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한겨레> 자료사진
“당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원회가 한반도 정책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한국은 조급하게 움직이기보다는 신중하게 준비해야 한다. 미-중 관계에 대한 한국의 원칙과 입장도 좀 더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30년 넘게 미국 정치 현장에서 활동해온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의 조언이다.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을 앞둔 한국 정부가 그 동안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성과를 무산시키지 않고 진전시키려면, 미국의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잠시 서울에 온 그를 14일 만났다.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어떻게 전망하고 준비해야 하나.
“바이든 당선자의 인수위원회가 당장은 외교·안보에 집중할 여력이 없다. 외교정책에서 정해진 것은 기후변화 대응과 중국 견제뿐이다. ‘망가진 미국’을 바로잡는 게 우선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안정될 때까지, 한국 정부가 한반도 이슈의 우선 순위를 너무 성급하게 끌어올리려 하면 안된다.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에 대한 바이든 인수위의 재검토도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한국이 성급히 움직이면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다. 바이든 캠프 안에서, ‘트럼프가 독재자 김정은과 성급한 합의를 했고, 한국 정부가 트럼프를 지지했다’고 생각하는 기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이든 취임 100일 뒤 인선이 완료되고 새 정부가 안정되면, 김대중-클린턴 시기의 햇볕정책과 북한문제 연착륙 정책을 현 상황에 맞춰 되살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냉전 이후 한국이 제안한 대북정책에 미국이 응하지 않은 적은 없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도 미국이 동의했고,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결국 한국 정부의 제안을 미국이 따른 것이다. 한국 정부가 하기 나름이다. 다만 조급하지 않게 인내하면서 준비해야 하다. 바이든의 화두는 동맹, 인권, 환경, 평화다. 북한의 인권을 위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북한 개혁개방과 인도적 지원에 힘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남북·북미 관계의 역사적 성과를 보존하고 연착륙시키려면 미국을 잘 설득하고 활용해야 한다. 미국이 반대해도 무조건 남북 경제 협력, 개성공단 재개 등을 하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
―바이든 행정부가 안정되기 전까지 한국은 무슨 준비를 해야할까.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 대북정책이 시급하다는 공감대를 미국 의회를 통해 만들어나가야 한다. 워싱턴은 의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 민주당 내부에서도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줄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미 의회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조속히 방한해 남북긴장 완화와 핵문제 해결 위한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하는 것도 좋다. 유엔에서 북한 인권을 위해 대북 제재를 완하하고 평화를 위해 인도적 지원을 하자고 설득하는 것도 적절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안정된 지배구조’를 원하고 한국은 ‘완벽한 평화’를 원하는 데, 그 사이에서 100을 이루지 못하면 0이 되는 것이 아니라 50~60점이라도 필요한 성과를 확보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성과를 후퇴시키지 않으려면 한국은 신중해야 하고,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가 초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바이든의 대중국 정책은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나. 트럼프와 차이가 있을까.
“바이든은 경제와 기후변화 해결에 대해서는 중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트럼프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미-중 관계가 단기간에 호전되기는 어렵다. 바이든 당선자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이 너무 크다. 바이든은 시진핑과 여러차례 만났고 그가 미-중 협력의 폭을 넓힐 것이라는 기대를 했는데, 지금 시진핑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실망하고 있다. 중국 견제에 대한 미국의 결의는 분명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유대계와 이스라엘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 핵협상을 추진했던 것도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힘이 너무 커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 한 것이다. 중국이 반발하겠지만 대만을 중시하는 정책도 계속될 것이다. 워싱턴 정치권 내에서 대만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일레인 차오 노동부 장관을 통해 대만의 영향력이 발휘되었고, 바이든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대만계 캐서린 타이를 임명한 것도 중국을 겨냥한 대만 중시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분명한 신호다.”
―미-중 갈등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미국이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에 대해 한국도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원칙과 입장을 정해야 한다. 힘들더라도 처음부터 우리의 입장은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모호하게 하려다가 오히려 선택지가 좁아질 수 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 가운데 인권, 평화, 환경 부분에 대해선 국제사회에서도 공감대가 존재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도 관심을 가지고 중국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낼 부분은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중 패권 경쟁과 관련된 부분, 예를 들면 남중국해의 군사 문제 같은 부분에는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가까이 있는 대국에는 빨려 들어갈 우려도 있다. 중국에 대해 경계감을 가지고 원교근공의 교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1월26일 델라웨어주 웰밍턴에서 외교안보팀을 발표하고 있다. 웰밍턴/AFP 연합뉴스
―바이든 외교안보팀의 특징은.
“바이든 당선자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외교안보 부분은 일임해 적절한 선에서 관리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을 기용해 자율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것이 아니고 전문가들에게 맡긴 것이다. 설리번은 힐러리 클린턴의 참모였는데 바이든이 부통령 시절 삼고초려해서 백악관에 데리고 있었다. 그 당시 설리번은 이란 핵합의를 성사시키는 등 바이든의 두터운 신뢰를 얻었다. 그는 ‘예의를 갖춘 네오콘’이라는 평가도 있을 만큼 태도는 유연하지만 외교 노선은 강경한 부분이 있다. 이에 반해 블링컨은 좀 더 유연한 노선으로 볼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기업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데 대해 미국 내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강화 정책이 한국과 동북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본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동맹 체제를 강조하면 일본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것은 객관적 현실이다. 일본·대만·인도·오스트레일리아를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이 미국 외교의 핵심이 될 것이다. 동맹을 중시하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 때는 일본의 반대가 워싱턴에서 크게 통하지 않았고, 일본도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을 방해하려는 로비는 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정 기간 동안만 지속될 것이라 판단했던 것 같다. 바이든이 당선돼 다자주의와 동맹을 강조하자, 워싱턴에서 일본의 목소리가 강화되고 있다. 다만, 한국의 관점에서 희망적인 것은 워싱턴 정치권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DJ)에 대한 존경심이 여전히 강하다는 점이다. 워싱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만델라와 같은 평가를 받는다. 클린턴, 오바마 전 대통령과 바이든 당선자가 모두 김 전 대통령을 인권과 민주화의 상징으로 존경한다. 한국이 워싱턴에서 ‘김대중센터’를 만들어 외교자산으로 활용하면서 한국의 목소리를 확산시키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