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시민아, 정치하자 피티쑈’ 연사들의 발언 전문을 차례차례 올립니다. 처음으로 소개할 연사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피티 제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내 삶을 바꾼다!’입니다.
‘시민아, 정치하자 피티쑈’가 열린 14일 저녁 서울 마포구의 미디어카페 ‘후’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가 프레젠테이션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많은 시민들에게 이런 통지서가 날아가고 있습니다. 이건 이하 작가가 그린 그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머리에 꽃을 꽂고 있죠. 대통령께서 기분이 나쁠 겁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9만원짜리 수표를 들고 있는 그림. 기분 나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거에 이런 걸로 작가가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주권자는 주권자가 뽑은 대통령을 조롱하고 모욕할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을 개구리라고도 놀렸어요. 그런데 수사받은 적도 없고 기소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정도의 그림을 화가가 그렸다고 유죄 판결이 났습니다. 범죄라는 거죠. 난 아무리 봐도 범죄인지 모르겠는데. 제 전공이 형법인데. 이런 게 범죄가 아니라는 걸 말하기 위해 제가 학교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 사진은 오바마 사진이죠. 대변을 닦는 휴지에 공화당 당원이 오바마 얼굴을 새겨서 팔았습니다. 닦으면서 공화당 당원들이 통쾌했을 겁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이 박근혜 대통령 얼굴을 여기에 그려서 팔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보십쇼. 바로 전화가 올 겁니다. 이런 것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2015년 세계언론 자유지수가 69위로 떨어졌습니다. 노무현 정부 31위였는데 지금은 69위에요. 표현의 자유는 우리 입의 자유입니다. 최고권력자를, 돈이건 힘이건 가진 자를 맘대로 욕할 수 있는 자유 자체가 위축되기 시작한 겁니다. 내 돈 제대로 쓰는지 감시하는 게 정치 두번째. <갑과 을의 나라>라는 강준만 교수의 책이죠. 갑질 얘기 많은데 갑 중의 갑은 슈퍼리치입니다. 연간 12억5천만원 이상의 소득, 우리나라의 0.01%. 우리나라가 슈퍼리치에 대해서 세부담을 30년간 23% 줄여줬다는 게 통계적으로 확인됐습니다. 갑질의 나라라고 분노하는데 제도적으로 보면 갑질을 더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2013년, 2014년 지금까지 양도세와 법인세를 2조8천억 줄여줬습니다. 나라는 운영돼야 하니 2조8천억 없어졌으니 돈이 필요해요. 그래서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 올려서 이를 벌충했습니다. 근로소득세는 여러분이 내는 겁니다. 모든 월급 내는 사람은 근로소득세를 내요. 그게 다 모여서 이게 된 거죠. 법인세·양도소득세 내는 사람들은 재벌입니다. 이게 깎여서 우리가 부담하고 있는 겁니다. 서민증세 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감세하는데. 2013년에 소득세법 시행령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노가다라고 불리는 건설근로자, 과거 건설근로자에게는 퇴직공제금에 과세를 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어려운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데 2013년부터 법을 바꿔서 이분들, 총 5만5천명으로부터 소득세 11억5400만원 원천징수했습니다. 아까 보았듯이 엄청난 돈을, 법인세·양도세 깎아주다 보니까 여기서 뽑아 올린 것입니다. 정치는 뭐냐, 우리 시민은 주권자이고 납세자입니다. 월급 안 받는 사람도 물 한 잔 마셔도 간접세를 냅니다. 세금이 모여서 나라에 쌓이고 이게 국고입니다. 그 세금을 누구로부터 걷을 것인가, 얼만큼 어디에 쓸 것인가 결정하는 게 정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금만 냅니다. 그걸 4대강에 쓸 것인지, 우리는 결정을 못 합니다. 누가 결정하느냐. 시민이 납세자인 동시에 유권자인데 우리가 표를 행사해서 찍은 사람이, 51% 얻은 사람이 그 돈의 용처와 양을 결정합니다. 자신의 세금 문제가 이렇게 되는 건 정치의 문제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슈퍼나 동대문 시장에 가서 옷 사고 반찬 살 때 만원 깎고 천원을 깎아요. 그런데 이런 문제엔 무감합니다. 이미 세금 내고 있는데 “다른 사람 많이 깎아주고 나는 안 깎아주고 왜 많이 내라고 하지” 이게 정치의 출발점입니다.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악인의 지배’ 그럼 이런 일이 왜 생기느냐. 이미 레이건·대처 정부 때부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라는 것이 막 시작돼서 금융위기 와서 다 폐기됐습니다. ‘낙수 효과’가 뭐냐면 부자한테 챙겨줘야 한다, 부자감세를 하면 돈이 많이 남는다, 부자가 돈을 쓴다, 그러면 경기가 활성화된다, 떡고물이 밑으로 떨어진다는 거죠. 그런데 그 현실은 여기를 채웠더니 요 와인잔만 계속 커지더라는 것. 그래서 이 정책이 폐기됐습니다. 그러나 이 정책을 우리나라는 유지하고 있죠. 그래서 제일 안타까운 게 청년 세대. 저의 고객들은 항상 청년들이라 매년 만나는데 청년들의 얼굴이 밝지 않아요. 미래가 어두워요. 스스로 ‘청년실신’이라고 부릅니다. 등록금이 워낙 높아서 대출받으니까 졸업하면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다 갚아도 실업자죠. 3포 세대, 결혼·연애·직장. 지금은 5포, 6포, 9포까지 올라온 상태입니다. 이 청년들이 저희들의 미래입니다. 10년 지나고 20년 지나면 우리 사회 끌고나가야 하는데 이런 모습으로 사회 나간다는 겁니다. 이게 왜 이렇게 됐을까. 바로 정치의 문제입니다. 청년들은 수저론을 가지고 자조하고 있습니다. 대학교육 역할 중의 하나가 계층이동입니다. 집이 어려워도 열심히 공부하면 내 부모 세대보다 한 칸 올라간다는 것. 지금은 그렇지 않은, 각 수저 사이의 장벽이 쳐진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다 끄덕끄덕하실 겁니다. 그런데 “요컨대 어떤 일이든 진정으로 즐길 줄 알는 자만이 금수저 밑에서 일할 수 있다”고 유병재 작가가 얘기했어요. 이 말을 청년들이 다 얘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금수저 밑이구나, 이런 자조와 자괴가 청년들의 가슴속에 쌓이고 있습니다. 그리스 시대 트라시마코스 철학자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고 한 적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법의 이념이 정의인데 ‘센 놈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내부자들> 영화 봤는데 이병헌이 “대한민국에 정의란 달달한 놈이 남아있어?”라고 하더군요. “그런 거 소용없어. 다른 거 신경 쓰지 마. 니 앞가림, 자식한테 밥 먹이는 것 생각하고 힘센 놈이 이기는 거야”,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습니다. 그건 민주공화국이 아니고 정글입니다.
디케란 정의의 여신입니다. 자기 앞에 누가 있는지 부자인지 빈자인지 강자인지 약자인지 보지 아니하고 공평하게 저울을 대겠다는 것인데 이런 모습의 정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비쩍 마른 사람 위에 올라타서 어떤 눈을 가리지 않고 자기 맘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탐욕스런 모습이 정의의 여신인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래도 정치라고요?”라고 묻고 싶습니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돈 벌어라, 투표해봤자 소용없다, 야당 꼬라지 봐라, 니 일이나 해라, 세상일에 개입하지 마라, 정치란 더럽고 위험한 것이다…. 실제 그렇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10번 이상의 고소·고발장 받았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욕을 하고 있음에도 왜 그래도 정치냐고 해도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플라톤이 “공적 사안에 대해서 무관심 갖게 되는 대가는 악인에 의해서 지배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적 사안에 대해 관심 갖지 않고 정치에 무관심한 순간, 정치란 영역은 악인이 가지게 돼있습니다. 더러운 거, 나쁜 거라고 발 빼는 순간, 그 영역을 악인이 가져간다는 거죠. 1표의 가치는 3337만원 왜 정치를 해야 하느냐. 이건 2012년 서울시립대 영수증입니다. 120만원 정도 등록금입니다. 지난 지방선거 시기에 반값 등록금 요구했고 그 투표 결과 서울시장을 박원순씨로 뽑았습니다. 서울시립대의 운영위원장, 사립대로 치면 이사장이 박원순 시장입니다. 그래서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반으로 잘랐죠. 그러면 서울시립대나 서울시가 망해야 하는데 서울시가 확보한 예산은 우리가 낸 세금입니다. 그걸 어디에 얼만큼 쓸 것인지 박원순 시장이 결정했습니다. 뽑은 사람이 박원순에게 요구했더니 실천이 된 겁니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겁니다. 성남시 이재명 시장 얘기하겠습니다. 저도 책 구매할 때 오프라인 동네서점 잘 안 갑니다. 알리단, 예스24에서 주문한다. 빠르니까. 그러다 보니 동네서점 사멸하고 있습니다. 동네서점이 다 영세업자인데 어떻게 할 거냐. 성남시에서 이재명 시장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성남시 안에 있는 10개 공공도서관에서는 무조건 동네서점에서 구매하라는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개인이 사는 건 빨리빨리 봐야 하지만 공공도서관 책은 급하게 올 필요가 없으니까. 시 차원에서 대형 온라인 서점이 아니라 동네서점에서 반드시 도서관 책 구매하게 하는 순간 동네서점은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한 것입니다. 이게 정치의 힘입니다. 과거 지방선거 시기에 한 단체가 내 투표 가치 얼마일까를 조사했는데 우리 표는 1인당 3337만원의 가치로 조사됐습니다. 각 유권자 투표했을 때 전체 예산에서 예산 변화에 얼마의 영향을 미치는지, 그만큼 우리의 표는 그 예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통의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는 겁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세상에 문제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리석은 자는 확신에 차있는 반면, 어리석지 않은 자는 의문에 차있어서”라고 러셀이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무대뽀, 막가파, 하고싶은 말 다 하고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집행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지 않은 자들은 갈등합니다. 이래도 되나, 청년수당 주장해도 되나, 좌빨정책이라고 말하지 않나, 이런 걱정. 정치 과정은 2015년 정치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의 꿈을 키워주고 그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해야 합니다. 반값등록금, 청년수당 등. 나의 고통을 줄이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과 법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그걸 실현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결정하는 것이 정치이고 그 결정을 표를 통해서 하는 순간 세상은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정리/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