두 ‘임기만료폐기’됐다.

한나라당이 압도적 과반인 168석을 차지하고 있던 18대 국회에서의 부의 요구는 이른바 ‘세종시 수정안’을 표결에 부친 건이었다. 2010년 6월 당시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던 이명박 정부와 친이명박계에 맞서 자신이 야당 대표 시절 찬성했던 세종시를 지키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던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근혜계, 참여정부의 유산인 세종시 원안을 사수하려는 야당이 일전을 벌이던 때였다.

당시 국회 국토해양위에서 31명 중 18명의 반대로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돼 폐기됐지만,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 66명이 본회의 부의를 요구했다. 본회의 표결에서는 이례적으로 ‘의원 박근혜’가 18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본회의장 발언대에 올라 반대토론을 하기도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이 본회의장 단상에 오른 것은 당 대표로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했던 2005년 4월 이후 5년2개월만이었다. 세종시 수정안은 본회의 표결에서 부결됐다. 최근 새누리당에서 “세종시 수정안 때 야당도 국회법 87조를 이용한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실제 내용이나 정치적 맥락을 속이고 있는 셈이다.

쌍팔년도 자유당 시절, 이승만 대통령 요구로 염전매제령 폐지안 부의
당시 언론이 이름붙인 ‘국회 본회의 상정공작’

1958년 11월8일 이승만 대통령 정부와 자유당이 1958년 11월8일 신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개정안의 기습통과를 막기 위해 조병옥 대표최고위원을 비롯한 전 의원들이 12월20일부터 본회의장에서 철야 농성을 벌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1958년 11월8일 이승만 대통령 정부와 자유당이 1958년 11월8일 신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개정안의 기습통과를 막기 위해 조병옥 대표최고위원을 비롯한 전 의원들이 12월20일부터 본회의장에서 철야 농성을 벌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에 의한 첫번째 본회의 부의 요구는, 결국 법안이 폐기되기는 했지만 지금의 새누리당의 흑마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원조 흑마술 시전‘이었다.

당시 정부는 일제시대부터 이어져온 조선전매령, 특히 소금전매를 폐지하고 민영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당을 포함해 여야 모두 염전매 민영화안에 반대하고 있었다. 시기상조, 생산 감소, 가격 폭등 등이 이유였다. 자유당은 아예 정부의 염전매제 폐지에 반대하기로 결의까지 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도 정부가 발의한 ‘조선염전매령 폐지안’을 여야 이의 없이 폐기했다. 정부안을 여야가 합심해 걷어찬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돌변했다. ‘쌍팔년도 성탄절’, 그러니까 단기 4288년(1955년) 12월25일 이승만 대통령은 “소금사업 민영화는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라는 담화를 발표한다. 이 대통령은 “국회에서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 이유를 잘 설명해서 통과시킬 것”을 요구했다.

당 총재인 이 대통령의 지시에 자유당은 뒤집어졌다. 자유당은 여야 합의로 폐기했던 정부안을 대통령 담화가 나온 뒤 다시 살려내는 방안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국회법 33조(현 87조)를 이용해 의원 36명의 요구로 본회의에 부의 요구하는 데 성공한다. 당론까지 뒤집으며 대통령이자 당 총재의 뜻을 받들었던 이 법안은 본회의 부의에는 성공했지만 이듬해 10월 결국 폐기되는 운명을 맞는다. 당시 언론은 자유당의 이런 행태를 ‘국회 본회의 상정공작’으로 규정했다.

3년 뒤인 1958년 자유당은 ‘보안법 파동’ 때도 국회법 33조(현 87조)를 이용하려 했다. 변호사 접견금지, 3심제 폐지, 언론규제 등 황당한 내용이 담긴 정부·여당의 보안법 개정안에 대해 당시 야당 의원들은 ‘보안법개정 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했다. 민주당이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한 원내투쟁을 결의하자, 자유당은 보안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직접 상정하는 방안을 3년 전 써먹었던 국회법 33조에서 찾는다. 법사위에서 보안법 심의가 불가능하게 되면 일단 법사위에서 보안법안을 폐기시킨 뒤 자유당 의원 30명 이상의 연서를 받아 본회의에 부의하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국회 운영위에서 선진화법 심의가 불가능하자 단독으로 운영위를 열어 폐기시킨 뒤 이를 본회의에 올리겠다는 것과 판박이다.

하지만 당시 자유당은 국회법 33조를 쓸 필요가 없었다. 법사위에서 3분 만에 보안법 개정안을 날치기한 자유당은, 야당이 본회의장 점거농성에 들어가자 국회부의장의 경호권 발동으로 야당 의원들은 폭력으로 몰아낸 뒤 자유당 의원들만으로 본회의에서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법 87조는 주로 소수야당의 ‘저항 수단’으로 쓰였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더라도 대부분 불발되는 운명을 맞았다.

1968년 6월 공화당이 다수인 국회 국방위는 당시 신민당 의원이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의한 향토예비군설치법 폐지안을 재석 위원 12명 중 반대 3명, 찬성 3명으로 부결시켰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국회법 79조(현 87조)에 따라 자신을 포함해 의원 43명의 연서를 받아 법안을 본회의에 올렸다. 본회의에서도 다수인 공화당의 반대로 법안은 부결됐다.

민주정의당이 여당이던 1982년 5월,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 사기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 등을 두고 야당은 국정조사권발동과 국무총리해임을 요구했다. 민정당은 회기 마지막날 본회의 없이 상임위만 열자고 제안한다. 반면 야당은 회기 마지막날 본회의도 열자고 요구했다. 야당은 자신들이 제출한 ‘국정조사특위 구성결의안’을 민정당이 국회 운영위에서 부결시킬 것에 대비해 국회법 80조(현 87조)를 이용해 본회의로 가져가려 했고, 이를 막으려는 민정당은 본회의를 아예 열지 않으려 한 것이다.

그해 6월1일 국회 운영위에서 ‘장 여인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과 ‘국무총리 해임 권고결의안’이 부결됐다. 임종기 민한당 의원 등 121명이 본회의 부의 요구를 했고, 이날 열린 본회의에 상정된 두 안건은 민정당의 반대로 모두 부결됐다.

박근혜 대통령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회선진화법 개정안 본회의 부의 요구에 25일 오전 현재 새누리당 의원 100여명이 참여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헌정사에서 왜 집권여당이 이 좋은 국회법 조항을 자주 써먹지 않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때는 선진화법이 없었다’, ‘그래서 직권상정이 가능했다’고 쉽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본회의 표결 당시 반대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정치가 극한투쟁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미래로 가려면 약속은 반드시 지켜진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지금 그에게 고스란히 들려주고 싶은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세종시 수정안 반대토론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세종시 수정안 반대토론을 하고 있다

1950년대 자유당이 대통령의 뜻을 따라 정부 법안을 억지로 통과시키기 위해 동원했던 그 수법을, 새누리당은 무려 60년이 지난 2016년에 따라하려 한다. ‘흑마술 소환술’이 따로 없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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