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첫 ‘외교전’의 목적은 분명했다. 한국·일본 등 동맹과 진지를 구축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외교’를 내세워 ‘유일한 전략적 경쟁자’ 중국을 겨냥했다. 이번 순방으로 미국의 대중국 강경 접근이 구체적인 정책의 모습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미-중 관계의 절대적 영향권 안에 자리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양국 관계 악화에 따른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 일본에서 시작한 바이든 행정부의 첫 장관급 국외 순방을 관통한 메시지는 동맹 강화와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 ‘공유된 가치’를 기반으로 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세계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라는 갈림길에 서서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논쟁이 도래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식에 기반한 대응책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행보는 이달 초 공개된 백악관의 ‘국가안보전략’(NSS) 지침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워싱턴 포스트> 공동기고에서 예고된 바 있다. 중국의 국가체제 자체를 부정하며 이념 공세에 매달렸던 임기 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는 아직 거리가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가치 대결적 대중국 외교의 무게와 강도는 예상보다 거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홍콩·대만·신장위구르·티베트 등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꼽는 영역에서 인권의 가치를 내세워 중국을 몰아붙였다. 이는 북한도 같은 원칙으로 접근할 개연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실제 블링컨 장관은 지난 18일 <에스비에스>(SBS) 인터뷰에서 ‘북한과 중국 정부와의 관계 때문에 인권침해 문제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의 정책이 변화해야 하냐’는 취지의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외교정책의 중심에 인권과 민주주의를 두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선별적으로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어떤 나라건 간에 인권을 유린하고 있는 상황을 본다면 목소리를 낼 것이고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게 대통령이 우리의 외교정책에 초점을 맞추라고 한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트럼프 행정부 때는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하면서 북핵 문제에 집중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문제가 아닌 북한 문제로 넘어가 북핵 협상은 협상대로 하면서도 인권문제에서는 대북 압박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일단 한-미는 18일 외교·국방장관(2+2) 회의 공동성명에서 “북한 핵·탄도미사일 문제가 동맹의 우선 관심사”라며 “완전히 조율된 대북 전략”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한국 쪽 설득으로 포함됐다고 한다. 분명히 미국과 협의의 공간은 열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미국이 대중국 정책의 일환으로 이념·가치 문제를 계속 내세운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로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의 동력을 조기에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정부 소식통은 “미국이 왜 북한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는지 잘 모르겠다”며 “(북핵·북한 문제에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권 문제를 내세워 북한 이슈를 관리하려는 생각일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최악의 경우, 오바마 행정부 시절 대북 정책이었던 ‘전략적 인내’ 정책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3월 말~4월 초께 유엔 인권이사회 대북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북쪽 반응도 주목된다.
블링컨 장관의 한·일 방문과 미-중 고위급 전략대화에서 드러난 미-중의 ‘대결적 구도’로 임기 말 문재인 정부의 대외전략에서의 운신이 매우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20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미-중 대립이 격화할수록 한국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좁아지고 선택의 폭이 극히 제한된다”며, 미-중 갈등이 ‘신냉전’으로 악화하지 않도록 관련국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전략적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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