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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한국 정부 ‘북-미 대화 재개’에 역할·책임 더 커졌다

등록 2021-05-22 09:29수정 2021-05-22 10:39

바이든 행정부 북핵 해결 위한 한국 독자 역할 인정
문 대통령 “북한의 긍정적 호응을 기대한다” 요청
남에 대한 북의 누적된 불만 커 쉽게 응할지 미지수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한-미 정상이 북핵 문제가 양국이 함께 풀어가야 할 시급한 외교적 과제라는데 의견을 함께했지만, 구체적 접근법에선 묘한 온도차를 노출했다. 남북 관계 진전을 통해 북-미 관계의 돌파구를 찾아가겠다는 결심을 밝힌 한국 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더 커지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양국의 시간표가 일치하냐’는 취지의 질문을 받고 “바이든 신 행정부에서 대북 정책을 굉장히 빠르게 재검토를 마무리했다. 그것은 그만큼 대북 정책을 바이든 외교정책에서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핵화 시간표에 대해 양국 간 생각의 차이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답변에 나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문 대통령에 동의한다. 앞으로 이 목표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우리 우방국과 한국의 문 대통령과 함께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예상과 달리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공석으로 남겨졌던 대북정책 특별대표에 성 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대행을 임명하는 등 북한과 조기에 대화를 재개하고 싶다는 명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 때와 같은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엔 “어떤 진척이 보이지 않는 한 저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와 같이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 조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회담에 임해) 북한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 같은 제스처는 취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런 입장에 대해 확고하다는 것을 분명히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이 북핵 문제가 시급한 외교적 과제이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위해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과거 합의를 통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해내간다는 목표엔 일치했지만, 대화 방식 등 각론에선 미묘한 견해차를 드러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바라는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이라는 근본적 변화가 이뤄지려면 실무 협의를 통해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의 정통성’ 등을 언급한 부분에선 북한의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나가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도 읽을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의 첫 단추를 잘 꿰긴 했지만, 북한의 선 조처를 강조하며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와 같은 전략적 인내 정책의 과오를 되풀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이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남북 관계 진전이었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나는 남-북 간 북미 간의 약속에 기초한 대화가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데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재확인했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 대화와 협력에 대한 지지도 표명했다. 미국과 긴밀한 협력 속에서 남북 관계 진전을 촉진해 북미 대화와 선 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앞으로도 한-미 양국은 긴밀히 소통하며 대화와 외교를 통한 대북 접근법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며 “북한의 긍정적 호응을 기대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는 남북 관계를 진전시켜 북-미 대화에 돌파구를 뚫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2018년 11월 한-미 워킹그룹을 만들어 이를 통제한 바 있다.

그 때문에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 경협을 통해 북-미 교착 국면을 뚫어보려던 한국 정부가 큰 애를 먹었다. 그 결과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 선언 등을 통해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직접 약속한 여러 합의가 지켜지지 않으며 남북 관계는 2019년 말 무렵엔 사실상 파탄에 이르게 된다. 남북의 독자 접근을 막은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이 자체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을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2019년 2월 말 하노이 결렬 이후 북이 남에 대해 쌓아온 불만의 수위가 너무 높아 문 대통령이 요구하는 북의 ‘긍정적 호응’을 쉽게 기대하긴 어려운 게 엄혹한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북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면 북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적대시 정책 철회’의 핵심인 8월 한-미 연합훈련 등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납득할만한 조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전시 작전권의 조기 반환을 위해 이날도 “연합 방위태세를 더욱 강화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연합훈련 실시를 둘러싼 쉽게 해결하기 힘든 딜레마 상황에 빠져 애써 살아난 대화의 기운이 꺾이진 않을까 우려된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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